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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뭐든 단순하게

by 길엽

퇴근하는 길에 연양갱 몇 곽을 들고 노인정에 들렀습니다. 아파트 내에서 노인정에 출입하는 분이 열 명도 채 안 되기 때문에 썰렁할 수 있지만 여기에 오시는 분들은 그래도 오후 내내 고스톱을 함께 치고 음식도 직접 요리해 먹고 담소를 나누면서 나름 대로의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나이가 제일 많으신 할머니는 올해 92세인데, 정말 건강하십니다. 곁에서 고스톱 화투장을 만지는 것을 보면 참으로 날렵합니다. 신기할 정도입니다. 저는 평생 화투를 치지 않고, 고스톱은 아예 룰도 모릅니다. 하지만 슬쩍 곁에 앉아 즐겁게 노는 모습을 살펴봅니다.


노인정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가끔 2층 관리 사무소에 볼일이 있어 갈 때 1층 노인정에 들르면 그 분들이 참으로 좋아하십니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가기 뭣 해서 가끔 간식도 사가지고 갑니다. 각자 자제분들이 잘 챙겨주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크게 겪지 않으신 분이라 제가 사가지고 가는 과자나 간식거리를 사먹지 못할 형편은 결코 아닙니다. 92세 할머니 이 분은 큰 자제가 사업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경제적 여유가 더욱 많으신 분이시지요. 그래서 큰아들이 이 할머니께 노인정에 자주 가셔서 사람들과 어룰리고, 많이 베풀라고 용돈도 넉넉하게 주시는가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분 표정은 언제 봐도 환합니다. 귀가 조금 안 들리시지만 대화는 충분합니다. 젊은 날 한 미모를 하신 것 같습니다. 환한 미소가 일품입니다.


연양갱 곽을 내놓으니 이분들 정말 어린애같이 좋아하십니다. 제가 오랜만에 왔다고 장난처럼 눈을 흘기기도 합니다. 저도 현직에서 물러난 노년 세대인데도 이분들에게는 많이 어리게 보이는가 봅니다. 짓궂게 농담도 하십니다. 제가 그 분들의 말씀을 들어주려고 자리에 앉으면 지금까지 밀려 두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듯이 경쟁적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운가 봅니다. 시간 되는 대로 자주 찾아와 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하네요. 저도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지만 제 사정도 있어서 제대로 지킬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난 달에도 오랜만에 들렀더니 세상에! 제가 며칠 만에 왔는지 손으로 헤아리고 있더군요. 그때는 비스킷을 가지고 갔는데, 과자는 건성으로 감사해하고 제가 찾아온 것 자체가 중요한 듯했습니다. 어쨌든 그분들이 즐거워하니니 저도 기뻤습니다.


매일 여기에 와서 어울리는 분들은 그래도 건강합니다. 저에게도 당신들이 건강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잠깐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돌아가면서 말씀을 하게끔 기회를 줍니다. 혹시나 서로 먼저 말하려고 하면 제가 적당하게 조절하지요. 60대 이후 삶이 어떻게 변하는가도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한 분께서 그러시네요.


"인자 생각해 보니 그래도 60대 때는 정말 좋았지요. 제가 일을 하다가 퇴직하였는데, 60대는 노인 나이치곤 한창 때인기라요. 그때는 이날까지 고생했으니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나이를 먹어 보니 아이구 그때 더 열심히 살았아야 하는데 카는 생각이 들데요. 인자 생각하마 뭐 하능교. 좋은 시절은 그때였던 거 같은데, 그카다가 70이고 80이고 그냥 나미만 묵으면서 세월이 흘러가니 몸 이곳저곳 고장이 나고 마음도 우울해지데요. 그래서 여기 나와 사람들캉 어룰맀지요. 그기 효과가 있었는지 지금은 오히려 건강해진 거 같아예. 그래도 우리 같은 사람 본다고 여기 노인정에 자주 들다 봐주시니 참말로 고맙심더."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어울려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어울린다고 무조건 아픈 몸이 낫고, 건강이 유지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집안에 박혀 지내는 것보다 이렇게 집밖으로 나와 이웃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밥을 먹고 웃는 것이 노년 세대의 건강에 정말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루 종일 노인정에 모여 고스톱만 치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당신들에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답니다. 그러다가 하느님이 오면 그냥 가는 거지 뭐라고 하면서 담담하게 말씀하십니다.


또 한 분께서 강조하십니다.


"나이가 많이 먹어 80이나 넘어가면 사는 거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냥 하루 눈뜨면 웃으면서 밥 잘 먹고, 집 밖으로 내 발로 걸어나와 꽃 구경도 하고 사람들과 인사를 하면서 살면 그냥 좋지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 뭐든 간단하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살아야 해요. 안 그런교?"


저는 아직 그 나이까지 안 가서 모르겠지만 일리 있는 말씀이라고 맞장구를 쳐 드렸습니다. 그 분께서 제가 맞장구를 치니까 더욱 좋아하십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단순하게 생활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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