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이 요즘 유난히 바쁩니다. 일 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만 집에 와서 자고 나머진 거의 외박이네요. 시내 게스트하우스에서 주말 숙박 아르바이틀 하기 때문에 가끔 시내 모임이냐 약속이 있는 날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그곳에서 묵기도 하지요. 아내는 그것이 못마땅한 모양입니다. 아무리 30대 중반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잠은 집에서 자는 것이 바람직하고 어딜 가면 간다고, 오면 온다고 알려야 하는데, 요즘은 문자도 한 통 없으니 저한테 슬쩍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그러면 제가 말하지요.
"이제 30대 중반인 큰아들이 밖에서 잔다고 해도 너무 뭐라 할 것 없어. 스스로 알아서 판단할 나이가 아닌가. 나쁜 일만 없으면 되는 거지 뭐. 안 그렇나. 그냥 지켜보면서 힘든 일이 있다고 하면 도와주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녁마다 집에 들어와서 자야 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고정 관념인 것 같아. 그리고 큰아~는 그래도 착한 편이라 나쁜 일 하지 않거든."
제가 큰아들을 감싸고 돈다고 아내가 불만을 보입니다. 물론 큰아들이 뭘 하고 다니는지 저도 정확하게 잘 모릅니다. 그냥 별일 없이 생활을 잘 하길 바랄 뿐입니다. 아내는 큰아들이 집을 나가서 독립하여 사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전세방이라도 구할 수 있게 우리가 지원 좀 해주자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동의했지요. 큰아들이 원하면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굳이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제 입장에선 큰아들이 함께 살면서 일 주일에 하루 이틀이라도 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따로 나가서 살면 집에 올 일이 거의 없어지지요. 아내도 내심 큰아들이 함께 지내면 좋을 듯한데, 요즘 외박을 며칠 한다고 불만이 생겼네요.
어제는 저에게 큰아들을 진지하게 앉혀 놓고 요즘 어떻게 생활하는지 한번 물어 봐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제가 알았다고 답하는데, 갑자기 현관문에서 초인종이 울립니다. 큰아들이 오랜만에 며칠 만에 들어옵니다. 환하게 인사를 합니다. 제 마음이 환해집니다. 무슨 일 없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없답니다. 그리고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야~야, 내 확인할 거 있다. 오늘 아침에 엄마가 출근하면서 큰아들 너랑 독립하는 문제를 의논했다고 하대. 그런데 내가 큰아들이 밖에 나가 살아도 된다고 동의했다면서. 분명히 말하지만 난 그런 말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다시 분명히 발하지만, 큰아들 00 네가 밖에 나가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밖에 나가서 살아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안 했다. 혹시나 큰아들 00 네가 오해하고 서운해 할 수 있을 것 같아 신경이 쓰이더라. 다시 한번 말한다. 절데 00 네가 밖에 나가 살아야 한다고 한 적이 없다. 알았제."
그러자 큰아들도 답합니다.
"저도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 하지 않으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때도 이젠 저도 독립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 하실 분이 전혀 아님을 제가 잘 압니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저는 괜찮아요."
큰아들이 말은 안 해도 부모 눈치를 볼 것 같아 분명히 밝혀 두어야 하겠더군요. 괜히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들으면 얼마나 서운해할까 싶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도 아내도 큰아들이 저녁 무렵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와 인사를 하면 그것만으로도 즐겁고 고맙기만 합니다. 아내가 지금 당장 서운해서 큰아들의 독립 문제를 거론했다곤 하지만 아내도 저녁 무렵이면 큰아들의 퇴근과 귀가를 기다립니다.
저와 큰아들의 극히 짧은 대화가 끝나고 큰아들이 안방으로 들어가 아내와 길게 대화를 나눕니다. 방문이 잠겼는데도 웃음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니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입니다. 아까 큰아들이 귀가히기 전까지만 해도 아내의 표정이 썩 그리 좋지 않았는데, 둘의 폭소도 들립니다. 큰아들이 아내를 위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 준 모양입니다. 대화를 마치고 방문을 열고 나오는 큰아들이나 방안에서 저를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도 정말 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