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니어 대상 극히 짧은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규모 행사를 진행하는데, 짧은 시간 공백이 생겨 제가 나섰습니다. 그리고 곧장 TV 드라마에서 본 장면을 언급했지요.
"있죠? 테레비 드라마를 보니까, 시어머니가 며느리 집에 가서 냉장고를 활짝 열어놓고 음식 상태나 청소 같은 거를 말하면서 며느리를 무지하게 구박하는 장면이 나오데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그 말을 꺼내자 바로 앞에 계신 여자 시니어 분께서 당연하다는 듯이 한 마디 하십니다.
"내 아들하고 사는 며느리인데 시엄마가 그칼 수도 있지요. 그기 뭐 문제가 되는교? 샘에 이해가 안 되는데예. 그라고 냉장고 안에 묵을 끼 없으마 시엄마가 새로 갖다 줄 수도 있는 거 아인교?"
이 분은 저랑 래포 형성이 잘 되어 있어 다른 분들보다 유난히 적극적으로 말씀하시는 편입니다. 그래서 그 분얼굴을 잠깐 빤히 쳐다 봤습니다. 제가 그랬죠?
"진짜입니까? 시어머니가 그렇게 무작빼이로 며느리 냉장고 확 열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까? 진짜로요."
"그렇지요. 진짜지요. 그기 문제가 되는교 샘!"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여러 선배님들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늘부터는 그런 생각 아예 접으세요. 앞으로 혹시나 그랬다가는 두 번 다시 아들집에 몬 갑니다. 며느리고 귀한 손주도 구경할 수 없다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여러 선배님들 손주 안 보고 살 수 있습니까?"
그러자 자리에 함께 한 선배 시니어들이 이구동성으로 '손주를 못 본다는 거는 절대 안 된다.'고 하십니다. 당연하지요. 그래서 제가 설명했습니다. 아들은 엄마가 낳았지만, 그집 살림은 오롯이 며느리가 책임지고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살림할 때 그 옛날 시어머니가 와서 참견할 때 기분 좋았던가요. 절대 안 그렇지요. 내 살림 내가 알아서 할 뿐 누가 간섭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니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입니다.
"여러 선배님들도 어려운 세월 시집살이하면서 고생했겠지만 지금 며느리들도 만만찮습니다. 옛날과 달리 요즘 며느리들은 대부분 직장 생활하면서 육아까지 도맡아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여러분의 아들이 도와줄까요. 물론 도와주는 남편도 있겠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육아를 함께 나누어하는 비율이 많이 낮습니다. 명절엔 또 어떻습니까. 많이 좋아졌다곤 하지만 명절 날 친정에 가지도 못하고 무슨 종처럼 시집 식구들 때문에 몇 날 며칠 고생하는 며느리 입장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내 딸도 시집가면 그런 처지가 됩니다. 특히 며느리 앞에서 딸을 배려하는 시어머니의 행동은 진짜 모자란 짓입니다. 며느리 입장을 제대로 생각하면 진짜 귀하게 대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내 손주를 낳아 준 진짜 고마운 며느리 아닌가요. 그런데 그 며느리 집에 가서 냉장고 음식을 탓한다. 앞으로 절대 그렇게 하지 마세요."
또 이어집니다.
"괜히 며느리 한테 음식이나 청소 상태 등을 놓고 구박하면 아들집 비밀번호가 바뀝니다. 찾아가고 싶어도 찾을 수 없게 되니 앞으로는 절대 며느리 냉장고를 열 생각 자체를 하지 마세요. 아시겠지요. 어떤 현명한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사는 아파트 경비실에 음식을 놓고 전화만 하고 간답니다. 그렇게 삭막한 고부간에 어떻게 사느냐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렇지만 시어머니가 아들 며느리 집에 들어서면 돌아갈 때까지 며느리는 불편, 불안을 느낍니다. 더 이상 간섭하면 안 됩니다. 알겠지요?"
처음보다 제 말에 동의하는 비율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며느리들 삶 진짜 고달픕니다. 못된 며느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하는 선배도 있지만 그건 결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들 며느리가 부모 생각해서 안부 인사하고 찾아와 주면 고맙고, 어쩌다 소식이 뜸하면 사는 것이 바빠서 그렇겠지 하면서 넉넉한 마음으로 헤아려 주는 것이 부모의 바람직한 역할이랍니다. 그럴 때는 바로 곁에 있는 동년배들과 어울려 삶을 누리며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이 똑똑한 노년 세대의 삶이랍니다. 이렇게 강조하면서 미니 특강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