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김해까지 운행했습니다. 볼일이 있어서 오후에 집을 나서서 김해 도착하고 오후 내내 사람들을 만나 대충 마무리짓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을 잘못 들어 시골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해질 무렵이라 시골 풍경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으로 가득한 시골 고향 마을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스쳐가는 경운기에 나이 많은 농부가 앉아 있습니다. 그 옛날 시골 고향 마을 아재가 떠오릅니다. 아직도 바람은 서늘하니 기분은 상쾌합니다.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한 시골 농로에 오가는 사람들도 드물고, 길가에 풀밭에 저녁 놀이 잎새마다 내리고 있었습니다. 가을 단풍이 된 낙엽이 길바닥에 이리 저리 흩어져 있습니다. 차에서 내서 걷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미류나무가 나란히 달리던 비포장도로를 걸었던 기억도 생각납니다. 이젠 세상 모든 것이 추억이 되고 제 마음에 가득 가득 들어옵니다.
서녘 하늘이 온 세상 비스듬히 햇살을 내립니다. 가늘게 늘어진 석양이 한낮 태양의 기운을 살짝 안아 부드러운 발간 노을을 길게 펼쳐 놓았습니다. 차를 세워 놓고 생각에 잠깁니다. 이제 도시로 돌아가면 오늘밤에 뭔가 할 일이 있어서 바쁠 것 같고, 내일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하루 정신없이 보낼 듯합니다. 지금 이 나이에 그렇게 바쁘게 생활해선 곤란한데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세상 흐름에 휩쓸려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여기 시골길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이 정적과 황혼을 보며 가만히 사색에 잠기고 싶습니다. 오늘 도시로 가지 않아도 된다면 저기 보이는 강변 허름한 민박집에 들러 맥주 캔이라도 들고 들어가 창문을 열어놓고 저 멀리 길게 펼쳐진 논길을 바라보며 밤늦도록 생각에 잠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는 이 없는 이 고즈넉한 시골 마을 한 켠에 있는 민박집에서 생각하다 가져간 책이라도 펼치며 그 속에서 스르르 잠이 들고 싶습니다.
강물 위로 노을이 잉어떼와 더불어 솟구쳐 오릅니다. 물빛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을 적신 저녁 놀이 하늘 구름과 짝이 되어 제 가슴 속에 가득 가득 들어옵니다. 언젠가 세상을 떠날 때 아무도 모르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 낙향과 은거를 일삼으며 이 생을 끝마치는 것이 제 마지막 소원입니다. 그때는 진짜 저 혼자일 것입니다. 훗날 세월이 흘러가 진짜 제 생애에서 며칠 살 날이 더 남았다고 판단되면 세상 욕심 다 버리고 조용한 시골집을 나와 아득히 펼쳐진 시골길을 따라 보름달 휘영청 내리는 세상을 걷다가 그렇게 가고 싶습니다. 어느 분처럼 석양이 넘어가는 황혼 무렵에 우물가 고목나무에 등을 댄 채 ㄴ자로 앉아 그대로 삶을 마무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제 생활이 참 행복하고 즐겁긴 하지만 우리네 생이 늘 이렇게 하염없이 갈 리가 없으니 이 세상의 마지막 날도 도상훈련을 거듭하면서 마음 속으로 미리 그려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에 잠길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기적이라도 있어서 어머니와 단 둘이 마주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담소를 나눌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랑 3km여 면소재지까지 함께 걸었던 일부터, 학예회 발표에 색이 바랜 주황색 한복을 입고 그 먼 길을 걸어오셔서 오직 제 얼굴만 바라 보셨지요. 교실 가운데 담임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저를 보시는데 전 정말 신이 났습니다. 가을운동회엔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리는데도 굳에 아들 달리는 모습 보시겠다고 선 안쪽에 앉아 저를 응원해 주시고, 운동회가 끝났을 때 둘이 나란히 비포장 길을 걸었지요. 석양이 어머니 얼굴에 내린 그때를 생각합니다. 온몸을 바쳐 제 삶의 모든 행복과 평안을 만들어 주고 가신 분이라 더욱 그립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많이 들은 이야기가
"사람치고 그 누구도 귀하지 않은 사람 없어. 사람 귀한 줄 알아야 돼. 절대로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입니다. 오늘따라이 말씀이 많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낯선 시골길에서서서 추억을 떠올리는데 전혀 뜬금없는어머니 말씀이 생각나다니 참 신기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저와 단 둘이 있을 때 많이 들려 준 말씀입니다. 글자도 모르고 학교 문턱에도 가보시지 못 했지만 세상 그 어떤 어머니보다 현명하고 훌륭했던 분입니다. 공부하란 말씀 거의 하시지 않았지요. 그냥 아들이 학교에 무사히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좋아하셨지요.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오란 말씀도 매일 하셨지요. 저도 그 말씀 지키려 노력했고요.
우리 마을 어느 집 큰며느리가 착하고 순해서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데도 그집 시어머니가 구박을 많이 했었습니다. 둘째 며느리는 얼굴도 예쁘고 돈도 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머니께서 세상 사람 모두 귀하다는 말씀 하실 때마다 그 형수님 사연을 많이 들려 주셨습니다. 1년 365일 성격이 지랄같은 시어머니 모시고 농사 지으며 아이들고 키우느라 그 형수님 정말 고생하셨는데 시어머니가 그 고마움을 잘 몰라준 이야기 말입니다. 그러다가 둘째 며느리가 일 년에 한두 번이나 와서 돈이라도 좀 주고 가면 시어머니가 둘째 며느리를 온 동네에 자랑했다고 합니다. 큰 며느리는 고생 고생하였지만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 시어머니가 우리집에 와서 큰며느리 흉을 보고 둘째 며느리 자랑을 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야 어릴 때이고 직접 듣지 못했으니 그 사정을 잘 모릅니다.
한번은 제가 주말에 시골집에 가니까 어머니께서 이 사정을 들려주시더군요. 그래서 어머니께 물었지요. 그 집 아지매한테 뭐라고 했느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아지매, 큰 아~ 그렇게 구박하믄 벌 받는다. 둘째 아~가 우짜다가 와서 그리 돈 좀 준다고 일 년 365일 생고생한 큰 아~ 한테 그렇게 뭐라 카믄 아지매 니 진짜 벌받는다이. 큰 아~ 같은 사람 어디 있더노. 세상 사람 안 귀한 사람 없데이. 큰 아~ 진짜 고맙게 생각해라 그까이 돈 몇 푼에 큰 아~ 마음 상하게 하믄 아지매 니 진짜 벌받는데이. 큰 아~ 진짜 고맙다고 생각해야 한데이. " 라고 해주었답니다.
어떻게 들었는지 그집 형수님이 우리집에 와서 어머니께 고맙단 말씀과 함께 눈물 한 바가지나 쏟았지요. 그 후 그집 고부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 말씀 공감이 가지요. 어렸을 때 들은 말씀이지만 저희 어머니 진짜 그 마음이 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