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Oct 03. 2022

화식열전(貨殖列傳)

사마천은 왜 역사서에 부자가 되는 법을 배치하였을까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체(紀傳體)의 효시로서, 제왕의 연대기인 12본기(本紀), 제후들의 행적을 그린 30세가(世家), 역대 제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8서(書), 연표인 10표(表), 시대를 상징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70열전(列傳) 등 130권 총 52만 6,500자로 구성돼 있다.

     

10여 년 전 난생 처음으로 사기열전(史記列傳)을 접하고 책 속으로 깊숙하게 빠져들었다. 반복하여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그중 특이한 내용이 나를 사로잡았다. 바로 화식열전(貨殖列傳)이다. 역사서에 돈벌이에 관한 내용이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을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역사서에 돈벌이 관련 내용을 본 적이 거의 없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최고의 역사가 사마천이 화식열전을 비중있게 다뤘을까. 화식열전의 화(貨)은 재산을 뜻하고, 식(殖)은 ‘불린다’는 의미다. 화식열전은 춘추시대부터 한나라 때까지 부(富를) 일군 인물 10여 명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사기열전(史記列傳) 130권 중 제129권이 화식열전이다. 제130권이 태사공자서임을 감안하면 화식열전이 실질적으로 가장 끝에 위치한다. 70열전 중 이념과 원칙을 추구하여 절의를 지키다 수양산에 들어가 고비를 캐먹다 죽은 첫머리에 백이·숙제(伯夷叔弟)열전이, 마지막에 거대한 부를 이룬 인물들의 행적을 서술한 화식열전(貨殖列傳)을 배치하였다. 도덕적 당위의 실천과 부(富를) 추구하는 인간적 본능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생생한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사마천의 의도였든 아니든 간에 너무나 대조적인 백이숙제 열전과 화식열전을 대비함으로써,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2천여 년 전과 현대사회에서 삶의 원리는 거의 비슷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富)의 위력은 막강하다. 오죽하면 사마천이 화식열전에서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 

                千金之子, 不死於市     


라고 했을까. 사마천과 같은 위대한 역사가가 사서에 부를 축적한 인물들을 열전에 배치한다는 것이 참으로 특이했다. 그런데 역사의 주체는 엄연히 인간이고 인간의 욕망에서 핵심은 바로 돈이 아니던가. 아무리 고고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며칠간 굶으면 제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저절로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富)라는 것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라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추구할 수 있는 것富者, 人之情性, 所不學而俱欲者也’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부자가 되려 하기 때문에 굳이 가르치거나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화식열전 서두에서 ‘관자(管子)’ 목민(牧民)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

               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     



관중

사마천은 관중의 말을 인용하면서 권력자의 통치 방법 중 최하수는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백성들의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예절을 안다는 다음 구절도 우리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먹고 사는 기본적인 생활이 풍요로워야 개인들이 바르게 행동하고 사회가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배가 고프면 예절이 무슨 소용인가. 겉으로 고고한 척하는 지식인들의 행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속에 숨어 사는 것도 아니면서 벼슬을 하지 않으려는 이상한 사람들의 행동이나 오랫동안 빈천하게 살면서 말로만 인의 운운하는 것 역시 부끄러운 일이다."      

           無巖處奇士之行, 而長貧賤, 好語仁義, 亦足羞也.      


그리고 천하에 재물의 주인이 정해진 바가 없다는 주장도 곁들인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부자가 되었을 때 누리는 바는 임금과 어깨를 견줄 정도라고 강조하다.    


       

"부자가 되는 데는 정해진 직업이 없고, 재물은 따로 주인이 없다.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모이고,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기왓장 부서지듯 흩어진다. 천금의 부자는 한 도읍의 군주에 맞먹고, 거만의 부호는 임금과 즐거움을 같이 누린다."

      

富無經業, 則貨無常主, 能者輻湊, 不肖者瓦解. 千金之家比一都之君, 巨萬者乃與王者同樂.      



화식열전의 등장인물 중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인물은 아무래도 백규(白圭)가 아닐까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양하여 단정하긴 좀 그렇지만, 화식열전을 읽고 나서 토론을 전개하면 대부분 백규에 꽂힌다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백규는 시세의 변화에 따라 거래하면서도 해마다 재산을 두 배로 불렸는데, 풍년이 들면 곡식을 사들이고 실과 옻을 내다팔았으며 흉년이 들면 누에고치를 사들이고 곡식을 내다팔았다. 백규가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여 성공한 인물이지만, 그의 재물을 축적하는 능력 이상으로 높이 평가받는 것은 그의 인생관, 가치관이다. 사마천이 책에서 제시한 부자들 중 몇 명에 주목하며 따라가 보자. 



먼저 강태공이 나온다.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한 일등공신으로 은나라를 격파하고 제나라의 후로 봉해졌다. 또 그를 태공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명칭은 주나라 문왕이 위수(渭水)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던 여상을 만나 선군인 태공이 오랫동안 바라던 어진 인물이라고 여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강태공은 젊은 시절부터 다양한 상업 활동에 종사했고, 천하를 떠돌며 지역의 특성과 문화를 체험했다.         


  

강태공


은나라의 폭군 주(紂)를 정벌한 공으로 제나라에 봉해지자 지역에 맞는 정책을 수립했다. 상공업을 장려하여 제나라를 부국으로 만들었다. 부임 초기 황폐한 발해만의 바닷가였던 제나라에서 상공업을 일으킨 원조이자 부유한 나라로 만들어낸다. 바닷소금을 제조해 내륙지방에 팔고, 부녀자들을 모아 길쌈을 하게 해 방직업을 일으켰다. 개인의 부를 축적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존재이다.   


        

그리고 강태공이 남긴 유명한 명언이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 있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강태공이 주문왕을 만나기 전에 궁핍한 생활을 하였을 때 부인 마씨는 가난을 견디지 못해 강태공 곁을 떠났다. 그 후 강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져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을 때 다시 찾아와서 재결합을 요청한다. 그러자 강태공이 하인더러 물을 떠오라고 한 후 그 물을 땅에 엎는다. 그리고 돌아온 아내에게 지금 바닥의 그 물을 다시 항아리에 담는다면 아내로 맞이 해주겠다고 했다. 한 번 떠난 마음은 두 번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것이다.      


    

그 다음으로 앞에서 언급한, 상성(商聖)또는 상조(商祖)라고 불리는 백규(白圭)가 있다. 사마천 사기열전 중의 ‘화식열전’이 역사서에 등장하는 것이 특이하고, 부자되는 과정이 현대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독서토론회를 하면 대부분 백규에 꽂힌다. 아무래도 백규의 행적이 가장 현실적인데다, 바람직한 가치관, 인생관을 지닌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나라 사람인데, 위문후(魏文侯)때  이극(李克)은 농경을 중히 여겨, 땅을 충분히 이용하는데 힘을 기울였으나, 백규는 시기 변화에 따른 물가의 변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백규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때에는 사들이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고자 할 때에는 팔아 넘겼다. 시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매매 차익을 올렸으니, 진정한 비즈니스 프로였던 것이다. 그리고 풍년이 들면 곡식을 사들이는 대신 의복과 가구를 팔아넘기고, 흉년이 들면 누에고치를 사고 곡식을 팔아 넘겼다. 또한 자연의 변화에 따른 풍년, 흉년의 예측에 따라 거래를 하여 자본을 크게 축적한다. 갑부가 되었다고 거만하거나 낭비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거친 음식을 달게 먹고 욕심을 억제했으며 검소하게 옷을 입고 노비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특히 매매 시점을 결정할 때는 전광석화 같아서 맹수나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했다.    


  

"그는 거친 음식을 달게 먹고 욕심을 억제했으며 검소하게 옷을 입고 노비들과 고락을 함께 했지만 행동해야 할 때는 맹수나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했다."

      

            能薄飮食, 忍嗜欲, 節衣服, 與用事僮僕同苦樂, 趨時若猛獸摯鳥之發




그리고 백규는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사업을 배우고자 했으나, 임기응변의 지혜도 없고, 결단하는 용기도 없으며, 베풀 줄 아는 어짊도 없고, 지킬 바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 강단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 방법을 배우고자 해도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是故其智不足與權變, 勇不足以決斷, 仁不能以取予, 彊不能有所守, 雖欲學吾術, 終不告之矣.     


결론적으로 백규는 탁월한 장사꾼이자 경영인이었다. 그리고 돈만 아는 졸부 스타일이 아니라 베출 줄도 알고 어짊도 있었으며 강단 있는 인물이었다. 부자이면서도 정말 검소했으며, 노비들과 고락을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선곡(宣曲) 지역의 임씨도 특별하다. 내 집의 밭과 가축에서 얻은 것이 아니면 먹지도 않고, 공사(公事)가 끝나기 전에는 술과 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는다. 농부가 생산하지 않으면 식량이 결핍되고, 장인이 물건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제품이 결핍되고, 장사꾼이 물건을 팔지 않으면 귀한 세 가지 식량, 제품, 자재의 유통이 끊어진다. 어부나 사냥꾼이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으면 자재가 결핍된다. 자재가 결핍되면 산택(山澤)은 개발되지 않는다. 이 네 가지는 백성들이 입고 먹는 것의 근원이다. 그 근원이 크면 백성들은 부유해지고, 그 근원이 작아지면 백성들은 가난해진다. 이 네 가지는 위로는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아래로는 가정을 부유하게 한다. 빈부의 도라는 것은 빼앗거나 부여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교묘한 재주가 있는 사람은 여유있게 되고,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은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農不出則乏其食, 工不出則乏其事, 商不出則三寶絶, 虞不出則財匱少.⌏ 財匱少而山澤不辟矣. 此四者, 民所衣食之原也. 原大則饒, 原小則鮮. 上則富國, 下則富家. 貧富之道, 莫之奪予, 而巧者有餘, 拙者不足. 


                   


화식열전에 등장하는 부자들의 행적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시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매매 시점을 결정할 때는 전광석화 같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한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도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파악하여 결단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적절한 시점에 비축하고, 가장 적당한 시기에 판매하여 최고 이익을 올리는 것은 동서고금의 철칙이 아닌가.  

    

계연(計然)은 “농사는 6년에 한 번 풍년이 들고, 6년에 한 번 가뭄이 들며 12년에 한 번 큰 기근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천시(天時)의 변화를 정확하게 꿰뚫고 그에 맞추어 농업 생산의 수준을 계산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파악한 시장 흐름에 바탕한 경영 방식으로 상행위를 실행했다. 농업의 풍작과 흉작을 미리 알고 식량의 풍작이 들 때 사들여서 비축하고 수해나 흉작, 가뭄이 들 때 판매했다. 현대 사회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아주 당연하고 용이할지 모르지만, 수천 년 전의 고대 전제군주 사회에서 이 정도 탁견을 보이니 대단하지 아니한가.      


범여(范蠡)는 장사를 하여 물자를 사서 비축해 주었다가 시세의 흐름을 보아 내다 팔아서 이익을 거두었다. 그리고 백규는 때의 변화를 살피기를 즐겨 관찰하여, ‘사람들이 버리면 자신은 취하고, 사람들이 취하면 나는 버린다’라는 원칙에 따라 곡물이 익어가는 계절에 그는 양곡을 사들이고, 비단과 칠(漆)을 팔았으며 누에고치가 생산될 때 비단과 솜을 사들이고 양곡을 내다팔았다.   



자공

       

또 공자의 제자로 유상(儒商)이라 일컬어지는 자공도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었다. “물건이 희귀해지면 비싸진다”라는 비즈니스 업계의 철칙처럼 그도 수요 공급에 따른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고, 과감하게 결정한다. 가격이 저렴할 때 매입하고 가격이 등귀했을 때 판매해 엄청난 부(富)를 일굴 수 있었다. 자공은 공자가 아끼는 제자로서 언변에 뛰어났으며 정치적 수완도 뛰어나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풍부한 재력으로 공자를 많이 도왔다. 공자가 천하 주유를 할 때 경비를 부담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공자의 명을 받아 국제 무대에 등장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다. 노(魯)나라를 구하고, 제(齊를) 뒤흔들고, 오(吳를) 멸망시키고, 진을 강대하게 만들고, 월을 패자로 만들었다. 자공의 뛰어난 외교력이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나아가 고차원적인 상술로 부자가 되었다. 


둘째, 뛰어난 용인술(用人術)을 발휘했다. 


시대를 초월하여 거부(巨富)가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고 활용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경영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가 없다면 큰 부자가 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삼성을 비롯한 한국의 거대 재벌들이 업계 최고의 인재를 선발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식열전에서 특히 인재 활용을 탁월하게 한 사람이 바로 조간(刁間)이다.     

 

제나라의 풍속은 노예를 낮고 비천하게 여겼지만, 오직 조간은 그들을 아끼고 중시했다. 교활하지만 총명한 노예는 다루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조간은 노예 신분이라도 능력이 뛰어나면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노예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이용했다. 그리고 그들을 파견함으로써 자기를 위해 고기잡이나 제염을 하도록 하거나 혹은 상업에 종사하게 해 이익을 얻도록 했다.  

         

그러면서 노예들을 관리들과 교류하게 했고, 갈수록 그들에게 커다란 권한을 맡겼다. 마침내 그가 이러한 노예들의 힘에 의해 가문을 일으키고 커다란 부를 쌓아 재산이 수십만 금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관직을 받느니 차라리 조간의 노복이 되겠다’라는 속담까지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조간이 노복 스스로의 부를 쌓게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하도록 만들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도간은 교활한 일부 노예들의 본성을 활용함으로써 노예들 스스로도 부자가 되었고, 자신 역시 엄청난 거부가 되었다.      

     

셋째,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경영 방식을 고수한다.  


백규는 “남이 버리면 취하고, 사람들이 취하면 나는 내놓는다人棄我取, 人取我予”는 원칙을 세워 실행했다. 이 또한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확고한 원칙에 따라 비축과 판매를 실행하였다. 물론 그런 원칙을 세운다고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백규는 뛰어난 시장 파악 능력을 소유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풍년이 들면 곡식은 사들이고, 실과 옻은 팔았으며, 흉년이 들어 누에고치가 나돌면 비단과 솜을 사들이고 곡식을 내다 팔았다. 그의 경영 원칙은 일종의 상업 경영의 지혜이며, 그것은 맹목적으로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기회가 오면 신속하게 결정하고 과감하게 행동을 옮겼다.  


백규는 일단 기회가 오면 곧바로 신속하게 결정하고 과감하게 행동에 옮겨야 함을 강조했다. 사마천은 이러한 백규의 모습을 ‘재산을 움켜쥘 시기가 오면 마치 맹수와 맹금(猛禽)이 먹이에 달려드는 것처럼 민첩했다. 趨時若猛獸摯鳥之發.’라고 묘사했다. 

    

다섯째, 겸손하고 절약했다.  


화식열전에서 백규는 "음식을 탐하지 않았고 욕망의 향수를 절제하며 기호(嗜好)를 억제하고 극히 소박한 옷만 입으면서 해마다 그를 위해 일하는 노예들과 동고동락하였다". 

               能薄飮食, 忍嗜欲, 節衣服, 與用事僮僕同苦樂.”


라고 기술하고 있다. 대부호로서의 허세를 부리지 않고 자기가 고용한 일꾼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휘하의 일꾼들의 생활의 전모를 면밀히 파악하고 그들의 생활상의 고초를 들어서 해결해 준다. 백규와 일꾼들 간에 간극을 해소하고, 일꾼들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는 정신을 갖게 된다. 오자병법(吳子兵法)의 주인공 오기(吳起)가 장군이 되어 전쟁터에 임할 때, 병사들과 함께 행군하고 식사하여 군 전투력을 최대화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심지어 부하의 몸에서 고름이 나올 때, 장군 신분임에도 상처 부분에 직접 입을 대어 고름을 빨아낸 것은 유명하다. ‘연저지인(吮疽之仁)’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장군을 신뢰하는 병사가 전투에서 어떻게 임했을까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선곡 임씨는 그 부가 몇 대에 이르렀지만 자신의 신분을 낮추고 겸손했으며 절약을 숭상하면서 스스로 힘써 농사와 목축 일을 했다. 그는 가훈을 정해 자신의 밭농사와 목축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면 입지도, 먹지도 아니하고 공적인 일이 완결되지 않으면 절대로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그는 마을에서 본보기가 되었고, 부유해져서 황제로부터도 존중받았다.     

 

조(曺) 땅의 병씨는 대장장이로부터 시작하여 거만의 부를 쌓았지만, 가족간에는 ‘구부리면 물건을 줍고, 우러르면 물건을 취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행상을 하며 모든 군국에 돈을 빌려 주었다. 그 때문에 추나 노나라에서는 학문을 버리고 이익을 좇아 나선 사람이 많아졌다. 천하의 모든 곳에 고리대금업과 무역을 하여 재산이 왕후와 비견될 정도였지만 오히려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다.


여섯째, 기발한 사고 방식을 발휘한다.  


선곡(宣曲)지방의 임(任)씨 선조는 독도(督道)지방에서 양식 창고를 관리하는 관리였다. 진나라가 멸망할 때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호걸들이 모두 금, 옥, 보물을 탈취했으나 임씨만은 땅굴을 이용해 곡식을 저장했다. 항우와 유방이 진시황 사후 극도의 혼란기에 형양에서 오랫동안 대치하고 있었을 때 부근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쌀 1석(石) 가격이 1만 전으로 뛰자 호걸들의 금, 옥, 보물이 모두 임씨에게로 넘어왔다. 식량의 가격이 뛸 것을 예상하고 미리 비축한 결과 엄청난 재산을 모은 것이다.    

  

임씨의 처신도 달랐다. 다른 부자들은 모두 앞다투어 사치했으나 임씨는 오히려 자신의 신분을 낮추고 겸손했다. 절약을 생활화하면서 자신은 힘써 농사와 목축일을 했다. 논밭과 가축을 매입할 때도 특이했다. 가격이 저렴한 것을 매입하지 않고, 가격이 비싸고 우량한 것을 매입했다. 가격 경쟁력보다 상품의 품질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임씨 가문은 몇 대에 걸쳐 모두 부자로 살았다.    

       

현대 시장중심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임씨의 경영방식이 극히 상식에 해당하지만, 2500년 전의 고대 군주 국가 시대를 생각한다면 대단한 인물이 아닌가. 보통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시장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는 점은 탁월하다. 시장의 흐름이나 시세의 변동보다는 사람의 심리를 오히려 정확하게 인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적은 자본을 투입하여 가격경쟁력을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 품질의 상품에 과감하게 승부수를 거는 과감성이 성공 요인이었다. 부자가 되었어도 겸손하고, 절약하는 품성도 인상적이다.   


        

일곱째 성실하게 노력하라. 


원래 농사는 재물을 모으는 데는 그리 바람직한 업종이  못되지만, 진(秦)나라의 양(楊)씨는 농사로써 그 지역에서 제일가는 부호가 되었다. 무덤을 파서 보물을 훔치는 도굴(盜掘)은 본래 법을 어기는 일이지만 전숙(田叔)은 그것으로써 부를 일으켰다. 도박은 나쁜 놀이지만 환발(桓發)은 이것을 통해 부를 이루었다. 행상은 남자에게 천한 일이지만 옹낙성(雍樂成)은 오히려 그것에 의지해 부유해졌다. 동물의 기름을 판매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옹백(雍伯)은 이 일로써 천금의 이익을 얻었다. 술장사는 하찮은 일이지만, 장씨(張氏)는 그것으로써 천만금의 재산을 모았다. 칼을 가는 일은 보잘것없는 기술이지만 질(郅)씨는 제후들처럼 진수성찬을 먹을 정도의 생활을 누렸다. 양의 위를 삶아 말린 위포(胃脯)를 파는 것은 단순하고 하찮은 장사지만, 탁(濁)씨는 그것으로 기마 수행원을 거느리고 외출하는 신분이 되었다. 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하찮은 의술이지만, 장리(張里)는 그것으로써 저택에 살면서 제후들처럼 종을 쳐서 하인을 부렸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일에 전심전력해 비로소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이전 01화 사마천  궁형(宮刑)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