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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래서 부자되기는 틀렸네요"

책모임 가던 길에 분석점에서 튀김을 사며

by 길엽

<소설 노년 유수(流水)>


몇 개월 전에 인근 마을에 헌책방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도시에서 30년 가까이 헌책방을 운영하다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여 과감히 시골 땅을 구입하여 책방을 열었다. 도시에서도 운영하는데 애로가 있는데, 한적한 시골 마을에 책방을 열 생각을 하디니 정말 대단한 도전이었다. 요즘 책 읽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더욱이 책을 서점에 가서 사는 경우는 더욱 적어졌다. 인터넷으로 구입하니 오프라인 서점은 날마다 쇠토 일로에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이번에 들어온 헌책방 사장님은 마인드 자체가 달랐다. 시골 땅을 구입하면서 폐업한 모텔을 책방으로 개조하여 지역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었단다. 20만 권 정도 장서라니 상당한 규모다. 그런데 전국에서 알음 알음해서 찾아오면서 입소문 덕분에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정기적으로 작가들 특강도 열고, 주민들 초청하여 다양한 공연 등 시골에서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문화 체험도 가능하게 해준다. 개업하자마자 곧장 그곳을 찾았다. 책방 주인이 오랫동안 만난 것처럼 정말 반갑게 반겨주었다.


이곳 거처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고 차량으로는 금방이지만 일부러 황톳길 따라 걸어서 책방으로 간다. 저녁 해질 무렵에 홀로 걸어가는 길에 푹신한 흙길이 참으로 편안하다. 저쯤 빤히 보이지만 그래도 꽤 걷는다. 첫날부터 책을 꽤 샀다. 이렇게 책을 사주면 주인에게 사기도 심어주고 앞으로도 더욱 의욕을 갖게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몇 번 가다 보니 인근 마을에 낙향한 독서가들을 몇 분 만났다. 도시에서 전혀 인연이 없었지만 책을 매개로 한 만남이라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다들 독서에 관한 한 상당한 내공을 갖고 있었다. 차를 한 잔씩 시켜놓고 독서에 빠졌다가 토론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 서로 발표하려고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내공이 가득한 사람들이 의외로 말이 적은 편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진중하게 들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동학들의 모습도 정말 아름답다. 당분간은 독후감은 쓰지 않기로 했다. 녹음하여 AI를 통한 기록물을 남길 수도 있겠지만 녹음하는 것을 미리 알고 토론하면 모두 긴장하고 괜히 어려운 단어를 쓰려고 애쓸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은 그냥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책 진도도 상당히 빠르다.

강변 흙길.jpg

아직은 7~8명 정도가 모이지만 숫자가 늘어날 것 같다. 책모임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가입 신청한다고 한다. 10명 이내로 제한을 둘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강력하게 제한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노년 세대 중에 남자들만이 모인 자리가 되어 와인이나 맥주도 가끔 곁들여지고 어디선가 민물고기 매운탕도 가져와서 맛있게 먹기도 한다. 대부분 시골 출신에 고교나 대학을 도시에서 나온 사람들이라 시골 마을에 대한 귀소본능이 강한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누는 감상 이야기를 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 고향 마을 에피소드로 연계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참석자 모두가 "그래 맞아, 그랬지"라고 동의하며 박수를 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추억은 언제까지나 기억에 남아 있는가 보다. 각자 도시에서 무얼하다가 이곳까지 왔는가는 벌써 파악하고 있지만 책 모임에선 가급적 그런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묻지도 털어놓지도 않는다. 묵계라고나 할까.


오늘은 책모임 가다가 버스 정류장 근처 초등학교 담장 옆의 분식점을 지나갔는데, 요즘 아이들이 워낙 적어져서 분식 가게도 파리 날리듯 초라하게 보인다. 아이들 하교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라 더 더욱 손님이 없는 것 같다. 팔다 남은 튀김이 보인다. 나야 튀김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그냥 가게만 보면서 걸어간다.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가 날 빤히 쳐다본다. 내가 보기엔 오늘 장사 제대로 못 했으니 좀 사가지고 갔으면 하는 표정 같았다. 그래서 분식 가게를 스쳐 지나갔다가 다시 U턴하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튀김 하나 얼마입니까?"

"한 개 700원입니더."

"그럼 남은 거 다 싸주이소."

"그렇게나 많이요. 열 두어 개 정도 보이는데, 진짜 다 싸드릴까예. 저야 좋지만"

"예 남은 거 다 싸주이소. 그러면 얼마입니꺼?"

"열 두개네예. 8천 4백원입니다."

만 원 짜리 한 장을 건넸다. 아주머니가 열 두개라고 하셨는데 내가 아무리 봐도 그것보다 많이 보였다. 그래서 물었다.

"열두 개 넘는 것 같은데, 그리 많이 싸주면 우짭니까. 남는 것도 없을 낀데."

"아입니더. 어차피 인자부터 아~들도 안 올 끼고 식은 것은 팔지도 못하니 다 드릴라꼬예."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열두 개는 분명 넘었다. 어차피 내가 먹을 것도 아니고 책모임 회원들께 간식으로 전할 음식이다.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한가.

만 원 한 장을 주고 비닐 봉지에 가득 담은 튀김을 갖고 나오는데 아주머니가 잔돈을 거슬러 준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잔돈은 됐심더. 그게 남으마 얼마나 남는다고 그렇게나 마이 주시면 우짭니꺼. 잔돈은 됐심더. 다음에 또 올게요. 수고하이소."

분식 가계 주인 아주머니가 1600원 잔돈을 들고 한참이나 서 있었다. 처음엔 미안해 하다가 내가 끝까지 잔돈을 받지 않으려 하니 그제서야 환하게 웃으신다. 하루 종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저렇게 하루 종일 서서 분식 가게를 운영하고 저녁에 집에 가면 또 얼마나 피곤하실까. 다음 책방 행사 때는 좀더 많이 사드려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분식 가게를 벗어나 책방까지 부지런히 걸었다. 책방에 도착하니 평소보다 적은 다섯 분이 앉아 있다가 날 반겨 준다. 내 손에 든 튀김을 보고 다들 박수 치고 정말 반갑게 맞이한다. 내가 괜히 쑥스럽다. 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한 사람 당 한 개만 먹어도 되는데 뭐 이리 많이 샀어요? 이거 요새 한 개 1000원 정도 안 할까요. 이렇게 많이 사가지고 와서 고맙습니다. 올 때마다 이렇게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오시니 우리가 괜히 미안합니다. 다음엔 그냥 빈손으로 오셔도 됩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

"오다가 보니 분식 가게 아주머니가 손님도 없이 가만히 앉아 오가는 사람들만 힘없이 바라보고 있기에 남은 튀김 다 싸달라고 했심더. 잔돈도 줄라 카는 거 마 됐심더 카고 이리 싸가지고 왔으니 맛있게 잡수이소. 잘 드셔야 다음에 더 많이 사가지고 올 낍니더."

"잔돈도 안 받고 이렇게 많이 사가지고 오셨네요. 그래도 잔돈은 확실히 받아야 할 건데, 어쨌든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잔돈 안 받는 것이 제 마음이 편할 듯해요. 주인께선 잔돈을 꼭 거슬리가 줄라 카고 전 안 받는다 카고 한참 렇게 시랐슴더. 그기 얼마나 남는 기라꼬."

그러자 다른 참석자들도 잘 하셨노라고 한 마디씩 한다. 칭찬의 말로.


도시에 있을 적엔 재래시장에 자주 갔다. 어엿한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 곳보다 시장 입구 바닥에 채소 등을 펼쳐놓고 파는 할머니들은 보면 그냥 지나가지 못 한다. 어떨 때는 할머니가 팔다 남은 채소를 모조리 사서 인근 지인들의 사무실에 적당하게 나눠주기도 했다. 어차피 집에 가져오면 아내에게 좋은 소리를 듣긴 글렀고 해서 다른 이들에게 주었지. 난전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에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고 내 어린 시절 오일장에서 열무나 솎음 배춧단을 쌓아놓고 팔던 어머니 모습이 강하게 오버랩되어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그랬다. 아내와 멀리 드라이브 가다가도 길가에 혼자 앉아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가 보이면 즉시 차를 세워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서 아내의 눈총을 받는 경우도 꽤 있었다. 어느 날엔 늙은 호박을 몇 개나 사서 집에 가지고 오는 바람에 처치곤란일 때도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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