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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과 함께

by 길엽

우리집 3남매가 모두 30 초중반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3남매는 참으로 순하고 어질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 어디 친구들 가족 모임에 가도 우리집 아이들이 제일 순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심지어 친구들 모임에 전 가족이 참여했을 때, 어느 친구의 외동아들은 드센 성격을 보여 우리집 아이들 3남매를 합친 것보다 더 다루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자랄 때부터 3남매는 우애가 깊었고 저희들끼리 정말 잘 지냈다. 지금이야 각자 대기업 같은 좋은 직장은 아닐지 몰라도 고만고만한 직장 생활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 큰아들, 딸, 막내아들 참으로 멋진 조합이다. 가끔 아이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어찌나 귀엽던지.


막내아들만 멀리 나가서 혼자 생활하며 지내고 있고, 딸 아이는 제 집을 두고 우리집에 들어와 함께 살면서 나와 아내를 지켜주었다. 내가 현직 은퇴 후 이곳으로 들어온 이래로도 3남매의 생활 패턴은 큰 변화가 없다. 내가 도시 본가에 있을 때, 큰아들도 집에 거처가 있긴 했지만 시내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에 외박하는 날이 훨씬 많았다. 단 한번도 어디서 자느냐, 왜 집에 오지 않느냐고 따져 묻지 않았다. 서른 중반이니 알아서 살아갈 나이가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아이들이 자라오면서 나와 아내에게 말대꾸를 하거나 얼굴을 붉힌 적이 거의 없다. 나도 아이들에게 욕심을 부려 지나친 말을 한 것도 같은데 가끔 아이들에게 물어 보면 자신들이 성장할 때 나와 아내가 아껴준 것만 기억한단다. 그렇다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빈말 같다. 어쨌든 지금 우리집 3남매는 부모에게 지극정성인 효자들이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는 나에게도 안부 인사 하느라고 한 단계 더 귀찮게 되었겠지. 그건 미안한 일이다.


내가 아직 인터넷 쇼핑에 익숙지 않은 탓에 필요한 책을 문자로 보내면 큰아들이나 딸 아이가 모바일 쇼핑으로 구매하여 이곳에 보내준다. 그렇다가 많은 책을 사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 월급이 빤한데 책을 몇 권이나 구입하면 그 부담은 어찌 될까 싶어서 무리하게 부탁하지는 않았다.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이 알고 기꺼이 사서 보내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이들도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전화 통화를 하면 아이들의 말은 간단 명료하다. 오히려 내가 할 말이 많고 실제로도 그렇게 내쪽에서 말이 많지. 지금껏 나와 아내에게 큰소리 한 번 안 내고 얼굴 붉히지 않은 3남매가 참으로 고맙다. 가끔 내가 이래 이래 해서 고맙다라고 하면 아이들이 거의 같은 말로 답한다.


"아버지, 다른 집 자식들도 다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집 아버지 어머니처럼 자식들을 챙겨주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아버지도 가끔 돈이 생기면 전부 우리들에게 다 주시잖아요. 명절 때 우리 3남매에게 용돈을 주실 때 그것도 30대에 접어든 우리들이 참 좋았고, 다른 집 부모들도 그렇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위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아이들이 고맙기에 고맙다고 한 것뿐인데 아이들이 오히려 그렇게 말해주니 쑥스럽고 진짜 고마울 뿐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내가 어디 외출하고 돌아와서 현관 문을 열면 셋이 쪼르르 달려나와 나에게 안기던 날들이 그립다. 내가 어딜 가려고 집을 나설 때도 우리집 3남매가 나란히 서서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하던 귀엽던 시절이 정말 그립다. 아내가 그렇게 교육시켰겠지만 그래도 우리집 3남매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각별하고 지극정성이었지. 부모와 자식은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3남매 중에 막내아들만 포옹이 자연스럽다. 큰아들은 어색하고, 딸 아이는 아예 그렇게 하기 어렵다. 아이들 나이가 그렇게 되었다.


며칠 전에 도시에서 행사가 있어서 간 김에 큰아들을 잠깐 만났다. 워낙 바쁘게 사는 큰아들이지만 그래도 나와 같이 있을 땐 가급적 넉넉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시골 생활 불편한 것은 없으시냐, 필요한 것 없으실까요. 등등 온통 나를 걱정하는 말뿐이다. 당연히 없다라고 답했다. 3남매 모두 30대를 넘어서니 한 명이라도 결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 손녀가 세상에 태어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넌지시 비치니까 큰아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답한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데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말하리요. 내 입을 닫게 하는 고도의 술수를 보여주는 큰아들 역시 이젠 어른이 된 것 같다. 나도 요즘 큰아들의 생활에 대해 이런 저런 것들을 물었고, 아들은 친절하게 답해준다. 늘 만면에 미소띤 얼굴로 대해주는 큰아들이 고맙다. 지금부터는 우리집 주역은 내가 아니고 이 큰아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기야 큰아들이 스무 살 어른이 될 때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지.


고교를 졸업한 직후 스무 살부터 객지 생활을 하고 군복무 후 일본 도쿄에서 2년 반 동안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게 생활하였지. 남들 다 가는 일본 대학 입학 시험에 떨어져 실망하고 있을 때 아내의 결단으로 집으로 돌아와 유명하지 않는 지방 대학을 졸업했다. 5년 가까이 집 밖에서 생활했으니 그 고초야 얼마나 컸겠나. 부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늘 죄스러워했고, 난 나대로 실망이 컸었다. 하지만 그때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실망보다 미안함이 앞섰다. 도쿄에서 설이나 추석 명절 즈음에 진짜 외로움이 컸었다고 고백할 때는 내가 정말 미안했고 후회도 많이 했다. 지금도 큰아들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난다. 참으로 미안하다. 그래도 큰아들은 절대로 나에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심히 하지 않아 기대에 못 미쳐서 죄송하다는 말을 많이 했지. 이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아이들 생활에 조금씩 안정되어 가니 그 시절 일들이 추억으로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가끔 그런 말을 했다. 나와 큰아들이 지금까지는 큰 갈등이 없이 지내왔지만 앞으로 언젠가 세대갈등을 경험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의견 대립도 있을 것이다.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우리 둘 사이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가 무조건 양보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제부턴 우리집을 책임지고 나갈 사람은 내가 아니고 큰아들이기 때문이다. 난 부모로서 조금 떨어져 3남매의 삶을 도와주는 역할만 할 생각이라고 말이다. 30대가 아무리 어른 나이라고 해도 그래도 어설픈 곳이 있을 것이다. 내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조금이라도 힘이 있고 능력 있을 때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큰아들은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오히려 나를 생각하는 말을 한다. 그래서 나와 큰아들은 대립할 수 없는가 보다. 아직까지는.


큰아들과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다보면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아들이 내게 해준 고마운 일들이 순간적으로 많이 떠오른다. 서로 미안해 하고 서로를 걱정해 주는 천상 부자지간임에 틀림없지만, 이젠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느낌이 든다. 뭔가 급한 일이 생기면 큰아들에게 가장 먼저 연락해서 부탁하고 아들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처리해 준다. 신속하게 처리하는 그 실력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저도 직장 업무에 바쁠 텐데 한 번도 거절 않고 도아주는 그 마음씨가 참으로 아름답다. 어쩌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하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내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뭘 도아드릴까요 등이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 데면데면하다는 지인들도 꽤 있다. 하지만 우리집 큰아들은 동생들 잘 챙기고 부모에게 지극하게 효도하는 참으로 괜찮은 아들이다. 막내 아들이 서울 직장 면접 시험 갈 때는 새벽에 일어나 구두를 깨끗이 닦아 놓을 정도로 동생들 생각하는 마음도 크다. 참으로 넉넉한 마음씨의 큰아들이라 3남매가 오랜만에 모여 완전체가 되면 담소와 폭소가 연이어 나온다. 정말 보기 좋은 3남매 우애다. 그리고 고맙다.


지난 번 막내아들이 날 보러 왔다가 다시 올라갈 때 차 안에 봉투에 돈을 넣어 주었다. 가면서 차비 하라고. 그런데 큰아들에게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차별인 듯 싶다. 내 삶을 챙겨주는 것은 큰아들이 훨씬 큰데, 가끔 내려오는 막내아들에게 더 고마워한다니. 이건 좀 그렇다. 어머니께서 살아 생정에 이런 말을 하셨다.


"있다 아이가 누구 집에 큰 며느리는 매일 1년 365일 시부모 모신다고 그렇게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둘째 며느리가 우짜다가 촌에 왔다가면서 봉투라도 놓고 가면 그집 시오마이가 둘째 며느리를 그렇게 칭찬했다 안 카나. 그 사람이 참 생각도 짧제. 둘째 며느리를 큰 며느리 앞에서 그렇게 칭찬하면 큰 며느리 입장은 우째 되고 그 마음에 상처는 얼마나 크겠노? 그라다 벌 받을 낀데. 큰 며느리 공은 잊아뿌면 절대 안 된다 싶어. 내 옆에서 늘 챙겨주는 사람을 고맙게 생각해야 하제. 우짜다가 오는 자식이나 며느리 고맙긴 하지만 그래도 1년 365일 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우선이다 안 그렇나. 그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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