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세대가 되면 괜히 매사에 초조해하고 급해진다고 한다. 실제 주위 사람들을 보면 그런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이렇게 노년세대 대열에 올라 서보니 꼭 그런 겻만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으면 있는 대로, 아니면 혼자라도 적절하게 살아가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다. 굳이 무리해서 사람들 틈에 끼어들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이곳에서 난 혼자살이에 익숙해졌다. 굳이 마을 사람들 곁에 가서 억지로 친하게 지낼 이유가 없다. 그들이 옆에 와서 말이라도 걸어주면 못 이긴 척 답해 주고 그 정도에서 적당하게 대하면 된다고 본다.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시골에 귀향 귀촌한 사람들과 원주민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도 그렇다. 나처럼 방 한 칸 월세를 내어 살다가 행여 마을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불편한 기색이 느껴지면 미련없이 이곳을 떠나 도시 본가로 가면 된다. 이곳에 들어와 농사를 짓고 뭔가 수입을 올려 생활하려는 사람들이 오가도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 노년세대가 되면 굳이 억지로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다. 텃밭에 채소라도 재배히면서 농촌 분위기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아는 어느 사람의 명언!
"시골에 들어가서 텃밭에 채소를 키우거나 넓은 논밭에 농사를 한다고, 쓸데없는 짓이다. 두 평 이상은 노동이다. 괜히 시골로 들어가 새로운 농사를 하는 짓은 절대 말리고 싶다. 무조건 적자다. 몸과 마음 모두 상한다. 두 평만 넘어셔면 그냥 노동이 된다. 노가다란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와 같은 농촌 지역에 들어와 괜히 원주민들과 소통한답시고 어설프게 대화를 나누려 시도하면 오히려 서로 피곤해진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쩌다 오가는 길에 서로 인사라도 나누면 적당할 것 같다. 그렇게 자꾸 마주치다 보면 어느 새 정이 들어 가까워지게 된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오지랖 넓게 마을 일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도시에서 이런 곳에 들어 오는 사람들 대개 떡이나 돼지 수육 등 먹거리를 사가지고 첫 인사를 드리지만 마울 원주민들은 의외로 덤덤하다. 이곳 사람들이 어디 그런 음식을 못 먹는 어려운 사람들도 아니다. 읍내만 가도 그런 음식은 흔하다. 물론 아무런 인사도 없이 그냥 냉정하게 원주민을 대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난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고향 마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기에 어린 시절 이런 저런 인연이 닿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거처를 정한 이 집 한쪽 구석진 방의 주인은 집안 먼 친척 형수라서 큰 문제가 없었다. 내 고향애선 왜 그 마을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남의 마을에 터를 잡았느냐면 다들 한소리 했다. 아무리 고향 마을이라 해도 낯익은 얼굴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없는데다가 세대교체되어 마을의 새로운 주역이 된 젊은 세대들과는 특별한 정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고향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거처를 정했다. 주인 할머니는 80을 바라보고 있었고, 오래 전에 혼자가 되셔서 안 그래도 적적한 상황에 내가 온다고 하니 월세도 안 받으려 하셨다. 그래서 아예 1년 치 월세를 미리 지급해 버렸다. 도시 본가를 다냐오거나 어디 인문학 강의라도 해도 이곳 거처를 떠나는 날이 많아도 1년 동안 별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서였지.
작년에도 전라남도 여수에 1주일간 강의를 맡아 관계자가 구해준 곳에서 숙식을 했다. 그렇게 1주일을 지내고 여기로 돌아오니 주인 할머니께서 매일 매일 방을 얼마나 깨끗이 쓸고 닦았는지 맨들맨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우거지국에 맛있는 오곡 잡곡밥까지 정성껏 내놓으셨지. 무사히 잘 다녀와 다행히란 말씀도 곁들여 주시고. 그때 여수를 거쳐오면서 그곳의 갓김치를 한 박스를 사서 차에 실어와서 주인 할머니께 선물로 드렸는데, 갓김치 특유의 매운 맛을 힘들어 하셨다. 그리고 이웃에 고루 고루 나눠주시고.
난 그냥 스스로릐 루틴을 만들어 생활했다. 혼자 생활에 익숙해서 그것도 좋았다. 밤늦게까지 독서와 집필, 가끔 유튜브 동영상 강의 시청, 네플릭스 영화 감상, 그리고 새벽 산책 및 점심 먹고 하루 만 보 등 대체적으로 정해진 코스를 짜서 그에 맞게 천천히 생활했다. 간간이 읍내까지 걸어나가서 맛난 음식을 사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도시 본가는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 했다. 아내가 오랜만에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고 있을 텐데, 눈치없이 그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다. 물론 급하게 요청이 오면 차를 운행하여 달려갔지.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이 이곳에 적응해 가면서 새벽 들에 나가는 마을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지. 마을 사람들이 내게 뭔가 부탁을 하거나 할 말이 있을 때는 주인 할머니를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갈등할 일도 별로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어디론가 관광을 가신다면서 동행하겠냐고 물었을 때, 나도 속으로는 같이 가고 싶었지만 좀더 시간이 필요한 같아서 완곡하게 사양하고, 대신 주인 할머니를 통해 10만원 찬조금을 보냈었지. 관광버스 안에서 찬조금을 내신 분들을 소개했던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이 관광을 다녀온 후 마을 이장이 주인 할머니께 내 먹으라고 선물을 전했단다. 그것도 결국 내가 주인 할머니께 다시 드렸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과 적당하게 어울렸다. 바로 이웃에 계신 연배가 꽤 있으신 분께서 마을 대동회에 가자고 권유하였을 때도 처음엔 완곡하게 거절했다. 아직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 때가 아니란 생각헤서 그랬는데, 마을 이장과 몇 사람이 나를 데리러 왔다. 그 날 마을 사람들 앞에 자기 소게도 하고 인사도 드렸지. 꽤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 많았는데도 내 고향 마을 사람들을 잘 모르는 눈치였다. 마을 이장을 오래 하셨던 내 선친 이름을 들려 줘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90대 후반이었으니.
다시 말하지만 나이가 들면 혼자 살아가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언제까지 자녀들이 나를 챙겨줄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도 자신의 생활만 해도 팍팍한 세상이다. 억척스럽게 뭔가 하려고 아웅다웅하는 것 우리 노년 세대에겐 절대 금물이다. 그냥 적당하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낸다 생각하고 그 흐름에 맡겨 살아가는 자세 필요하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 수 있도록 스스로 적응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