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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이렇게 살고 싶다

2024년 갑진년 내 삶에 관해서

by 길엽

단체 카톡에선 어젯밤부터 새해 첫 해맞이 함께 할 사람을 모집하는 글이 꽤 올라왔다. 도시에 있을 때도 그런 해맞이로 유명한 곳에 별로 가본 적이 없다. 집 근처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서서 같이 해를 바라보며 새해 희망을 빌었던 기억이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에 불과하다. 12월 마지막 날은 처가에서 동서들과 장인 장모님과 함께 보낸 날이 꽤 있었지. 동서들도 요란한 해맞이 같은 것보다 처가에 모여 어울려 지내는 것을 선호했다. 그것도 장인 장모님 돌아가시고 나니 약속이나 한 듯이 자연스럽게 없어졌지만.


새해에 이렇게 살고 싶다.


이곳의 루틴에 맞게 매일 편안하고 여유롭게 생활한다.

새벽에 눈을 뜨면 곧장 방문을 열고 나가 시골의 맑고 깨끗한 아침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들판과 둑길을 걷고,

돌아와 양치질, 샤워하고 앉아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되 소식한다.

잠시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사색에 잠긴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을 읽고 그중 괜찮은 내용은 노트북에 기록한다. 관련 사항은 사기, 춘추좌씨전과 한국고전종함 DB,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하여 내용을 보강한다.

내 생에 첫 종이책인 '불택(不擇)'은 작년 끝 무렵 최종 수정 작업을 하여 출판사로 보냈기에 인쇄하고 발행만 하면 되고, 두 번째 책 "간언(諫言)" 원고를 수정하여 두 번째 책을 완성하여 출간한다. 기존 전자책 원고가 잇으니 내용을 조금만 보강하면 될 것 같다. 책이야 안 팔리면 어떤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내 흔적을 남기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앞으로 보은(報恩), 계략(計略) 등의 시리즈를 써내려 가려 한다. 안 필려도 된다. 열심히 쓰다 보면 세상 사람들이 알아 주겠지 뭐.



그리고 브런치 스토리에 매일 소소한 일상을 기록한다.

점심을 먹고 잠시 낮잠을 잔다. 도시 본가에서 아내가 내가 처음 이곳에 올 때 미리 준비해 준 두툼하고 푹신한 이불 속에서 낮잠을 자는 것도 행복할 것이다. 이불 위로 그 느낌이 좋았지.

유튜브 동영상이나 네플릭스를 통해 하루 한 편 정도의 영화를 본다. 내용도 간단하게 메모해야 하겠지.

간혹 어느 오후엔 마을 골목길을 따라 걸어 읍내까지 다녀 온다. 읍내 쇠락한 5일 장터에서 아직도 영업하는 돼지국밥집에서 테이크 아웃하여 국밥 5인분 정도 사가지고 돌아와 주인집 할머니와 이웃을 모시고 함께 먹는다.

읍내 시장 오가는 길에 춘삼월 청량한 봄바람을 맞아 둑길에 홀로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는 것도 괜찮을 듯.

읍내 걸음하지 않는 날은 매일 하루 만 보를 정기적으로 걸을 터이다. 건강해야 노년 행복을 위한 최저의 전제 조건을 맞출 수 있으니.



저녁을 먹고 양치질 그리고 다시 샤워 후 책삼 앞에 앉아 독서와 사색 그리고 집필 시간을 갖고 싶다. 매일 하는 것이 결코 쉽진 않겠지만, 이곳에 들어올 때 내 꿈이었지.

도시에 있을 때보다는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래야 새벽 일찍부터 개운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가끔 찾아와 방안에 둘러 앉을 때는 미리 사둔 족발을 꺼내놓고 같이 막걸리나 소주라도 나눠 마시고,

그들의 삶을 들으면서 크게 리엑션을 해주려 한다. 가끔은 보름달이 휘영청 솟아 오른 들길을 같이 걷는 것도 좋겠지.

어쩌다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싶을 때면, 새벽 일찍 집을 나선다. 골짜기 골짜기마다 흘러내련 지천이 강물과 만나는 곳엔 부드럽게 올라가는 새벽 안개가 일품이고 간간이 물새 소리가 꾸욱꾸욱 들리더라. 누군가 쳐놓은 그물들을 슬쩍 들어올려 밤새 잉어가 얼마나 잡혔는가 보는 것도 재미고,



이웃의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을 둘러보고

어린 시절의 경험을 살려 나이 많은 선배들의 농장에 일도 해주고

덩치고 크고 힘이 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런 것을 여기에 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마을 사람들이 읍내 나갈 때 내 차를 동원하여 태워주면서 차안에 있는 은료수나 간식거리를 드리며 활짝 열린 창문 너머로 달려가는 자연 풍경을 마음껏 누리게 해드리고 싶다.

이곳에 들어올 때 세상 인연을 끊고 그야말로 나만의 세계를 혼자 누리겨 살겠다는 애초의 꿈은 살짝 접고 누군가 여기를 와서 하룻밤 같이 보내겠다면 내 어설픈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면서 짓궂게 놀리는 소리도 들으려 한다. 1930년대 가요무대 오랜 옛날 그 트로트도 뽕짝 뽕짝 함께 듣든 것도 재미일 테지.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내 연금을 아내 몰래 조금 축내서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아내는 모른 척해주겠지. ㅎㅎ.

특별한 목적이나 인생 목표 없이 그저 흘러가는 세월에 맡겨 노년 세월을 주위 사람들과 여유롭게 보내는 그런 새해를 만들고 싶다. 참!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이 경청(傾聽)이니 나이 많은 분들의 말씀을 진중하게 들어주고, 건강이 허락되는 분에 한해 멀리 여행, 관광도 하게 보조하여 그분들의 삶을 질을 높여 주고 싶다. 젊은 날 잘 했던 일본 산골 여행도 설계할 수 있겠지. 그렇게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삶이라면 좋지 않을까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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