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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안타

똑똑한 거 아무 소용 없더라

by 길엽

어느 지인의 상가에 가서 문상을 한 뒤 우리들끼리 둘러 앉았습니다. 매월 한 번씩 보는 익숙한 얼굴들이 특별한 말이 없어도 정겹기만 합니다. 소주 맥주 한 잔씩 나누면서 상주를 가운데 앉혀 놓고 위로도 합니다. 돌아가신 분의 연세라든가 돌아가시기 전의 행적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84세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우린 아직은 더 사실 수 있는데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다는 위로를 전했습니다. 상주는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부인과 아이들도 우리들 앞에 소개를 합니다.


상주가 다른 테이블로 옮겨가자 이제부터 우리 테이블에서 본격적인 화제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의사인 후배 하나가 자신의 대학 친구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제 의대 동기 중 하나가 시골 00종고 출신인데, 그 친구 어른이 돌아가셔서 우리가 단체로 문상을 갔거든요. 그런데 그 집 마당이 특이하게 마늘모 형태였단 말입니다. 그리고 넓직한 마름모 형태의 땅이 절반 정도는 팔린 땅이라고 하더라고요. 친구 의대 학비로 시골 마당 일부와 논밭을 해마다 조금씩 팔았다는 말을 듣고 그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우리 동기들 전체가 침묵 속에 빠졌던 기억이 눈에 선합니다. 의대 그게 뭣이라꼬, 촌의 전답을 그렇게까지 다 팔아가면서 자식 공부시키면 나머지 가족들은 우짜라꼬 하는 생각이 들대예."


누군가 그 말에 가볍게 반박합니다. 반박이라기 보다 다른 생각일 뿐이겠지만요.


"형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시골 종고에서 의대를 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 친구분 어머니나 아버지 입장에선 자식이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습니까. 그 친구분 공부는 또 얼마나 잘 했겠습니꺼. 시골 종고에서도 의대 가지 말란 법이 있겠습니까만 그 친구분도 진짜 대단합니다. 공부도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싶습니다. 형님 친구분 지금은 어디 계십니까. 얼굴 한 번 보고 싶을 정도네요."


출신대학 의대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 자리에선 묻지 않았지만 시골에서 노부모가 논밭 팔아 아들 의대 공부시켰을 텐데 그 후로 그 친구 분이 어떻게 보답했을까가 참 궁금했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이야기를 전해주는 후배의 덕망에 비추어 볼 때 그 친구 분도 당연히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잘해 드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가 대중 마무리지을 즈음에 옆에 있는 또 다른 선배님께서 새로운 에피소드를 전해 주십니다.


"있제. 우리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일이라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한번은 어딜 다녀와서 갑자기 날 붙잡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


이 선배님 말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선배님의 어머니께서 살악 계실 때 어느 이웃이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 해서 KAIST를 졸업하고 유명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어서 집안의 자랑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하지요. 그리고 그 똑똑한 아들이 만난 여성 분이 또한 같은 대학 출신의 재원이었고, 그래서 며느리 감으로 최고라 여겼답니다. 그런데 부모님을 누가 모실 것인가 의논하는데, 그 잘난 아들과 며느리는 단칼에 거절하였답니다. 특히 그 며느리가 더 강경하게 나오면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한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시부모 면전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말이 시어머니 귀에 들어왔겠지요. 시부모가 먼저 부탁한 것도 아니고, 설령 그런 제안을 받아도 시부모 당신들은 시골에서 그냥 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단지 자식들이 모여 의논하던 차에 나온 의견에 불과했던 것이지요. 그런데도 시부모가 똑똑한 며느리가 너무나 세게 거절했다는 말애 내심 속상했던 것이지요.


이 사연을 전해주시는 선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대요.


"있제, 우리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그 집 이야기를 전해 주면서 우리 집사람한테 정말 고맙다고 했단다. 우리 집사람 별로 똑똑하지는 않아도 결혼 이후로 어머니 아버지를 잘 모시고 살았는데, 어머니께서 그제서야 며느리가 소중하고 며느레에 대해 감사하다는 표현을 진심으로 전했던 거야. 야~야~ 내가 미안타."


그렇게 상가에 둘러앉아 이런 저런 사연을 주고 받는데 어느 후배가 전체 이야기를 정리하듯 한 마디 합니다.


"그래서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 안 카능교? 지금 들었던 이야기 주인공들이 굽은 나무라 카는 거는 아이까네 오해는 하시지 말고요. 어쨌든 나이가 들어도 부모 귀한 줄 알고 잘 모시는 자식이 최고인 기라요. 안 그런교? 그런 의미에서 자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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