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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21. 2023

"아버지"라고 불러줄 때 묘한 감정이 생깁니다

3남매 모두 30대에 들어서서 

아이들이 30대 초중반이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3남매가 혼기가 가득 찼는데, 왜 결혼 안 하느냐고 많이들 물어봅니다. 옛날과 달리 요즘 시대에 결혼을 강요할 수도 없거니와 자신들의 삶에 대해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라 여겨 아이들에게 결혼 이야기를 좀처럼 꺼내지 않습니다. 


가끔 주위에서 청첩장을 보내오거나 손주 사진을 보여 주며 자랑하면 저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은 갖고 있지요. 우리집 아이들도 각자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큰아들과 딸 아이는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직장 생활하고 있고, 막내아들은 멀리 경기도 남양주 시에서 혼자 생활하며 역시 직장에 다닙니다. 2개월에 한 번 정도 집으로 옵니다. 막내가 오는 날은 아이들 3남매가 완전체가 되면서 그들끼리 풍성한 대화를 나눕니다. 


막내아들은 형이나 누나보다 좀더 살갑게 저와 아내를 대합니다. 오랜만에 집에 오면 자신의 근황을 들려주는데, 먼저 저에게 와서 한 30분 정도 이야기해 줍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가서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지요. 아내는 막내 아들이 오는 날엔 유난히 웃음소리가 커지고 길어집니다. 


"아버지, 있잖아요.~"로 대화를 시작하는 큰아들과 막내아들에 비해 딸 아이는 "아빠"로 화제를 전개하지요. 

특히 아들 둘이 "아버지"라고 불러주는데, 그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아버지'란 호칭을 들을 때마다 예전과 달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묘한 감정이 솟아오릅니다. 고마움과 쑥스러움, 책임감과 미안함 등이 한데 섞여 제 가슴 속을 한참이나 돌다 나갑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적에 그렇게 살갑게 모시지 못한 것을 늘 후회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머니께는 최대한 효도했다고 자부했지만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분 모두 55세를 넘기지 못하시고 너무나 아깝게 세상을 버리셨는데, 돌아가실 때 당시는 그 나이가 그렇게 적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는 그 자체가 너무나 가슴아프고 슬펐습니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 평생 제가 삻갑게 '아버지'라고 불러드린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매사 반발했던 것들이 두고 두고 회한으로 남습니다. 어머니를 고생시켰다는 것에 제가 분노하였기 때문이지요. 어느 가정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장인 아버지가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어머니 혼자서 여자의 몸으로 식구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남자는 그래도 하다 못해 속칭 노가다를 해도 마음만 먹으면 식구를 굶길 정도는 결코 아니지요. 하지만 어머니 혼자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런 일입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제가 많이도 반발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러워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집 아이들이 저에게 달려들거나 하면 제가 견딜 수 있을까라고.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제가 했던 것처럼 우리집 아이들이 저에게 한다면 제가 단 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 혼자 농삿일을 하느라 온몸이 시커멓게 탔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하교한 뒤 들에 가면 어머니 혼자 하루 종일 일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머니 곁에서 함께 일하면서 

"엄마, 조금만 있으면 내가 학교를 마치고 여기로 돌아와 엄마 모시고 살 끼다. 절대 고생하지 않도록 할 끼다. 아버지처럼 무능하고 무책임한 가장은 절대 안 될 끼다."라고 말했지요. 그러면 어머니께선 아버지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낮으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아무리 그런 말을 해도 제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를 보살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했기에 제 행동이 정당하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우리집 아이들이 그 옛날 제가 했던 것처럼 하지 않고 저렇게 살갑게 부모를 대해주니 더욱 부끄럽습니다. 그들이 불러주는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 세 글자에 머무르지 않고 제 가슴  깊은 속에서 울려 나오는 삶의 울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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