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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23. 2023

당신이 없으면 꼭 탈 나네

아픈 사람 옆에는 누군가 항상 있어줘야 한다는 사실

토요일 오후 일본에서 손님이 오신다기에 부산항 국제터미널에 가서 차에 태워 호텔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몇 년 전 아내와 일본 오이타에 갔을 때 하루 종일 자신의 차로 이곳저곳 안내해 주셨던 분이라 아내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후유증으로 2년 정도 고생하는 아내를 집에 혼자 두고 나서기가 좀 그랬진요. 큰아들은 평소 같으면 오후 4시쯤 집을 나서서 월요일 아침까지 주말 숙박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시내 게스트 하우스로 갔겠지만 제가 잠깐 집을 비운다는 말을 듣고 저녁 7시까지 집에 있다가 가게 되었지요. 딸 아이도 동료들과 여행을 떠나서 집엔 아내만 남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국제터미널에 5시 30분쯤 배가 도착하면 입국 수속이 끝나 제 차에 태워 코모도 호텔까지 갔다가 집으로 가면 7시는 충분하다고 보았지요. 


그런데 강풍 때문에 배가 6시 30분 정도 도착했고, 수속 시간도 꽤 길었습니다. 손님들을 차에 태워 코모도 호텔로 가는데 큰아들이 지금 출근한다고 전화가 왔기에 


"엄마 지금 괜찮나?" 라고 물었더니,  큰아들이


"지금 보니 괜찮은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란 말과 함께 큰아들은 집을 나섰겠지요. 그렇게 손님들을 코모도 호텔에 내려 짐 정리를 한 다음에 저녁을 먹이려고 호텔 근처 식당을 찾았는데,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네요. 어쩌다 영업 중인 가게에 들어가니 앉을 자리가 없네요. 그래서 제 차로 부평시장까지 갔습니다. 


부평야시장에 들어서니 일본 손님들이 휘둥그레집니다. 토요일 밤 손님들이 진짜 많았거든요. 불야성 같은 시장 곳곳에 긴 줄로 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일본 오이타 현 분고오노 시 미에마치 쵸 시골에선 이 시간이면 정적이 흐를 텐데, 여기 부평 야시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정말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사진을 찍다가 일행을 놓치고 제가 다시 찾아가니 안심하는 그 표정이 생생합니다. 


순대나 돼지국밥을 먹을 거냐고 물었더니 일본 산골에서 오신 손님들이 기겁을 합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내장 순대, 돼지국밥에 놀랄 수밖에요. 그러고 보니 먹을 만한게 마땅찮네요. 어묵은 일본에도 많이 있으니 말이지요. 한정식당은 이곳에서 잘 안 보이고. 그래서 유부초밥 우동과 잡채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 음식은 정말 좋아하네요. 연신 "오이시이데스네"를 연발합니다. 맛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이제서야 여유를 보입니다. 다시 시장통을 걸으면서 본격적으로 구경하네요. 


문득 집에 혼자 있을 아내 생각에 전화를 걸었더니, 목소리가 조금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손님들께 사정을 설명하고 급히 차를 운행했습니다. 자기들끼리 택시를 타고 갈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먼저 귀가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그분들을 태워 호텔 주차장까지 모셔 드렸습니다. 집으로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하는 말


"당신이 없으면 꼭 탈 나네. 큰아~가 집을 나서고 나서 괜찮았는데 저녁에 뭘 잘못 먹었는지 설사를 하네. 설사만 하면 그래도 참겠는데, 배가 아파서 힘들었어."


큰아들이 집을 나선 7시부터 제가 집에 돌아온 9시까지 그 두 시간 공백에 아내가 뭔가 잘못 먹은 음식 때문에 설사와 복통을 겪었던 것이지요. 


그말을 들으니 정말 미안하더군요. 그래서 침대에 눕힌 뒤 배를 살살 문질렀습니다. 다섯 손가락을 돌아가면서 마사지하고, 또 배를 문지르고 그렇게 한참 있으니 아내 표정이 조금씩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잠이 오는가 봅니다. 제가 무슨 의료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정성을 모아 그랬을 뿐인데 다행으로 아내의 표정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고 안심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기야 여차하면 119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하겠지요. 아내가 119 구급차에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간 적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평소엔 토요일 주말에 딸 아이가 집에 반드시 있는데, 이번에는 학교 동료 선생님들과 1박 2일 여행을 가서 집엔 저와 아내만 남았습니다. 아내가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거실로 나와 잠깐 앉았습니다. 올해 결혼 33년이 됩니다. 젊은 시절엔 저와 아이들을 위해 온몸으로 헌신했던 사람이라 저렇게 몸이 불편하면 제 마음이 정말 짠해집니다. 미안하기 그지없지요. 제가 퇴직 후 아내를 도운다고 세탁,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를 조금씩 하지만 아내 고생에는 비교도 안 됩니다. 더욱이 코로나 백신 접종 후유증 이전엔 장기간 허리 때문에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코로나 백신 후유증도 어느 정도 진정되니까 이제 다시 허리가 아파다면서 웃픈 모습을 보입니다. 깊이 잠든 아내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손도 살며시 잡아 보고 발바닥을 세게 마사지 해줍니다. 발바닥과 장딴지 부분을 마사지 해주면 피로가 빨리 풀리지요. 이것도 제가 무슨 전문라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연히 어떤 책을 보고 알게 되어 아내에게 해주었습니다. 발바닥을 꾹꾹 누르고 발등을 살살 만지니까 한결 편해지는 모양입니다. 


제가 집에 없으면 아내 자신도 모르게 '불안심리'가 생긴다는 말을 오래 전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집에 홀로 두고 어디 외출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말 불가피하게 어딜 갈 때는 딸 아이가 반드시 아내 곁을 지키도록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큰아들과 딸아이가 집에 함께 있을 때도 아내는 오직 저만 불러 무언가를 시킵니다. 심지어

딸 아이 바로 옆에 있는 물건을 저에게 가져다 달라고 할 때도 있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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