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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탓하지 마세요

by 길엽

제가 사는 아파트 경비원들 대부분 65세를 넘겨 촉탁 형태의 몇 개월마다 계약을 다시 합니다. 70대 중반에 이른 분도 계시지요. 동대표자회의에서 그분들 재계약 안건이 올라오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재계약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용역회사를 통해 오신 분들이 아니라 주민대표들과 관리소장님이 합동으로 면접하여 직접 채용하는데다가 길게는 15년 가까이 근무하신 분도 계실 정도로 안정성을 갖춘 곳입니다. 다른 아파트에선 이런 경우 3개월마다 재계약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우리 아파트에선 6개월로 해드리자고 했지요.


지난 달 재계약 건을 놓고 의견을 주고 받던 날 동대표자회의에 참석하신 각 대표님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담소하면서 여유롭게 결론을 내렸는데, 회의가 끝나고 음료수와 과자 등을 들고 경비실로 가져 가니 그분들이 모두 모여 회의 결과를 기다라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요. 회의에 참석할 때는 전혀 몰랐지만 이렇게 나이가 많은 경비원들이 혹시나 재계약 안 되어 그만두게 될 때 느끼는 실망감,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다행히 결론이 그분들께 좋게 나왔기에 저도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한 분은 며칠 간 잠도 못 잤다고 하소연을 하시더군요. 그리고 정말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저 혼자 결정할 사항도 아니고, 이렇게 감사 인사를 받을 일은 더 더욱 아니었지요.


요즘같이 살기 어려운 현실에서 나이 많다고 재계약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얼마나 절망할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저는 회의 석상에서 나이 많은 경비원들 편에서 서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습니다만, 그래도 이 분들 표정을 보니 마음이 짠합니다. 저도 곧 저 분들 연배가 될 것이고,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지요. 그래서 얼른 편의점에 가서 따뜻한 꿀 헛개 음료수를 몇 개 사들고 다시 와서 드렸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위로하면서 말입니다. 따뜻한 음료수를 받아들면서 표정이 급 환해집니다.


꿀 헛개 음료수.jpg

그날 경비실 밖엔 눈이 조금 내리고 있었지요. 그렇게 함께 모여 앉아 따뜻한 음료수를 같이 마시면서 담소를 이어갔습니다. 눈이 그렇게 많이 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따뜻한 실내에 따뜻한 음료수까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예전부터 저와 함께 앉으면 당신들의 지난 인생 이야기를 잘 풀어놓으시더니 이번에도 풍부한 경험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지난 인생도 이야기해달라고 합니다. 제 이야기는 다음에 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밖엔 눈이 간간이 내리고 경비실 안 따뜻한 분위기에서 주고 받는 이야기들이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어쩌다가 당신들의 나이를 언급하면서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나이가 많아서 이젠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버림받는 것 같다고 넋두리를 하셨지요. 그래도 아파트 경비원 일이라도 하니까 집에 가서 체면도 서고 경제적으로 상당히 도움이 되어 다행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여기 말고 다른 데 가면 나이가 많아서 써주지도 않는다는 것과 여기 주민들이 참으로 친절하다는 것도 좋다고 하시네요. 그 점은 저도 기분 좋았습니다. 특히 10년 넘어도, 나이가 70이 넘어도 본인만 건강하고 의지만 있다면 계속 근무할 수 있게 해주는 동대표자회의 분들께 감사하다고 꼭 전해 달라네요. 이것을 제가 전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습니다.


또 한 분은 당신의 귀엽고 예쁜 손녀 재롱잔치 동영상을 보여 주십니다. 만면에 미소가 듬뿍 퍼져나옵니다. 그렇게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한 마디 했지요.


"앞으로 나이 절대로 탓하지 마세요. 그런 거는 이야기해 봤자 본인만 손해거든요.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고 괜히 남에게 우습게 보일 뿐입니다. 그런 것보다 자신의 건강에 유의해야 합니다. 평소에도 가급적 많이 걸으셔야 합니다. 건강해야 그래도 일할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은 고령화 시대라서 나이 드신 분도 일할 기회가 많습니다. 다만 건강해야 그런 기회가 있다는 것을 꼭 아셔야 합니다. 잘 드셔야 하겠지요. 집에 계신 사모님께도 잘 해드려야 합니다. 부부 사이 좋은 것이 나이 드신 분의 건강에 정말 중요하거든요. 돈이 필요하지만 욕심부리는 것은 무의미해요. 대신에 건강은 정말 욕심부리듯 신경써야 해요. 그래야 저랑 긴 시간 이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제가 따뜻한 음료수라도 사드릴 수 있지요. 아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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