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저녁 식사 초대블 받고 지인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일식(日食) 집으로 우리를 초대하신 부부께서 일부러 일정을 잡아서 저희들을 귀한 자라에 불러 주셨지요. 자리에 앉자마자 다들 반가운 마음에 손부터 잡았고, 근황을 주고 받았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라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술잔을 나누면서 담소를 이어나갑니다. 부부께선 만면에 미소 가득히 띄우며 우리들에게 음식을 많이 먹으라고 거듭 권하고, 초대받은 우리들은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건배도 하면서 밤이 깊어 갑니다. 초대 손님 중 두 분 남성 선배님은 평소에도 서로 톰과 제리 식의 재미있는 유머를 연이어 보이시며 우리들의 폭소를 이끌어 냅니다. 저렇게 나이가 드신 분들인데도 젊은 사람들처럼 풍성한 유머를 주고 받는다는 것이 새로운 느낌으로 와닿습니다.
이렇게 식사 자리에 초대받는 경우가 많진 않지만 이런 자리에 앉을 때면 초대하신 분의 그날 말씀이나 행동을 유심히 살피게 됩니다. 가족도 아니고 학교 동창도, 친구도, 동향 출신도 아닌 사회생활에서 오가다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정겨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 분이 정말 고맙지요. 그런데 작년에도 이런 자리가 있었는데, 그 분은 유난히 목소리도 크고, 혼자 떠드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식사 시간 내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밥 한 그릇 함께 먹는다는 것의 의미가 큰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초대받아 참석한 사람들 앞에 초대자 혼자 그렇게 긴긴 시간 큰소리로 떠들어 버리니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불러 초대하더라도 그저께 우리를 초대하신 이 선배님 부부같이 사람들을 편하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참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를 초대하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평소에 책도 많이 읽으시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많이 베푸시는 분이라 하실 말씀도 많을 텐데, 말씀이 별로 없으셨습니다. 하지만 말없이 미소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참 아릅다웠습니다. 나이가 들어 주위 사람들을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하더라도 이 분처럼 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다 사람들이 뭐라도 물으면 그제서야 못 이긴 듯 몇 마디 답하시네요. 그것도 아주 짧게 말이지요. 말씀 중에 유난히 제 가슴에 와닿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둘러 앉아 먹는 기 행복이지요."
앞에서 언급한 분처럼 사람을 초대해 놓고 혼자 다 떠들어버려서 분위기를 망치면 그 후 다시는 그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저도 그랬습니다. 그 후에도 자리를 만들자고 전화를 몇 번 받았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완곡하게 거절했지요. 저의 의중을 알아챘는지 최근에 다른 모임에서 만났지만 저를 피하려는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그래도 그 분과는 다시 식사 자리에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어디 밥 한 끼 못 얻어 먹어 그렇게 분위기 엉망인 식사를 할 이유가 있나요?
저도 가끔 번개 모임이라 해서 몇 분을 초대하여 식사 자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혹시 그날 분위기가 어땠을까를 가만히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에 도취되어 제가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을까 술을 많이 마셔서 실수는 하지 않았을까 등등 말입니다. 한 번 초대한 사람을 다시 불러 초대한 적이 없어서 제가 초대한 자리를 피하는지를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사람을 초대할 때는 신중하게 처신하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지요. 뭐 그리 시시콜콜 신경을 쓰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둘러 앉아 먹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식사 초대라고 하니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네요. 이번 식사 초대의 감사함과는 결이 다른 내용입니다만 밥 한 그릇 하지 떠오르는 내용입니다. [史記(사기)]의 「範蔡雎澤列傳(범수채택열전)」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물론 '원한' 관련 내용은 조금 그렇지요.
一飯之德必償, 睚眦之怨必報
(일반지덕상, 애자지원필보)
밥 한 그릇의 은덕에도 반드시 보답했고,
눈 한 번 치켜뜬 작은 원한도 반드시 갚았다.
밥 한 그릇의 은덕에도 반드시 보답했다는 말입니다. 세상 살면서 고마운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요. 아주 조그마한 은혜에도 고마워할 줄 알고 잊지 않고 보답한다는 것이 중요한데도 우리가 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삶에서 오늘 여기까지 오면서 저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그 모든 분께 보답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테지만, 마음 속으로나마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면 살아가면서 더욱 겸손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