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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쳐다보는데?

by 길엽

어느 유튜브 동영상에서 강사님이 그런 말씀 하시더군요.


"전세계에서 상대방을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비가 되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겁니다. 외국인들은 길가다 사람을 만나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고 상대방은 비록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웃으며 대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린 그렇게 남에게 미소짓고 인사하는 것도 어색하고 그냥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으면 대번에 싸움이 된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저도 가끔 어딜 가다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지나가면 기분이 불쾌해지더군요. 하지만 상대방이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면 저도 당연히 인사를 합니다. 나는 모르지만 상대방은 날 잘 알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상대방이 그렇게 미소지으며 인사를 하면 저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게 마련이지요. 다만 상대방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거나, 흔히 사람들이 말하듯이 나를 째려본다는 느낌이 들면 "왜 쳐다보는데?"하고 물어보고 싶긴 해요. 그렇지만 실제로 그렇게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 더욱이 이렇게 나이 들어 주위 사람들하고 논쟁이나 시비를 하는 것 자체를 피해 버리지요.


젊은 세대들은 예전에 전화 박스 안에서 서로를 쳐다보다가 시비가 되어 통화도 하지 않고 대판 싸웠다는 언론 보도가 심심찮게 있었지요. 요즘이야 전화 박스 안에서 전화를 하는 것 자체가 거의 없으니 그럴 일은 사라졌다고 봅니다. 어쨌든 일상생활에서는 상대방을 노려 본다는 것이 상당히 심각한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많긴 해요. 하지만 스스로 얼굴에 미소를 띠기만 하면 그런 시비거리는 단번에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노년 세대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시비보다는 너그러운 표정으로 상대방 말을 잘 들어주면 오히려 상대방이 더욱 친절하게 다가오는 겁니다. 전 그렇게 생각해요.


이 나이에 무슨 인생 목표를 거창하게 세워 젊은 날처럼 가열차게 청춘을 볼사르는 짓도 할 이유가 없고, 가족을 위해 내 온몸을 희생해야 할 시기도 지나간 것 같으니 가급적 주위 사람들고 좋게 좋게 지내고 싶을 뿐이지요. 실제로 모임에 가면 후배들과 둘러 앉아 술잔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후배들도 그런 저를 좋게 봐주기 때문에 그런 시간들이 저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어쩌다가 2차 가면 몇 몇 후배를 모아 놓고 맥주라도 사면서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대부분은 그들이 말하고 저는 많이 들어주는 편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건 아닐까요.


노령화 시대에 나이 든 사람들의 삶에 개인차가 크고 다양한 것 같습니다. 고독한 상태에서 그 누구와도 교류 없이 하루 종이 집안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계발하면서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며 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연히 경제적 격차에 따른 삶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퇴직 후 노년 세대가 되어 행복을 누리려면 건강, 경제적 여유, 취미 활동, 사람들과 만남 등이 많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제 조건을 충분히 갖춘 노년 세대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 사회적 문제가 됩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이 사람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여유를 갖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지요. 그래서 내가 좀 여유가 있다고 해도 어려운 주위 사람들의 상황을 충분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타인들과 여유롭고 너그러운 대화 분위기를 만들기 매우 어렵습니다. 우선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큰 문제입니다. 이런 빈부격차가 낳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 같은 공적 기관에서 제대로 된 정책을 도출하기 위해 숱한 고민을 하긴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결국 해당 개인 차원에서 전개되어야 하겠지요. 가끔 공원 같은 데서 만나는 노인들의 무료한 삶의 현장을 보면서 그 심각성을 깊이 느낍니다. 새벽 일찍이 눈을 뜨면 오늘 하루 무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그 분들의 하소연을 접할 때면 젊은 세대의 "왜 쳐다보는데?" 같은 논쟁은 사치에 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이가 들어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힘없이 바라보다 어디선가 무료 급식하는 곳이라도 있으면 긴 줄을 서서 한 끼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노년 세대의 삶을 접하면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왜 쳐다보는데?


이런 것도 젊은 세대처럼 건강하고 뭔가 할 수 있을 때 말인 것 같아요. 나이든 사람들은 그런 것을 할 기회도 거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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