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은 오지만 이번 봄은 유난히 기다려집니다. 겨울 가운데 있으면서도 이렇게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다가오는 봄에는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꽃이 가득한 길을 혼자서 편안하고 여유롭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봄 기운에 취해 걸어가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어쩌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잠깐이라도 길가에 앉아 함께 봄꽃을 바라보면서 배낭에 싸들고 간 막걸리라도 꺼내어 나누어 마시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습니다. 아무도 없다면 그냥 혼자서 아무 생각이 없이 봄날 기분에 가득 취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 두 발로 걷기가 불편하면 도저히 누릴 수 없기에 그래도 이렇게 내 발로 마음껏 가고 싶을 때 저렇게 배낭을 짊어지고 봄꽃 가득한 그 길을 따라 끝없이 걸어가고 싶습니다.
이웃 마을에 저같은 노년세대가 살고 있다면 옛날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면 걸음을 재촉하여 그곳까지 찾아 가고 싶습니다. 길가 시냇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리니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어렸을 때, 젊었을 때는 이러한 순간, 이런 공간이 귀한 줄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았을 뿐입니다. 그 시절을 보내고 이렇게 나이가 들어 보니 그때가 진짜 좋은 시절이었지요. 지금은 따뜻한 봄 햇살 가득한 저 들길이 얼마나 제 삶에 소중한지 깊이 깊이 절감합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많이 누리고 싶습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만물들이 본격적으로 소생하는 계절 그 봄을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제 입가에 미소를 가득하게 만들어 줍니다.
누가 그랬지요. 하늘을 나는 것보다 물 위를 걷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나이가 들어 제 발로 가고 싶은 곳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최근 사회복지사 실습 관계로 어느 요양원에 난생 처음으로 가서 그곳에 계신 분들을 보면서 지금 이렇게 내 발로 건강하게 마음껏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절절히 느꼈습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고 계시거나, 낙상을 방지한다고 팔을 묶어 놓고, 식사 시간에는 봉사자들이 일일이 밥이나 국을 떠먹여 주는 장면을 장면을 보면서 지금 내가 이렇게 어딘가를 마음껏 걸어다니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에 깊은 감사함을 느꼈지요. 요양원에 난생 처음 가보았기에 그 충격은 정말 대단히 컸습니다. 나이가 들고 병든 부모님을 도저히 봉양할 수 없는 자식들이 요양원에 부모를 맡길 때 그 안타까운 심정이야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자식들도 오죽하면 그런 시설에 부모를 맡겨야 했을까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막상 요양원에서 목격한 장면들은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지요.
봄날이 오면 혼자 걸어서 저렇게 아름다운 꽃길을 마음껏 걸으면서 내 행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배낭엔 막걸리와 안주 그리고 간식까지 가득 넣어서 길가다 누군가를 만나면 기꺼이 내놓고 꽃나무 아래에서 봄날 정취를 함께 맛보고 싶습니다. 올해 봄날은 유난히 기다려집니다. 본격적인 노년 세대에 나이가 들어서 맞이하는 봄날이라 그럴까요. 이번 겨울 태어나고 처음으로 종이책 한 권을 출판하게 되어 수정 작업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수정 작업 그거 만만치 않은 일이더군요. 고치면 또 보이고, 수정해도 어딘가 어색하고, 그렇게 긴 긴 겨울 책 출판과 씨름하며 보냈습니다. 어쩌면 겨울을 그렇게 힘들게 보냈기에 따뜻한 봄날이 기다려지는가 봅니다. 2월 말 쯤에 지인들 초청하여 출판기념회를 갖기로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귀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준비합니다. 첫 번째 권이 끝나고 곧장 두 번째 책 원고 작업을 하려 합니다. 당분간 조금 쉬면서 봄날을 기다리는 여유를 누려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