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리췬 저, 홍순도 홍광훈 공역 <진시황 강의> 를 읽으면서
퇴직하면 책 읽을 시간적 여유가 많을 줄 알았습니다. 막상 그 나이가 되어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더군요. 예상보다 바쁘고 생각보다 하루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지인들이 저에게 현직때 보다 훨씬 바쁘게 산다고 합니다. 결코 그럴 리가 없지요. 그래도 오랜 기간 책을 가까이 했기에 도서관에 가서 다섯 권 정도 책을 대출해 오면 제한 기간 2주일 안에 충분히 읽어낼 줄 알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역의 책이라 더 더욱 그런 생각이 강했지요.그런데 막상 노년 세대에 들어와 보니 책 읽을 의욕이 그리 많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책을 읽다가도 잠깐 운동삼아 외풀할 경우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꽤 길어집니다. 그러다가 길에서 지인이라도 만나면 몇 시간이고 담소를 하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너무나 허전하고 외롭더라는 선배님들의 말씀을 늘 생각하였기에 오가다 만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지요. 선배님들의 말씀과 결이 조금 다른 행동일 수 있지만 말입니다.
748쪽의 진시황 강의 책은 일 주일째 읽고 있습니다. 이제 650쪽 부분이라 끝이 보입니다. 책 속에 메모를 보니 이 책을 2014년에 처음 읽고 네 번째 반복하고 있더군요. 10년 동안에 네 번 읽는 책이 제 삶에서 참 드문 일입니다. 대부분 책은 한 번 읽고는 다시는 손에 들지 않았지요. 그리고 제대로 끝까지 읽지 않은 책도 꽤 많습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부터 독서 경험이 충실하게 누적되지 않다 보니 텍스트 이해 능력이 부족한 탓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읽으면서도 무릎을 칠 만한 부분이 많이 나옵니다. 폭군 진시황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한 인물이지만, 지은이 왕리췬의 글에서는 진시황의 개인적 인물 파악뿐만 아니라 진시황을 둘러싼 당시 역사적 시공간이 아주 충실하고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어서 상당히 두툼한 책인데도 진도가 잘 나갑니다. 두 분 번역자의 글 재주가 가독성을 높인 덕분도 큽니다. 간간이 관련 자료를 찾아 확인하면서 당시 역사 현장에 발을 디딘 느낌도 갖게 됩니다. 이 책이 끝나면 읽을 책이 많이 쌓여 있는데, 이번에는 좀 말랑말항한 책을 읽어 볼까 합니다. 노년에는 분량도 적고 말랑말랑한 책이 적당한 것 같기에 말입니다.
실제로 인문학 현장 강의를 가면 숨어 있는 역사적 비밀 이야기를 청중들이 참 좋아하더군요. 저 자신이 역사 전공자가 아니고 사마천의 사기 번역본을 10여 년 반복하면서 읽으면서 관련 책들을 많이 접했을 뿐이기에 역사적 지식은 매우 얕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긴 시간 동일한 텍스트를 반복하여 읽으면서 그래도 느낀 바가 꽤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동일한 사기 원전을 번역한 책들인데도 그 내용에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 괜히 뭔가 성취한 느낌도 들었지요. 이제 생각해 보니 참으로 어리석은 성취감일 뿐입니다. 그래도 그랬던 시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됩니다. 진싱황 영정이 과연 여불위의 아들일까 아닐가 같은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이 책에서도 장황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저도 결론이 헷갈립니다. 맞다 아니다 관련 책을이 많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저자 왕리췬 이 분의 학문적 깊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 분 책 시리즈로 <한무제 강의> <항우 강의>< 삼국지 강의>가 집에 있는데 언제 다시 그 책들을 읽을 수 있을까요. 어쩌다 왕리췬 교수의 CCTV <백가강단>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시청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중국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을 오롯이 이해하는 것은 한게가 있지만 강의 중에 자막으로 중국어 간자체가 아래에 나와서 대강의 내용을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렇닥 지금부터 중국어를 공부하여 그 분 강의를 이해하는 것은 진짜 무리겠지요.
나이가 들어사 책을 읽을 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역의 책을 읽기를 추천합니다. 다양한 도서가 바람직하긴 하지만 그것도 젊은 시절 한창 팔팔할 때 이야기지, 지금 저와 같은 연령대의 노년 세대들은 그런 무리를 범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봅니다. 제 생각이 절대 옳은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오늘은 멀리 경기도에서 혼자 생활하는 막내아들이 집에 다니러 왔다고 올라가고, 큰아들은 시내 게스트하우스에서 주말 숙박 아르바이트 그리고 딸 아이는 약속이 있어 외출 중이라 집안이 조용합니다. 아내는 안방에서 Tv로 아시안 컵 축구 하이라리트를 비롯한 드라마, 영화 등을 보는지 좀처럼 방 밖으로 나오지 않네요. 일요일 낮 오랜만에 여유를 갖고 <진시황 강의> 책을 진중하게 볼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잠깐 거실 너머 바닷가를 바라봅니다. 파란 바다 위로 하얀 포말을 뒤로 남기며 배 한 척이 아름답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책을 꾸준히 읽고 자연 풍경을 여유롭게 누릴 수 있음에 이 순간을 감사하게 받아 들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