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분위기 역시 다르네요. 오후 아내 병원 정기 치료 다녀오며 만난 재래시장 길이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엄청나게 복잡했습니다. 평소엔 정말 한가한 길인데 어제는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나 할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차량은 꼬리를 물고 시내 한복판이 거대 주차장으로 변했습니다. 신호등이 몇 번이나 변해도 로터리 대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짜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사람 구경을 해서 그럴까요, 아내도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신기해합니다.
재래시장 입구엔 사람들이 걷지도 못하고 촘촘하게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평소에도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상인들도 살고 지역 상권도 나라 경제도 활성화될 테지요. 역시 재래시장에 가서 직접 상인들과 대면하여 물건을 흥정하면서 사고 파는 것이 사람 냄새 나는 세상 아닐까 싶습니다. 물건을 팔면서 오랜만에 환한 미소를 짓는 상인 얼굴을 보니 괜히 저까지 즐거워집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 따라 달성군 논공 금포 돌끼장 5일장을 갔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형과 여동생이 있음에도 굳이 저를 데리고 시골 5일장에 가신 마음을 이젠 조금이나마 이해하지만 그땐 잘 몰랐습니다. 어머니께서 가자고 하시니 그냥 짐을 들고 따라 나섰지요.
그 당시는 요즘과 비교도 안 되게 시골장도 흥성거렸습니다. 오가다 옆 마을의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안부 인사를 주고 받던 풍경도 많았지요. 외가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어머니 덕분에 용돈도 꽤 받아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외가 친척으로부터 받았던 용돈을 모조리 어머니께 드리면 어머니는 펄쩍 뛰면서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엔 제 의견을 받아들이되 그중 일부를 용돈으로 다시 받긴 했지만 말입니다. 설날 명절 분위기를 도시에서 이렇게 오랜만에 보게 되니 그 자체로도 즐겁습니다. 차를 세워 놓고 재래시장 속으로 들어가 물건을 사면서 그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기도 합니다.
다시 차가 빠지면서 시내를 천천히 달립니다. 다시 큰 재래시장이 나옵니다. 여기는 규모가 훨씬 더 큰 시장이고 유명해서 근처 버스 정류장부터 사람들이 미어터질 만큼 많이 몰려 갑니다. 참 신기하네요. 설날이 그 무슨 대단한 날이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 곳곳에서 몰려왔을까. 아니지, 설날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이니 대단한 날은 맞네요. 하지만 평소에는 사람 발걸음이 너무 뜸했던 곳입니다. 그래도 시내인데 말입니다. 상인들이 경기가 좋지 않아 파리 날린다고 하소연하던 보습이 TV에 자주 보였지요. 참 안타까웠습니다. 제 욕심엔 이런 설 연휴 명절 분위기가 앞으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요새는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어도 고향 마을에 좀처럼 가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이젠 집에서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시청하기도 하면서 아이들과 그냥 조용하게 연휴를 보냅니다. 고향을 방문하는 지인들 모습을 보면 몇 년 전만 해도 부러웠는데, 이젠 덤덤해졌네요. 그냥 연휴 기간 집안에서 아이들과 둘러앉아 맛난 음식 먹고 담소를 하는 것이 오히려 좋더군요.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라도 가보는 것이 도리지만 그것도 이젠 영 뜸하게 되었습니다. 불효자에 다름없지요. 지금 고향 마을에 가도 대부분 낯선 얼굴이고 그나마 낯익은 이들은 몸이 성치 않아서 썩 가보고 싶지도 않네요. 부모님이라도 계신다면 또 모르지요. 저도 이렇게 세상 만사 귀찮은 일만 보이네요. 이것이 나이 먹은 탓일까요.
집에 돌아와 쉬다가 잠깐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하러 가는데 아파트 주차장엔 예년의 설 연휴때보다 차량이 좀 적은 느낌이 드네요. 쓰레기 장에 빈 종이 박스도 적게 보입니다. 지난 추석만 해도 빈 종이 박스가 너무 많아 경비원 분들이 애를 먹었는데 말입니다. 설날 연휴가 지나면 여기도 쓰레기 몸살을 앓을지도 모르겠네요. 설 연휴 분위기 가득한 시내를 벗어나 아파트로 오니 여긴 어제처럼 한가합니다. 오가다 만난 주민들의 표정은 미소 가득합니다.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오후 시간입니다. 주차장 너머 푸른 바다가 꿈을 꾸듯 가만히 하늘을 안고 있습니다. 설날 연휴도 사람들 사이의 일이라 자연 풍경은 그저 어제처럼 그냥 조용한 그림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