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평소 즐겨 읽는 책 중에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있는데, 그중 열전(列傳)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사기는 황제가 주인공인 본기(本紀)가 12권, 제후들 이야기 세가(世家) 30권, 그리고 열전이 70권에 8서와 10표 등 총 130권으로 그중 제126권 골계열전(滑稽列傳)에 순우곤(淳于髡)이란 인물이 나옵니다. 역사책에 골계열전 같은 이야기꾼 요즘 많이 쓰는 스토리텔러가 실려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더군요. 물론 비유와 골계로 군주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는 면에서 우리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도 있지요. 이제 순우곤이 어떤 말로 군주에게 간언하여 우리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지 살펴 볼까요.
순우곤(淳于髡)은 익살과 다변으로 유명했던 전국시대 제나라의 변론가이며 골계(滑稽)를 잘했을 뿐 아니라 여러 차례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외교활동을 능숙하게 해냈습니다. 자신의 군주인 제위왕(齊威王)에게 간언하여 설득하고, 타국 제후들이 제(齊)나라를 침략하자 기지로 이를 막아냈습니다. 『사기(史記)』 골계열전에는 순우곤(淳于髡), 우맹(優孟), 우전(優旃), 동방삭(東方朔) 등이 등장하며, 이들 모두 군주에게 능수 능란한 말재주, 풍부한 기지로 간했고, 그들은 재치 있는 말로써 군주를 변화시킬 정도로 탁월했습니다.
골계열전에서 골계란 말은 사전상 의미는 ‘익살을 부리는 가운데 어떤 교훈을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골계는 흔히 웃기는 것, 유머, 익살, 해학 등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골계란 말은 초나라 시인 굴원의 작품 `복거(卜居)`라는 시에 `돌제골계(突梯滑稽)`라는 구절에 등장합니다. 여기서 '돌제`는 모지지 않는 모양, 미끄러지는 모양의 형용이고 `골계`는 구르는 모양의 형용입니다. 그래서 `돌제골계`란 게을러서 빈둥거리며 살아가는 것을 형용한 말이 되겠지요. 그리고 `골계`란 주기(酒器)의 일종으로 술이 술병에서 줄줄 흘러내리듯이 변설(辯舌)이 거침없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형용하는 말이라고도 합니다. 유래가 다양하지요. 자 순우곤이 실제로 어떻게 골계와 재치로 군주를 설득하였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제나라 위왕(威王) 때 왕이 수수께끼 놀이를 좋아하고, 음탕하게 놀면서 밤새워 술 마시기를 즐겨하였다. 국사를 내팽개치고 술에 빠져서 정사를 경대부에게 맡겼다. 그러자 문무백관들도 문란해지고 타국이 잇따라 침입하여 나라의 멸망할 위기가 눈앞에 다가왔으나 측근들은 감히 간언하지 못했다. 군주가 국정을 제대로 이끌지 않자 순우곤이 왕이 좋아하는 수수께끼를 통해 유세했다.
“나라 안에 큰 새가 있어서 궁궐에 머무르고 있는데 이 새가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는데 왕께서는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아시옵니까?”
이에 왕이 말했다.
“그 새는 날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한번 날면 하늘 높이 솟아 오을 것이며, 울지 않으면 그뿐이나 한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 답하면서 곧장 여러 현령(縣令)과 현장(縣長) 72명을 조정으로 불러 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한 사람은 죽인 다음 군사를 일으켜 출병하였다. 그러자 천하 제후들이 크게 놀라서 침략했던 제나라의 땅을 모두 돌려주었다. 제위왕이 순우곤의 간언을 듣고 본격적으로 국정을 수행하자 그 위세가 그 위세가 36년 동안 떨쳤다.
그리고 제위왕 8년에는 남방의 강대국 초(楚)나라가 군대를 크게 일으켜 제나라 국경을 침범했다. 위왕이 순우곤으로 하여금 조(趙)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청하게 했다. 이때 위왕이 순우곤에게 황금 1백 근과 사두마차 10대를 하사하여 예물로 가지고 가게 했다. 그러자 순우곤이 하늘을 우러르며 크게 웃자 그의 관의 끈이 모두 끊어졌다. 타국에 원병을 요청하러 가는데 이 정도 예물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뜻이 내포된 웃음이었다. 그래도 순우곤은 직접 드러내지 않았다.
왕이 말했다. “선생은 이 예물이 적다고 생각하오?”
곤이 대답했다. “어찌 감히 적다고 하겠사옵니까!”
왕이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크게 웃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순우곤이 말했다.
“지금 신이 오늘 동쪽에서 오는데, 길가에서 푸닥거리하면서 풍년을 기원하는 자를 보았사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겨우 돼지 족발 하나와 술 한 잔을 손에 쥔 채 빌고 있었사옵니다. ‘좁고 높은 거둔 것은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낮은 곳에서 거둔 것은 수레에 가득 채워 주십시오, 그리고 오곡이 번성하고 잘 익어서 우리 집에 곡식이 철철 넘쳐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사옵니다. 신은 그가 손에 쥔 것은 적은데 바라는 것이 그처럼 많은 것을 보았기에, 그 사람이 생각나서 그만 웃었사옵니다.”
그러자 제위왕은 황금 천일(千溢), 백벽(白璧) 열 쌍, 사두마차 1백대로 예물을 늘려주었다. 순우곤이 말하는 의도를 알아채고 위왕이 대규모 예물을 준비해 준 것이다. 그리고 곤이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 조나라에 이르렀다. 조나라 왕은 순우곤의 요청에 따라 정예 병사 10만 명과 보급용 전차인 혁거(革車) 천승(千乘)을 내주었다. 초나라가 이 소식을 듣고 밤중에 군대를 이끌고 물러가 버렸다. 위왕이 크게 기뻐하며 후궁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곤을 불러서 술을 내렸다. 강대국 초나라와의 대군을 물러가게 하고 전쟁을 막았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위왕이 물었다. “선생은 얼마나 마셔야 취하시오?”
순우곤이 대답했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취하옵니다.”
臣飲一斗亦醉 一石亦醉
위왕이 말했다.
“선생이 한 말을 마시고 취한다면 어찌 한 섬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오? 어디 그 내막을 들어볼 수 있겠소?”
“대왕이 계신 자리에서 술을 내리서서 제가 마시게 되면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곁에 있고 어사(御史)가 뒤에 있어서 신이 몹시 두려워 엎드려서 마시게 되니 한 말을 못 넘기고 곧바로 취합니다. 또 만약 어버이에게 귀한 손님이 오셔서 신이 소매를 걷어 올리고 꿇어앉아 앞에서 모시고 술을 대접할 때, 술을 받아 마시기도 하고, 또 술잔을 받들어 손님의 장수를 비느라 자주 몸을 일으키게 되면 두 말을 못 마시고 금방 휘해 버리게 되옵니다. 하지만 사귀던 벗과 오랜만에 갑자기 만나는 자리에선 너무 기뻐서 옛 일들을 이야기하고 마음을 털어놓고 서로 말하며 대여섯 말을 마시게 되면 곧바로 취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을의 모임에서 남녀가 한 자리에 한데 섞여 앉아 서로 상대방에게 술을 권하고 함께 머무를 때는 술 주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옵니다, 함께 어울려 육박과 투호 놀이로 짝을 짓고 남녀가 손을 잡아도 벌을 받지 않고, 좋아하는 상대방을 뚫어져라 바라보아도 금하는 일이 없으며, 앞에 귀걸이가 떨어지고 뒤에 비녀가 어지러이 흩어지는 경우라면 신이 속으로 이런 것을 좋아하여 여덟 말을 마셔도 2~3할 밖에 취기가 돌지 않습니다. 또 날이 저물어 술자리가 끝나게 되어 술통을 모으고 다가앉아 남녀가 동석하고, 신발이 서로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마루 위의 촛불이 꺼지며, 주인이 신만을 머물게 하고 다른 손님들을 배웅하며, 엷은 비단 속옷의 옷깃이 열리면서 은은한 향기가 퍼지니, 이런 경우라면 저의 마음은 한없이 즐거워져 한 섬은 마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게 되고, 쾌락에 극에 이르면 슬퍼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사가 다 그러하니 극에 이르지 않도록 하고 극에 이르면 쇠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故曰酒極則亂, 樂極則悲. 萬事盡然, 言不可極, 極之而衰.
순우곤이 이렇게 풍간하였다.
왕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위왕은 그 뒤로 밤새워 술 마시는 것을 중지하고 순우곤을 제후국의 빈객들을 접대토록 하였다. 그 후 왕실의 주연에는 곤이 언제나 곁에서 왕을 모셨다.
술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군주의 질문에 순우곤이 대답한 것은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마시느냐에 따라 주량은 달라진다고 답하면서 정말 중요한 내용을 강조합니다. 술이 지나치면 어지러워 즐거움이 극도에 달하면 슬픔이 온다라고 하였습니다. 군주가 이 말을 듣고 자제하게 된 것이 핵심 내용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