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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아해도 욕설 마구 하는 사람은 좀 그렇다

by 길엽

지역 청소년 센터에서 만난 학교 밖 학생들 중 대학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대입 수능 대비 강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애환도 접하게 됩니다. 열 여덟, 열 아홉 얼마나 좋을 나이인지 그냥 보기만 해도 정말 이쁩니다. 손자뻘이니 그렇게 보이는가 봅니다. 어느 여학생이 우리들에게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남학생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자랑하는 것엔 끝도 한도 없는 법이지요. 저도 그냥 대충 대충 영혼없이, 성의없이 들어주면서 워드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래도 그 여학생 아주 정성을 들여 제 남자 친구 자랑을 하다가 갑자기 한숨을 탁 쉽니다.


"샘 그런데 있잖아요. 우짜다가 그애가 화가 나면 갑자기 폭발하여 욕을 마구 하는 기 신경 쓰여요. 그것만 아니면 다 좋은데 우짜면 좋아요."


제가 그 말을 듣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여자 친구가 그렇게도 좋은데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욕설은 아니지 않은가 싶어서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화를 참지 목하고 욕을 마구 하더냐고 물었고, 욕설을 하는 횟수는 어느 정도인지도 물었지요. 일 주일에 대충 서너 번은 욕을 하더랍니다. 그리고 같이 음식을 먹다가도 갑자기 까닭도 없이 소리 지르고 화를 내면서 급기야 욕설까지 합니다. 또 금방 진정하여 잘못 했노라고 사과도 한답니다. 전형적인 분노조절장애라고 볼 수 있지요. 남학생의 말투는 또 어떠냐고 물었더니 한 옥타브 두 옥타브 높은 큰소리로 말을 매우 빠르게 한다네요. 이 여학생은 얼굴이 아주 예뻐 남학생들이 참 좋아할 만한 스타일인데 말도 조곤조곤하게 이쁘게 합니다. 그런데 여학생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전혀 허물이 아니지요. 오히려 그들 세대 그들 나이에선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지요.


하지만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성에 화를 내다가 욕설까지 할 정도라면 이건 문제가 달라집니다. 그것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 대놓고 말입니다. 여자 친구가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욕설은 아니지 않나 싶어서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00야, 내가 보기엔 그건 좋지 않은 것 같아. 사람이 좋아하고 만나면서 늘 좋을 수는 없으니 화가 날 수도 있고, 싸우기도 하지. 그런데 욕은 아닌 것 같아. 난 지금껏 이 나이를 살아오면서 너와 비교하면 진짜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말이야. 아내에게 욕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어, 긴 세월 살다 보면 부부싸움은 하기 마련이고, 나도 당연히 부부싸움을 했지. 그렇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아내에게 욕을 한 적은 없단다. 아내도 당연히 욕을 하지 않았지. 더욱이 너희들은 이제 열 여덟, 열 아홉 정말 좋아할 때인데 더 더욱 욕하면 안 된다고 본다. 그리고 욕설을 쉽게 하면서 분노를 터뜨리는 사람은 폭력도 쉽게 행사하는 법이야. 그래서 그건 위험한 것 같아. 잘 생각해 봐. 그 친구에게 욕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좋은 말로 한번 해봐라. 내가 너희들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 남학생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안 봐도 비디오란 말이 있지요. 제 여자 친구에게 화난다고 분노를 터뜨리고 욕설까지 마구 해댄다면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나가는 말로 손찌검도 했다는 것 같아요. 그 남학생 참으로 못난 녀석 같아요. 지금 당장엔 이 여학생에게 조언이랍시고 했지만, 뭔가 이야기는 쌍방 다 들어봐야 한다지만, 고성에 욕설 그리고 분노는 절대 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살아오면서 사람들과 언쟁도 하고 다투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욕설은 극도로 자제했습니다. 아내에겐 전혀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지요. 그렇다고 아내에게 인정받는 남편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ㅎㅎ.


그 살벌한 군대 생활에서도 욕설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최전방 부대에서 군생활에 구속된 젊은이들이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욕하는 것까지야 제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극도의 제한된 공간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가득하던 시절에도 욕설을 좀처럼 하지 않았던 병사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고참들이 참으로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군생활 특유의 분위기에서 욕설하는 고참들도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했습니다. 대신에 욕도 하지 않고 늘 웃으면서 여유로운 말투로 우리를 헤아려주던 고참들은 참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런 분들이 생각나고 보고 싶기도 합니다.


10대 한창 피어나는 청춘 얼마나 좋은 시절입니까. 더욱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있으면 그때는 어딜 가도 구름밟는 마음이 아닌가요. 예쁜 여자 친구라면 세상 사람들 앞에 자랑도 하고 싶고 괜히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을 때 아닌가요. 그런데 화를 내고 욕을 한다니 그런 남학생이라면 당장 헤어지면 좋겠는데, 남녀 관계가 어디 그렇게 간단하던가요.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그 여학생이 남학생 팔짱 끼고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제 조언이 무력해짐을 느낍니다. ㅎㅎ. 그래도 욕은 아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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