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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피부가 유난히 깨끗하네요

나이 드신 분들께 같은 값이면 좋은 말로

by 길엽

4일간의 설 연휴 마지막 날 오랜만에 집밖으로 나섰습니다. 명절이라 해도 어딘가로 가고 싶지도 않고 마땅히 갈 곳도 없다 싶어서 이번 설 연휴 기간에는 그냥 집안에서 책이나 열심히 읽겠노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사흘 간 열심히 읽었더니 연휴 마지막 날엔 집밖으로 나가고 싶더군요. 멀리 경기도에서 홀로 생활하는 막내아들이 돌아가면서 저와 아내에게 인사를 합니다. 이번 달에는 행사가 있어서 2주 뒤에 다시 집에 올 예정인데도 아내는 막내를 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운가 봅니다. 설 명절이라고 선물로 들어온 과일이나 캔 참치를 그대로 싸서 막내 아들 차에 실어 보냈습니다.


이번 설에는 특이하게도 큰아들이 저와 아내 그리고 딸 막내아들까지 용돈을 돌렸습니다. 비록 금액이 큰 것은 아닐지라도 장남 노릇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예전 같으면 제가 아이들이 주는 용돈에 다시 보태서 돌려 주었을 텐데,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퇴직한 백수라서 그냥 고맙다고 하면서 받아 두었습니다. 딸 아이는 저녁에 드리겠노라고 약속했는데, 안 줘도 괜찮을 듯해요. 막내아들은 직장인 3년 차에 아직도 박봉이라 제가 거절했습니다. 아내에겐 전한 것 같습니다. 아내 표정이 밝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막내아들이 은행에서 청년 대출로 빚을 내어 전세를 구했으니 앞으로 대출 빚을 갚으려면 꽤 고생하겠지요. 그래도 저와 아내가 조금 보태주었다고 크게 감사해 하네요. 막내아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유난히 살갑게 대합니다. 가족에게야 말할 것도 없지요. 오히려 딸 아이가 덤덤한 편이라고 할까요.


막내아들이 떠나간 뒤 재활용 쓰레기분리 수거 물품을 가득 안고 처리장으로 갑니다. 아파트 주민들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사람들이 가끔 가벼운 농담을 건네기도 합니다.


"착한 아~들 3남매가 있는데도, 재활용은 쌤이 하시는가 보네요.ㅎㅎ."


저도 이젠 농담으로 대합니다.


"어릴 때는 어리다고 제가 우리집 심부름을 도맡았고, 이젠 나이가 들어 백수라고 온통 저한테 다 시키는 것 같네요."


그렇게 담소를 나눕니다. 우리집 아이들이 결코 저에게 미루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주민들과 그냥 농담을 나누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평소에 직장 생활한다고 바쁘기에 집에서 노는 저라도 아이들 대신에 조금 힘을 보태는 것이지요. 그렇게 농담 섞인 담소를 주고받다가 헤어집니다.


주차장을 돌아오는데 또 다른 주민을 만납니다. 목욕을 다녀오시는지 얼굴 피부가 뽀얗게 보기 좋습니다. 연배가 상당한 분인데, 저에게 유난히 살갑게 대해주시는 분입니다.


"설 연휴 잘 지내셨습니까? 어디 목욕이라도 다녀오시는 모양이지예, 얼굴 피부가 깨끗하니 뽀얗네요. 맨들맨들하니 나이도 훨씬 젊게 보입니다. 보기 좋습니다."


그러면 그분도 환하게 웃으십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거짓말 하시지 마이소. 인자 내 나이가 얼만데 젊어지긴 뭘 젊어진다 캅니꺼. 그래도 피부가 하얗게 좋다 카이 그건 참말로 기분 좋심더. 설 잘 보냈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손을 잡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입니다. 나아가 제가 그 선배님 등을 닦듯이 두드리면서 더욱 건강하시라고 말씀드리면 정말 좋아하십니다. 나이가 저보다 한참 많은 분에게 이렇게 등을 두드리며 새해 덕담을 건넨다는 것은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하기 어렵지요. 하지만 요즘 저는 나이 많은 분들을 만나면 일부러 인사하면서 어깨나 등을 두드려 드립니다. 물론 오랜 시간 낯이 익은 분에 한해서지요. 나이 드신 분들 이렇게 손잡고 등을 두드리며 안아드리면 정말 좋아하십니다. 손잡는 것도 두말할 필요가 없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손을 잡는 것이 낯설지요. 더욱이 이렇게 나이가 많은 분들은 평소에 자식들과 스킨십하는 것이 좀처럼 없을 테지요. 노노케어라고 저도 이제 이렇게 나이가 들어 보니 연령이 많은 분들의 심정을 저라도 이해해 드리고 살갑게 대하려 애를 씁니다. 그래서 그런지 선배 노년세대들이 저를 만나면 싱거운 농담도 잘 하시고 손에 뭔가 들고 있다가도 대뜸 저에게 주시기도 합니다. 제가 탐을 낸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젊은 날에는 잘 몰랐는데, 이제 나이드신 분들을 대할 때 가급적 좋은 말로, 밝고 따뜻한 표정으로 말은 건네는 것이 정말 중요하더군요. 어디 나이 드신 분들만 해당할까요. 남녀노소 모두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하기야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견 같은 동물들도 친절하게 대하면 사람 이상으로 다정하게 다가옵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해줄 것인가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먼저 상대방에게 같은 값이면 좋은 말을 환한 표정으로 전하면 상대방도 그렇게 하기 마련입니다. 이제 설날 연휴 마지막 날이니 진짜 나이 한 살 더 먹은 시간 이후로 다른 사람을 만나면 정말 살갑게 대하는 자세가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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