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수명 두 달 연장해 드렸어요

by 길엽

지인들과 모여 점심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한 분께서 전화를 겁니다. 시골 고향 마을에 홀로 계신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겁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천천히 여유롭게 전화를 해도 되는데, 맛난 점심 식사를 하려니까 괜히 혼자 무료하게 하루 하루를 보내시고 계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갑자기 전화를 하게 된 것이지요.


"아버지, 잘 계시지예. 점심 식사는 제대로 하셨어요? 뽈라구 매운탕하고 며칠 전에 우리가 갔을 때 아 어마이가 만들어 드린 소고기 국도 아직 드실 만할 텐데 어떻습니꺼? 자주 가서 챙겨드려야 하는데 여기서 바쁘다는 핑계로 영 죄송시럽네요. 점심 식사를 소고기 국하고 잘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번 주는 제가 좀 어렵고 다음 주 주말에 가서 며칠 자고 올 생각입니다. 그때까지 잘 계시이소. 이번 주는 둘째가 아~들 하고 갈 것 같아요. 그래도 아버지가 홀로 계시니 우리 모두 걱정한다 아입니꺼. 참! 어디 아픈 데는 없습니꺼. 또 전화드릴께예."


목소리가 커서 곁에 있는 우리한테도 다 들립니다. 우리 모두 웃으면서 잘 했노라고 그분을 칭찬했습니다. 그분도 그제서야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미소를 보입니다. 평소에 말씀이 그리 많지 않으신 분인데 이렇게 시골에 계신 늙으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살갑게 말을 나누는 것을 보니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께 이렇게 말했지요.


"전화 그거 뭐 대단한 거냐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지금 전화 한 통화로 시골 계신 어르신의 건강한 수명 두 달 연장해드렸습니다. 정말 좋은 일 하셨습니다."


시골에 계신 늙으신 아버지께 전화 한 통화로 건강한 수명 두 달 연장되었다는 것은 오로지 제 생각뿐이지 어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자주 전화를 드리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들 딸 모두 장성하여 집을 떠나 각자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지만, 시골 고향 마을엔 노부모가 하루 하루 무료하게 보내고 있는 현실에서 전화 한 통화라도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아직 그 연배가 되지 않았는데도, 막내 아들이 가끔 전화를 걸어오면 그날은 하루 종일 그냥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역시 제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전화 한 통화의 가치나 의미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요즘 노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오래 사는 것은 큰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즐겁게 장수를 누릴 수 있느냐가 진짜 화두가 되었습니다. 단순하게 수명만 연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육신을 움직이지 못하고 생명만 연장하는 삶은 참으로 허무한 일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걸어다니며 어디든 갈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정말 중요하지요. 그렇다고 건강한 몸만으로는 또 부족합니다. 가족이나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지 못하고 소외, 고독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노년 세대들도 불행한 것임은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말한 그분이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주더군요.


"한번은 아버지가 뭔가 수첩에 적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몇 월 며칠 큰 아~가 전화했고, 언제 다른 날짜에는 막내 딸이 전화했다는 것고 그 내용을 간단하게 메모하셨더라꾸요. 전화를 걸 때만 해도 아버지가 그런 것을 시시콜콜 메모할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그것을 본 뒤로 형제들이 모였을 때 대략 날짜를 정해서 당번 날짜는 반드시 의무적으로 전화를 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적적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형제들이 고루 고루 날짜를 정해서 전화를 한다지만 아무래도 장남이나 장녀가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또 하나 에피소드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댁에 장남과 차남이 돌아가신 어머니 살아 계셨을 때 행동의 차이가 있었다면서 말입니다. 노모가 살아 계실 적에 시골에 아들이 오면 아들 차에 타고 어디로 외출하시는 것을 참 좋아하셨답니다. 그런데 나이 탓인지 아무래도 불규칙적으로 용변을 보게 되지요. 그러면 큰아들은 언제나 따뜻하게 답했답니다.


"야~야, 큰 아~야, 소변이 급한데 어디 화장실 좀 갈 수 없나."

"아이구 그래요. 차에 한참 타고 오다 보이 화장실에 제대로 몬 갔지요. 걱정마시고 조 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볼일 보시면 되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까칠하게 답한답니다. 다음과 같이.


"아까 소변 봤잔하요. 또 자꾸 차를 세워라 캐요. 화장실도 잘 안 보이구만. 참 까탈시리 그 칸데이."


그 후로 노모께서 시골에서 뭔가 부탁할 때는 항상 큰아들만 찾았답니다. 큰아들은 언제 어떤 경우에도 얼굴 색 바뀌지 않고 아주 친절하고 살갑게 노모에게 대답하여 노모가 참 편하게 여겼지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저도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스스로 검열하게 됩니다. 우리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저도 차남이라 어머니께 그렇게 까탈스럽게 대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요즘엔 어딜 가도 나이 드신 분께 친절하게 대하다 보니 사람들이 좋아라 하긴 합니다만 돌아가신 어머니께 진작 그렇게 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럽기만 합니다. 우리가 나이 드신 분들께 말 한 마디라도 가급적 따뜻하게 하고 그분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 드린다면 그분들이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