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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사람

by 길엽

오후 늦게 침대에서 빈둥빈둥 뒹굴고 있는데, 어느 지인의 전화가 왔습니다.


"모레 생일이지요. 제가 축하 의미로 저녁을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이 될까요."


말만 들어도 고맙기 그지없는 말이었습니다. 제 생일을 본인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 사랑은 어찌 알고 이틀 전에 저녁 식사 약속을 하자니 고마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집 아이들 3남매도 모르고 넘어 간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도 특별히 제 생일을 챙긴다거나 그것을 빌미로 뭔가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아내 생일은 아이들과 반드시 함께 모여 축하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도 서운하거나 아이들이 원망스럽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지인께서는 아이들이 환갑 잔치 대신에 돈을 모아 부부 해외 여행을 시켜주었다고 자랑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을 들어도 썩 그리 부럽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집 아이들이 평소에 부모에게 지극정성을 잘 해주기 때문에 제 환갑 즈음에 뭔가 기대하지도 않았지요. 그냥 우리집 3남매가 진짜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지요. 생활 공간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오가는 길에 차조심해야 한다, 직장에서 근무할 때 사람들과 충돌하여 갈등하는 식의 사고도 조심해야 한다 등은 가족 단톡에 올리긴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너무 걱정마시라는 답글을 달아줍니다. 아이들 걱정은 부모로서의 솔직한 심정이랍니다. 별다른 사고 없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면 그것으로 족한 법입니다.


제 생일을 기억해 주고 축하 자리까지 마련하여 식사를 사주겠다는 지인의 전화 통화는 그 자체로 고마운 일입니다. 모두들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누군가 제 생일을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말입니다. 앞으로 저도 다른 사람의 생일을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모레는 제 생일 말고 다른 급한 현안이 있어 그날 사람들과 모여 긴급 회의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생일 축하 식사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 생일을 미리 챙겨주는 지인의 그 말씀이 개인주의적 사고가 팽배한 현실에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지요.


실제로 사람들과 대화를 해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한 적이 많습니다. 겉으로는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의 답답한 현재 상황을 들어주고 격려와 성원을 바라는 경우가 많지요. 부부 사이에도 그렇지 않나요. 액면만 보지 말고 그 말의 맥락을 파악하고 이면적인 의도까지 알아채고 상대를 헤아려 주어야 하겠지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아내의 속심정을 헤아려주지 못해 아내가 답답해 한 적이 많았습니다. 이제사 생각해 보니 그런 일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하기야 지금도 아내가 저랑 대화하면서 답답해하는 경우가 꽤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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