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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길 따라 걸어가면

by 길엽

여유롭게 굽이 굽이 돌아가는 들길을 따라 나란히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봅니다.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가만히 음미하면서 자연 풍경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좀 있으면 봄날이 되어 온갖 꽃들이 가득 가득 피어나겠지요. 겨우내 언 땅 속에서 새 삶을 키워내기 위해 온몸으로 버티었던 만물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켤 때가 다가옵니다. 봄꽃 가득한 저 길을 홀로 걸으면 홀로 걷는 대로 자연의 고즈넉한 풍광에 취할 것이고 지인들과 어울려 걸어간다면 그것 또한 낭만적인 동행이 될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 포근한 봄날 따뜻함 속에 함께 걸으며 담소를 나눈다면 그 어느 해보다 아름다운 봄날이 될 듯합니다.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는 들길 가의 엉성한 나무 기둥이 세월의 무게로 비스듬히 누워갑니다.


멀리 산녘에서 내려오던 시내는 긴 겨울 얼음 속에 잠자던 물결을 살며시 깨워 내리고 있습니다. 저 시내도 봄이 오고 여름을 맞으면 다시 바쁜 사계절의 싸이클 속으로 바쁘게 살아가겠지요. 어릴 때는 시냇가에 또래들이 참 많았는데, 이젠 사람의 흔적이 깡그리 사라졌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봄꽃이 참으로 아름답고 찬란했는데,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시골 집집마다 노년 세대들은 하루 하루 무료하게 보내니 이렇게 예쁜 꽃도 귀찮기만 합니다. 산속 가득히 자리한 나무들은 봄날이 오고 새로운 기운을 받아 여린 가지를 부드럽게 내밀지만 그 모습을 봐줄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세상이 허무하니 나무 새싹들도 괜히 외로움을 느끼는 듯합니다. 아이들이 길을 가다 나뭇가지를 잡고 흔들고 하던 시절도 이젠 아득한 세월 저 너머 기억이 되었습니다.


그 옛날 이런 들길을 따라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집들로 달려가면 집집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아들을 반겨주는 아지매들 얼굴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많았는데, 그런 풍경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빈집들마다 활량한 기운이 새어나오고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인생 무상을 가득 가득 느끼게 됩니다. 10리길 들길을 따라 학교를 오가던 그 시절 아이들이 재잘거리임이 세상 가득하고, 학교 종이 땡땡땡 치면 10리길 4km 국민학생에겐 상당히 무리인 먼길을 뛰고 또 뛰어 저만치 마을 입구가 보이면 조바심이 생겼지요. 등 뒤로 길게 X로 단단히 동여맨 책보자기엔 아침 등교길에 흘려 묻은 김치국물 자국도 남았고, 오후 배가 고픈 것을 참고서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들이 들일 하다 말고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었지요. 마을 앞에 들판 논밭마다 사람들이 저마다 농작물을 키워내어 아이들을 공부시켰었지요. 가난하고 힘들어도 이웃이 옆에 많이 있어 서로 힘이 되어 주었지요.


어쩌다 맛난 음식이 생기면 담장 너머로 아낌없이 전해주었고, 며칠 뒤엔 그 그릇에 영낙없이 또 다른 맛난 음식이 담장을 넘어왔지요. 나지막한 담장은 이웃집 사이에 난 소통의 매개체였고, 대화의 공간이었습니다. 제 어머니도 살아 생전에 바로 옆집 아지매와 형제자매도 그럴 수 없도록 친했습니다. 그집 00아지매는 저를 낳지 않았을 뿐이지 당신의 아들처럼 대해주셨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면 아지매가 저를 불러 당신의 마루에 앉혀 놓고 밥 반찬을 내놓았습니다. 한번은 아지매가 주신 점심 밥을 가득 먹고 그만 마루에 잠들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제 몸에 이불이 덮혀 있기도 했습니다. 군 입대 하던 전날은 아지매가 용돈을 정말 많이 주셨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향 마을에 들르면 제가 쓸쓸해 할까 봐 집으로 불러 '언제든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라. 눈치 보지 말고 알았제. 느그 엄마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노, 그쟈.'라고 하면서 저를 위로해 주셨지요. 그렇게 우리집 3남매에게 잘해 주시던 아지매도 훗날 암으로 세상을 버리셨을 때 상가에서 절을 올리며 제가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시골 마을 이웃은 그렇게 모두 가족이었습니다. 그런 이웃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으니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은 누가 강조하지 않아도 저절로 형성되었지요. 너무나도 안타깝게 들길 끝 무렵에 있던 추억의 마을은 수십 년 전의 문패만 그대로 달려 있고 사람도 사라지고 마당엔 해마다 풀들만 가득 자랐다가 사라지고 다시 봄날이 되면 다시 싹을 내밀고 바쁘게도 자랐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살이에 조급하지 말고 그냥 물 흐르는 대로 살라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왜 하필이면 우리가 막 노년세대에 접어들었을 때 그 시끌벅적하던 고향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들 동시에 늙거나 요양병원 가거나 아니면 세상을 문득 버리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이 다시 가까이 왔는데, 정작 그 봄을 누려야 할 사람들이 없으니 참으로 허무하지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던 시절엔 시냇가에 물고기도 참 많았지요. '족대'라는 천렵 기구를 들고 우르르 몰려 발로 꾹꾹 밟아가며 물고기를 잡던 아이들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물론 봄날에야 물고기 잡는 일이 없었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의 들길을 걸어갈 날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삶의 시간보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분명 적을 텐데. 여생이 행복하려면 지난날처럼 옆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재 상황에선 불가능한 현실이라 답답하지만 그래도 그 좋았던 추억의 시공간을 떠올리며 마음을 달래 봅니다. 곁에 있을 때 소중한 줄 몰랐던 그 시절의 시공간이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서야 너무나도 귀한 것이 되어 제 곁을 머물고 있습니다. 그때 함께 했던 사람들, 그리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것 같던 아름다운 날들이 사라지고 그리움과 회한으로 봄꽃 들길을 따라 걸어옵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이 베풀어 준 정이 참으로 컸는데, 그땐 그런 마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사람들이 준 모든 것이 사랑이요, 은혜였건만 그 당시는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인 줄 알았던 것이지요. 나이가 들어 그때를 회상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시절을 안타깝게 되찾긴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 되었습니다. 저 들길을 낭만에 젖어 걸어갔던 날들을 저멀리 두고 이젠 쓸쓸함에 젖어 겨울 바람에 떨고 있는 꽃대들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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