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마을 카페에서 재능기부 형식으로 초등학생 독서 지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일 주일에 하루 오전 두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이 의외로 책을 잘 읽고 발표도 적극적으로 하더군요. 그리고 그 마을카페에선 아이들 점심식사를 아주 정성껏 준비하여 아이들에게 제공하였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 부모 입장에선 상당히 좋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서 지도를 하면서 아이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데 오후엔 뭘 할까 하는 제 질문에 어느 학생이 또 다른 학원에 가야 한다고 답합니다.
요즘 초등학생들 대부분이 학원 몇 개를 다니는가 봅니다. 방송에서 초등학생 아이가 하루 종일 온갖 학원을 뺑뺑이 도는 장면을 본 것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그 사례가 특수한 경우에 해당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여기 지역 학생들이 그렇게 많은 학원을 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학부모가 조급한 마음에 아이을 학대하다시피하는 것을 접하면 그 아이는 향후 삶이 어떻게 될까 심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자가용이나 봉고차에 실려 학원을 대여섯 개 다니다 밤늦게 집에 오면 초죽음이 되는 아이를 생각하면 참으로 짠했습니다. 그 학부모만 탓할 일이 아닙니다.
사교육 광풍이 우리 사회를 지배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요. 아이가 공부만 잘 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마음 하나로 그렇게 자신의 아이를 무리하게 사교육 시장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실제로 학부모를 만나보면 자신의 아이가 훗날 의대만 간다면 지금 당장 어떤 고통도 이겨낼 각오가 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려 줍니다. 집을 팔아서도 아이 뒷바라지해 주는 것이 부모 역할이 아니냐고 말하는 분도 있었지요. 요즘 학부모가 뭐 그런 정도까지 할까 하겠지만 그말을 직접 들은 저로선 여기 소개할 수밖에 없답니다. 판사 검사도 아니고 의대에 대해서만 유독 그런 환상을 많이 갖고 있더군요. 물론 제가 만난 학부모가 우리 사회 전체 교육 현장 분위기를 오롯이 알려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런 말을 여러 번 들으니까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지금은 교육 현장에서 많이 누그러졌지만 한때는 고교에서 야간자율학습 줄여 '야자'라 해서 우리 아이들 얼마나 힘들게 했습니까. 요즘엔 실제로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하던데 전국의 모든 고교생들이 진짜 자율로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전부 대학 입시에 매몰되어 아이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무참하게 박탈하지는 않는지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저도 현직에 있을 때는 대학 입시가 전부라고 여기고 아이들을 체벌로 몰아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보면 잘못된 교육관으로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사정없이 빼앗은 것 같아 너무나도 후회스럽습니다. 당시 졸업생들을 만나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때를 떠올리면 전 미안하기 그지없는데, 제자들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여 오히려 저를 위로합니다. 그래도 미안한 건 사실이지요. 야자 도망가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이라고 다음 날 등교하자마자 단체 기합주고 질타하고 그랬던 것은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지요. 물론 교직 초기 혈기왕성한 20대 30대 초반까지만 그렇게 하고 스톱한 것이 다행이라 여깁니다.
그놈의 야자라는 것도 아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얼마나 상실하게 했습니까.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하루 일과를 마치는 것을 얼마나 기다립니까. 설령 하루 일과가 힘들었을지라도 오후나 저녁에 일과가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신나기 마련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요. 집에 가는 것이 끔찍한 경우 말입니다. 어쨌든 오후 늦게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저녁밥을 같이 먹으면서 하루 있었던 일을 주고받기도 하면서 가족 간의 정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그런 '저녁이 있는 삶'이 너무나도 중요한데, 공부란 것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세월을 보낸 것이지요. 지금도 진행형이기도 하고요.
야자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최고의 효자라는 극히 왜곡된 인식이 상식전인 생각을 묻어 버렸던 세월이지요. 하루 종일 그 불편한 의자에 앉아 공부하고 저녁밥 먹고 다시 밤 10시 11시까지 같은 교실에서 자습한다는 것 진짜 진짜 끔찍한 일이지요. 게다가 바로 집에 오지 않고 심야 학원 수업은 또 어떻고요. 그렇게 집에 와서 씻고 자면 수면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것이 누적되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었는데도 우린 그런 현실을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닐까요.
언젠가 제가 근무하던 학교 졸업생 중 의과대학 출신 동창회가 있어서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들 모임이라 역시 경제적 여유가 충분히 엿보이더군요. 선물도 후하게 받았습니다. 그 어려운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훌륭한 의사가 된 졸업생들이 자랑스웠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선생님 제가 오래 전에 전자공학과 다닐 적에 의대로 다시 입학하면 어떠냐고 조언을 구했던 것 기억나십니까. 그때 선생님께선 의과대학 포화 상태라고 하시며 말리셨습니다. 이공계 인재로 연구자의 길을 가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의사가 되어 보니 이렇게 좋은 거를 왜 말리셨습니까?"
심각하게 저에게 따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시 세상살이 저의 생각이 다 옳은 것은 아니구나 하고 솔직히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였습니다. 의사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그 제자와 한참이나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의과대학 가고 싶어 반수하거나 전과하려는 졸업생이 저에게 진로에 관해 물어오면 과감하게 제 의견을 제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제넘은 짓이라는 생각에서 그렇제 주저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학생 모두가 그렇게 명문대로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더욱이 그 좋다는 의과대학에 진학하기는 더 더우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 학부모들은 당신의 자녀 모두 오직 공부에 올인하면서 '공부 공부' 만 강요하고 있지요. 우리 사회 현실에서 공부로 먹고 살 아이들이 도대체 몇 %가 될까요. 그렇게 아이의 적성과는 전혀 관계 없이 오직 공부만 강요하다 보면 정작 아이가 갖고 있는 최고의 재능, 흥미는 깡그리 박탈당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집 아이들 3남매 정말 평범하게 학창 시절 보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 유명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지하게 '행복한가'에 대해 아이들에 물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 판단이란 것이 있지 않습니까.
솔직하게 말해 저도 학창 시절 공부만 잘 하면 만사 오케이 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인생에 조금 편하게 보일 뿐이지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었음을 이제사 깨닫게 됩니다. 고교 시절 서울대학교 정말 가고 싶었습니다. 집은 비록 가난하지만 서울대학교만 합격하면 하루 아침에 우리 집안이 활짝 펴질 줄 알았습니다. 가난에 지친 우리 가족이 그날로 바로 부자가 되고 집안 곳곳에 돈자루가 쌓일 것 같았거든요. 하루 하루가 구름 밟는 그런 기쁨에 겨워 살아갈 날을 기대한 것이지요.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 제가 서울대학교에 못 갔으니 감히 논할 처지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서울대학교 다음 수준의 대학을 갈 수 있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단지 고교 시절에 서울대학교 가면 세상 일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한꺼번에 풀릴 것 같다는 환상에 젖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고3때 어쩌다가 대학입학 모의고사에서 성적을 한번 잘 받았을 때, 진짜 어쩌다가 한번 딱 높은 점수가 나왔을 때, 당시 친구들이 농담이었겠지만 '야 이렇게 가면 서울대 낮은 과는 갈 수 있겠네.'라고 해줄 때 그날부터 서울대학교 입학을 꿈꾸고 어느 새 그 대학에 합격하는 진짜 꿈도 꾸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공부를 꾸준히 했으면 되었을 텐데, 어쩝니까. 그것이 제 온전한 실력이 아니었을 뿐이지요. 당시 대학 예비고사는 국영수 각각 50점 만점이었고 객관식이었습니다. 요행으로 찍은 것이 몇 개 더 맞아 점수가 잘 나왔을 뿐이었고, 당시 본고사는 주관식이었지요. 제가 본고사 마지막 학번 세대였거든요. 너무나 자신감이 가득찬 나머지 어느 날 대구에 오신 어머니께 '서울대'를 슬쩍 꺼내기도 해서 어머니께 헛된 꿈을 심어드리는 참으로 어이없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형편없는 거짓말이 되었지요.
물론 어머니께선 제가 그런 말을 해서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되었을지라도 절대로 저를 타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저를 보기만 해도 좋아하셨지요. 어쩌다 집에 가면 제 가방을 저녁 내내 깨끗이 씻고 또 씻으셨지요. 그것 자체로 좋아하시던 것이 눈에 선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네 인생 긴 호흡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더욱이 우리 아이들 100세 인생인데 너무 조급하게 그들의 진로에 개입하고 통제하여 정작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삶으로 끌고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 긴 인생에 한번쯤은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공부만 하라고 강요하면 아이들 삶은 참으로 척박하게 변합니다. 하고픈 일도 마음껏 하게 하고 가급적 저녁이 있는 삶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부모가 조급하게 아이들 공부를 강요하며 희생을 강요해도 될까요. 아이의 편안한 인생을 위해 지금 당장 고생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오히려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빼앗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우리네 인생은 늘 행복해야 합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하는 것은 참으로 논리적 모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행복해야 그것이 누적되어 나중에 행복을 더 누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그렇게 혹사시키는 것이 혹시 학부모의 보상심리 기대로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우리 아이를 놓치지나 않을까 걱정해 봅니다. 이 모든 것이 기우로 끝나기를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