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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생각

by 길엽

참 오랜만에 노래방을 갔습니다. 남자들만의 모임 회원들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회포를 나누었고, 자리를 옮겨 맥주를 또 마셨습니다. 후배들의 술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저는 보통 1차에서 끝내고 집으로 가는 편인데, 지난 주에 열린 제 책 <불택 不擇> 출판기념회에 우리 회원들이 대거 참석해준 것이 고마워서 적게나마 보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맥주를 잠깐 마시고 다시 옮겨 3차 자리로 갔는데 진짜 한 5년이 된 것 같습니다. 이 모임 회원들과는 실로 오랜만에 노래방에 갔습니다. 부산 코모도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200명 가량이 오셔서 축하해 주셨는데, 혹시 총선 출마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럴 리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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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행사 시에 제자가 축사를 하면서 <우리 선생님 노래방 절대 안 가십니다.>했더니 좌중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제가 노래방을 안 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가는 것을 자제하는 편이지요. 그리고 다른 모임에서 노래방을 가도 제가 노래를 부르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들 흥겹고 속도가 빠른 노래를 선곡하여 분위기를 한껏 높이는데, 제 노래는 너무나 분위기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어제 밤에도 제가 불렀던 노래가 <옛생각>이었습니다. 어젠 제가 한 곡을 부른다고 자청하였기에 후배들이 끝까지 잘 들어주었을 뿐입니다.


(조영남) 옛 생각/Alto Sax/홍응목 (youtube.com)


이 노래를 듣거나 홀로 흥얼거리면 나도 모르게 고향 시골 마을과 당시 사람들의 추억게 깊이 빠지게 됩니다. 그 많던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이젠 고향 마을에 들러도 낯익은 얼굴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놀던 골목길은 그대로인데, 아이들이 사라져 버렸지요. 집주인이 없는 폐가 문패는 이름이 그대로 남았는데 해마다 나고 지는 잡초 흔적만 가득하여 제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옛날 추억의 시공간으로 걸어갑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노래방에서 이런 노래 부르면 분위기를 망치기 때문에 좀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지요. 노래 실력도 형편없으니 더 더욱 그렇습니다. 노래 실력이라도 빼어나면 그나마 들어줄 만한데 말이지요. 그래도 어제 밤엔 <옛생각>을 아주 진지하게 부르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철저하게 냉각시켜 버렸습니다. 저 혼자의 마음에 도취된 채. 나이가 들면 추억의 세계로 달려가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긴 하지만 막상 제 자신이 그런 생각에 빠질 때면 ㅇ나이가 든 것이 괜히 원망스러워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아하 이래서 나이 든 사람들이 대부분 우울해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런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운동을 하든가 사람들과 어울려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그런 외부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홀로 침대에 몸을 누이면 저절로 외로움을 느낄 테지요.


저는 아직도 저녁에 침대에 누으면 순식간에 잠이 들어버리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건강하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고 제 자신도 노쇠해지면 우울해지고 극심한 외로움에 휩싸이겠지요. 미래의 걱정을 미리 당기고 싶은 생각이 없지만 말입니다. 언젠가 시골 마을을 지나가다 차를 세워 놓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혼자서 1시간 가량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아는 사람 한 명도 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마을을 떠났지요. 자꾸만 백미러로 마을을 바라봅니다. 시골 마을에 인적도 드무니까 주위 풍경도 쓸쓸하게 다가옵니다. 학창 시절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면 그 짧은 거리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땐 그 사람들을 영원히 만날 수 있다고 여겼고, 제 시야에서 사라지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강변 둑 즈음에 차를 세워놓고 아무도 없는 황량한 둑길을 홀로 걸어갑니다. 저만치 아주 저 멀리에 사람의 모습이 간간이 보이긴 하지만 이 겨울에 저렇게 들판에 나와 왔다 갔다 할 정도라면 결코 제 나이 대는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그 얼굴도 낯설 것이기에 쉽사리 접근할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교직 초기 20대 30대만 해도 이 넓은 들판에 일하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인사를 드리기기 바빴습니다. 정장 윗도리를 벗은 채 어느 논밭에 들어가 일손을 돕기도 했었지요. 제 옷을 버릴까 봐 걱정하시던 아지매 아재들의 그 선량한 얼굴들이 아직도 선한데, 이젠 그런 일손 돕기 기회조차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홀로 둑길을 2~3km 걸으면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모래사장 강변을 바라보니 아득한 그 옛날 모습과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강 바닥 풀밭에 풀을 뜯던 소들이 저녁 무렵이면 모래 사장에 배를 깔고 느긋하게 반추하면서 그 착하고 커다란 눈망울로 우리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지요. 소들 뒤로 강물이 천천히 흘러내려 가고 강 건너 마을도 산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리하였지요. 소떼 앞에서 뛰놀던 우리 또래들이 닭싸움, 기마전 등 놀이를 즐기다가 수박 하나를 들고 강물 속으로 달려가 몇 명이서 함께 헤엄치며 진짜 즐겁게 놀았지요.


둑길 바로 아래 있던 우리집 수박밭엔 커다란 수박들이 풍성하게 누웠고, 하루 종일 수확하여 트럭에 가득 실어 대구 칠성시장으로 보내면서 경매 결과가 잘 나오기를 빌던 우리 어머니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형 그리고 저 넷이서 수박 농사를 열심히 지어 돈을 벌고 싶었지만 농사가 우리들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더군요. 그래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100m 못 미치는 긴 이랑에 잡초 방지용 비닐을 덮기 위해 제가 비닐 끝을 잡고 정말 열심히 달렸습니다. 바람에 날리면 허사가 되기 때문에 제가 달리는 순간 아버지와 형 그리고 옆집 밭 형도 합세하여 삽을 들고 중간 중간 흙을 덮던 날들도 눈에 선합니다. 참으로 그리운 시절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그런 풍경도 떠올립니다. 노래방 분위기를 망쳐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저 혼자 옛날 생각을 하면서 노래하다 보니까 그런 분위기도 점차 의식하지 않게 되었지요. 어쨌든 <옛생각> 노래를 끝내고 후배들은 그저 의무감으로 박수를 쳐주었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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