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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간도 누구는 행복하고

배달 사고 연락받은 택배 청년을 보고

by 길엽

아침 아내 출근길 태워주고 돌아오는 길 발검음도 가볍습니다. 새벽 운동 가시는 노부부의 표정이 한결 밝습니다. 평소엔 늘 노부부가 저를 놀리고 저에게 농담을 건네는데, 오늘은 그분들 앞에 버티고 서서 못 가게 했더니 두 분이 활짝 웃으십니다. 손자 한 명을 데리고 계시면서 삶의 여유를 누리는 참으로 멋진 노년 세대 부부라서 참 보기 좋습니다. 젊은 시절 사업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지만 제가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요. 그리고 현역에서 은퇴하시면서 경제적 여유를 갖고 현재 삶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누리는 것 같습니다. 시내에서 우연히 만나면 환하게 웃으면서 반겨주셨습니다. 언젠가는 두 분께서 원산면옥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인근 가게에서 나란히 앉아 설빙을 맛있게 드시더군요. 할아버지께서 부인을 섬기는 것 같이 보입니다.


노부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잠깐 제가 장난을 치고 그분들은 크게 웃으시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막 잠기려 합니다. 젊은 청년이 저를 기다리고 섰기에 미안해서 달려갔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그분 표정이 심각합니다. 혹시 제가 장난치느라 급한 그 청년을 불쾌하게 한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이더군요.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을 다시 건네면서 보니까 택배 청년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하니까. 그 청년이 힘없디 답합니다.


"제가 어제 분명히 택배를 배달하고 확인했는데 물품이 집 현관 앞에 없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어제 분명히 확인하고 폰으로 찍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말했지요.


"이런 경우 실컷 고생하고 힘이 빠지겠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합니까. 열심히 배달하고 확인까지 했는데 잘못 배달 것은 분명 아닌데,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 청년이 답합니다.


"CCTV 확인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청년 표정이 영 밝지 않습니다. 매스컴에서 흔히 보도한 택배 배달 사고가 우리 아파트에서도 발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에 진짜 물품이 사라지면 분명 이 청년이 책임져야 할 텐데 얼마나 화가 나고 힘이 빠지겠습니까. 안 그래도 택배로 인한 과로, 주민들과의 갈등 등등으로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분실 사고 가능성을 목격하니 남의 일이 아닌 듯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집에 내리지 않고 택배 물품이 오지 않았다는 그 집 현관으로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큰 박스 하나가 보입니다. 택배 청년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집니다. 그 물건이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다른 집으로 갔다고 다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어쨌든 그 물건이 제 자리에 있고, 그 청년의 표정이 본래대로 돌아와서 다행이었지요. 그리고 수고하시란 말 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혹시라도 CCTV 확인하려 하면 제가 같이 가서 도와주려고도 했습니다. 최근 아파트 내에서 차량 접촉 사고 같은 일이 발생하겨 CCTV확인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청년을 안심시키려고 했습니다. 다행히도 해당 물품이 있어서 CCTV를 확인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물품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 청년이 배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철렁 내려앉은 심정은 어떠했으며, 밤새 잠이나 제대로 잤을 것이며, 아침 일찍 일어나 여기로 올 때까지 걸린 시간, 정신적 육체적 피로는 또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오지랖을 떠는 것일까요. 불필요하게 남의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남의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일까요.


동일한 엘리베이터 공간에서 어떤 이는 행복에 겨워 새벽 운동을 가면서 삶의 여유와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지금 당장 발생한 문제 때문에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그리고 장난치는 철없는 노년세대 한 사람이 청년 자신의 답답하고 화가 나는 심정은 이해도 하지 않고 다른 이와 장난치느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기다리게 하는 것을 보았을 때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같은 시공간에 있어도 사람의 각자 처한 사정은 다른 법입니다. 한 사람이 아침저녁 기분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쉴 새 없이 변하기도 하지요. 누군가는 행복하고 똑같은 공간에서도 또 누군가는 불행한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 가정 내 가족 중에도 한 사람은 행복하고 다른 사람은 불행할 수 있지요. 회사는 어떻고 지역사회는 또 어떨까요. 그래서 내가 행복하다고 해도 남 앞에서 지나치게 떠벌리거나 자랑하는 것은 썩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SNS에 올리는 사진과 글들이 온통 행복해 죽겠다는 식이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SNS 상에서는 세상 사람들 모두 너무나 행복해 보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그렇던가요. 그리고 SNS에 행복한 사진과 글을 올린 사람이 진짜 행복에 겨운 날만 있을까요.


지금 당장 좀 행복하더라도 다른 이는 불행할 수 있으니 너무 자신의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자랑하듯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해요. 오늘 아침 택배 청년의 심각한 표정이 안심하는 것으로 바뀌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 제 자신도 반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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