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 이름은 우째 알았는교? 요전 앞새 우리 영감하고 통화하다가 날 바꿔 전화할 때 '송자씨 잘 계시지요' 카더만, 난 누가 내 이름 알고 불러줄 때 진짜 좋긴 하더만 내 이름을 우째 알고 그리 불러 줬는교?"
"할머니께서 안 가르쳐 주시면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전번에 이름을 알려 주셨다 아입니까. 그래서 그기 생각나서 이름을 불러 드렸는데 그렇게 좋으십니까?"
"아이고 좋다 마다. 이 늙은 거 이름 세상에서 누가 알아주는교. 그래도 그짝에서 내 이름 불러 줘서 내 기분 정말 좋았다오. 우리 영감하고 그짝하고 친하게 지내가 그것도 좋은데가 이름까지 불러줘서 참말로 고맙심더. 아차차 지금 여기서 어정거릴 시간 없는데, 다음에 또 봅시다."
그렇게 종종걸음으로 떠나가십니다. 환한 얼굴 표정이 참 보기 좋습니다. 제가 본격적인 노년 세대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저보다 연배가 높은 분들을 많이 만나는데 70대 80대 남성을 만나면 가급적 "형님"이라 불러 드립니다. 그러면 그분들 정말 좋아하십니다. 물론 처음 만날 때부터 대뜸 그렇게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안면이 익숙해지면 '형님'이라 불러 드리지요. 그리고 비슷한 연배의 여성들을 만나 조금 친해지면 '00씨'라고 불러드립니다. 그분들도 이름에 씨를 붙여 불러드리면 정말 좋아하십니다. 나이가 많아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보다 00씨, 형님 이라고 불러주면 그분들도 기분이 정말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하는 법입니다. 이름은 존재를 인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이름을 불러 줄 때 곱고 부드럽게 그리고 나지막하게 따뜻한 목소리로 불러 주면 진짜 기분이 좋답니다. 갑자기 김춘수의 시 <꽃>이 생각납니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었다는 구절이 오늘따라 새삼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래서 나이 드신 여성분들이 '할머니'란 말보다 자신의 이름에 씨를 붙여주면 좋아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