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엔 아내 병원 정기 물리 치료가 있는 날이라 오늘도 차를 운행하여 다녀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 큰아들이 준비한 특별 요리를 기대하곤 했는데, 오늘따라 큰아들이 전날부터 시내 게스트하우스 주말 숙박 아르바이트를 가는 바람에 오늘은 집 근처 복어요리 식당에 갔습니다. 꽤 비싼 음식인데도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하였고, 저희보다 조금 늦게 오신 손님들은 입구에서 나란히 앉아 대기할 정도였습니다. 저와 아내는 마침 빈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었지요. 저에게 어떤 것이 좋으냐고 물으면서 아내가 종업원과 대화를 합니다. 솔직히 전 음식 종류, 특히 복어 요리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냥 평소 즐기는 한정식보다 조금 비쌀 테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복어 오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고른 것을 그냥 동의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무슨 음식이든 잘 먹었기에 어딜 가도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똑같이 주문하였습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적에 제가 무슨 음식이든 너무나 잘 먹으니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야, 니는 뭘 조도 아무 소리 않고 잘 묵네. 니는 낭중에 커서도 복받을 끼다. 느그 색씨 누가 될지 모르지만 니캉 느그 색시캉 복 마이 받을끼다. 우째 이리 잘 묵노. 참 신기하제."
무슨 음식이든 잘 먹으면 복을 받는지 아닌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남들과 두루 원만하게 잘 지내는 것은 사실이니 이것도 복이라면 복이겠지요. 그런데 음식을 잘 먹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데 그것이 색씨 즉 저와 아내까지 함께 복받는다는 어머니 말씀이 과연 근거가 있는지 지금도 의문입니다. 오늘도 아내가 고른 복어 요리를 같이 먹기로 하고 주문하였습니다. 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다시마를 비롯한 입맛을 돋우는 반찬들이 먼저 나왔기에 둘이서 먹으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아내 표정이 영 밝지 않습니다. 병원 치료 과정에서 불편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시내에서 여기 오면서 저랑 나눈 대화에 아내를 불편하게 한 것이 있지나 않은지 신경이 쓰입니다. 이 식당에 오면 아내는 늘 즐겁게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그런데 아내는 저랑 담소하면서 옆 좌석을 불편한 기색으로 바라봅니다.
옆 좌석엔 50대 아저씨와 아이들 둘 그리고 맞은 편에는 부인과 장모님이 둘러 앉았습니다. 대화를 듣고 장모님인 것을 알 수 있었지요. 문제는 이 아저씨가 너무 큰소리로 혼자 떠든다는 것이지요. 식당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대화를 하더라도 그들 테이블을 벗어나지 않을 정도인데, 이 분은 바로 옆 테이블에 있는 저와 아내는 물론이고 식당 전체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소리로 마구 떠들었지요. 그제서야 아내가 왜 불편해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저씨 혼자 큰소리로 떠들고 아이들과 부인 그리고 장모님은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그냥 식사만 하더군요. 그리고 좀더 들어보니, 이런 복어 요리가 비싸고 오늘 나온 복어 요리가 평소에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귀하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가족들과 장모님을 모시고 자신이 생각하기게 값비싼 복어요리를 대접하는 것이었지요. 자기자랑이 정말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설령 그렇게 자랑하고 싶더라도 그들끼리 그 테이블 안에서만 들릴 정도로 조심해야 하는데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아 다들 눈쌀 찌푸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와 아내도 평소보다 빨리 복어 요리 식사를 끝내고 계산한 뒤 식당을 나왔습니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평소엔 말이 별로 없는 아내가 옆에 없는 그 아저씨를 질타합니다. 물론 그 질타도 저만 들었지요.
"복어 요리 그 뭐 대단한 기라고 식당 안에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큰소리로 자기 자랑을 할라 카믄 즈그 식구들끼리 가덩가 안 하고, 여기 왜 와서 모두를 불편케 하는지 몰라. 그라고 장모님 모시고 식당에 왔으만 장모님이 말씀을 많이 하시게 하고, '아이고 0서방 참말로 고맙네' 정도만 카만 안 되네. 장모님과 부인 그라고 아~들까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밥만 묵고 가장이란 사람이 혼자 큰소리로 떠들고 진짜 밥맛이데. 당신 그리 생각 안 하나. 꼴랑 식사 한 번 대접한다고 저리 큰소리로 자랑하다이 내 참 기가 차서. 당신도 그리 생각하제."
"그래. 그 아저씨 큰 목소리로 뭐라 카는 거는 들었는데, 무슨 말 하는지는 자세하게 알지 못하지만 시끄럽긴 햤어.. 그라고 당신 말마따나 장모님이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이 좋지, 아저씨 혼자 큰소리로 그리 떠드는 것은 보기 좋지는 않더라. 그래서 당신 표정이 안 좋았나 보네. 잊아뿌라. 그 사람 다시 볼 것도 아니고. 살다 보면 그런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도 안 있더나. 인자 잊아뿌라. 당신 병원 치료 잘 받고 와서 점심 식사 맛있게 했으면 안 됐나, 그쟈."
제가 달래도 아내는 기분이 안 풀리는가 봅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그 아저씨를 열심히 성토합니다. 저도 열심히 동조합니다. 옆에 없는 그 아저씨 우리 부부에게 욕 무지하게 얻어먹습니다. 아주 오래 사실 겁니다. ㅎㅎ.
아내의 말처럼 아이들과 장모님 그리고 부인을 모시고 외식을 나왔으면 가장은 가족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장모님이 기분좋게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사위는 백년 손님'이라 어느 정도 선이 있는 불편한 대상입니다. 밥 한 그릇을 대접받아도 기분좋게 즐겁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그런 외식 자리를 아예 마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대접한다고 상대방이 항상 기분 좋은 것은 아니랍니다. 대접하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호스트는 그런 마음으로 상대방을 모시고 대접하는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장모님 살아 계실 때, 제가 제대로 했을까를 반성하게 됩니다. 당시엔 그저 최선을 다해 대한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저도 모르게 부족하거나 불편하게 해드린 것이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젠 장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지만 말입니다. 대신에 주위 사람들을 대접할 때 아까 그 아저씨처럼은 하지 않겠노라고 마음 먹게 됩니다.
"밥 한 그릇도 기분 좋게 사드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