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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23. 2023

발몽진락(發蒙振落)

진중하면서 충직한 관료가 필요하지 않은가

  발몽진락(發蒙振落)발몽진락(發蒙振落)

발몽진락(發蒙振落)이란


)“덮개를 벗기고 마른 나뭇잎을 떨어뜨리다,”


는 뜻으로 아주 간단하고 용이한 일을 가리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숱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어렵고 쉬운 일을 많이 겪게 된다. 덮개를 벗기고 마른 나뭇잎을 떨어뜨릴 정도로 쉬운 일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     

 

학창 시절에 많이 들었던 ‘누워서 떡 먹기’나 ‘땅 짚고 헤엄치지’는 직접 실험해 본 적도 있다. 땅 짚고 헤엄치기는 그나마 쉬웠던 것 같은데, 글쎄 ‘누워서 떡 먹기’는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다. 누워서 떡먹기는 그래서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아주 쉬운 일을 나타내는 한자 성어로는 주머니 속 물건을 꺼낸다는 낭중취물(囊中取物), 손바닥 뒤집기라는 이여반장(易如反掌)도 있다. 

     

어쨌든 여기에서 말하는 ‘발몽진락’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급정열정(汲鄭列傳)에서 유래했다. 중국 한나라 7대 한무제(漢武帝)는 강성군주로 중앙집권제를 강화하고 대외정복을 펼쳐 영토를 대거 확장하였다. 한무제 휘하에 수많은 현신들이 보좌했는데, 그중 급암(汲黯)도 널리 언급된다. 그런데 급암과 함께 출사했던 인물 공손홍(公孫弘)은 인물도 좋았고 한무제에 아부도 잘 했던 인물이다.     

 

한 고조(高祖)의 손자인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조정에서 제후국을 약화시키려는 정책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회남왕은 당시의 재상 공손홍보다 간언을 두려워 않는 급암에 대해서는 옳지 않은 일로 회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부하들에게 공손홍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승상 공손홍을 설득하는 것은 마치 덮어놓은 것의 뚜껑을 열고, 나무를 흔들어 마른 잎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至如說丞相弘 如發蒙振落耳      



급암(汲黯)




재상 신분에도 이렇게 신랄한 비판을 받은 공손홍이 어떤 인물이었을까. 


『사기(史記)』 「유림열전(儒林列傳)」 유래한 고사성어로 공손홍과 관련된 ‘곡학아세(曲學阿世)’가 있다. 정통적인 학문의 길에서 벗어나 세상을 어지럽힘 또는 그것을 왜곡해 사람들에게 아첨(阿諂)함을 뜻한다.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성품이 강직하고 뛰어난 학자가 있었다.   

   

원고생(轅固生)은 제(齊)나라 사람으로 '시경(詩經)'에 정통해서 효경제(孝景帝,) 때 박사가 되었다. 그는 성품이 강직해 평소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直言)으로 간언(諫言)하는 성격이었다. 효경제는 즉위하자마자 천하의 어진 선비들을 구했는데, 제일 먼저 명망(名望) 있는 원고생을 불러 박사로 삼으려 했다. 원고생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날리며 궁궐로 향했다. 그런데 노자(老子)의 글을 좋아하던 한문제의 황후였던 두태후(竇太后)가 원고생을 불러 노자의 글에 대해 물었다. 두태후는 한경제의 모친이 된다. 


 원고생이 대답했다.      

"그것은 하인들의 말이며 천한 말을 써놓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此是家人言耳     

 


평소 노자의 학문에 심취한 두태후가 격노하여 원고생에를 돼지우리에 가두어 야생 멧돼지와 싸우는 형벌을 내린다. 연로한 노인을 멧돼지와 맞서 싸우게 하다니, 그냥 우리 안에서 돼지에게 받혀 죽어라는 뜻이다. 하지만 경제는 원고생을 남몰래 불러 예리한 칼을 주었고, 원고생이 돼지의 심장을 정확하게 찔러 쓰러뜨렸다. 두태후는 더 이상 죄를 묻지 않았다. 아무 말이 없었으며 더 이상 죄를 묻지 않았다.  

         

이후 경제가 죽고 무제(武帝)가 즉위하여 그를 다시 불렀다. 이미 90세가 된 원고생과 함께 등용된 인물 중에 설(薛)나라 사람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소장 학자가 있었다. 그런데 공손홍도 원고생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불손했다. 그러나 원고생은 불쾌히 여기지 않고 공손홍에게 지금의 학문은 정도가 아니라 속설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대로 가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이 사설로 인해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말 것이라는 우려도 보탰다. 그리고 공손홍에 진심어린 충고를 한다.  

         

“결코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히어(曲學) 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阿世)이 있어서는 안 되네.”     

                                       公孫子, 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자신의 무례함을 부끄러워하며 용서를 구하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사마천도 공손홍의 사람됨이 비범하며 견문이 넓다고 평가했다. 밥을 먹을 때도 고기반찬을 두 가지 이상을 두지 않고 계모가 죽었을 때도 3년 상(三年喪)을 치렀다.  

공손홍(公孫弘)

   

아부하면 불수진(拂鬚塵)이라는 말도 만만치 않다. 이 말은  

   

 “수염의 먼지를 털어 준다.”     


는 뜻으로, 윗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거나 윗사람에 대한 비굴한 태도를 비유하는 말이다.


『송사(宋史)』 「구준전(寇準傳)」에 나오는 말이다. 구준은 당시 송나라 재상이었는데, 유능하나 관운이 따르지 않은 젊은 인재를 과감히 천거하여 국가의 동량지재로 만들었다. 송(宋)나라에 구준(寇準)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유능하지만 관운이 따르지 않은 젊은이들을 과감히 발탁하여 나라의 일꾼으로 만들었다. 참정(參政) 벼슬에 있던 정위(丁謂)도 구준의 천거를 손꼽아 기다린 사람 중의 하나였다. 문제는 정위의 인물 됨됨이였다. 벼슬을 탐낸 나머지 윗사람에게 지나치게 아부하여 주위 사람들의 신뢰를 잃었다.   


        

조정 대신들이 회식을 하는 중에 구준이 실수로 국을 잘못 떠서 그만 수염에 국을 묻히고 말았다. 그때 정위가 달려와 자신의 옷 소맷자락으로 구준의 수염에 묻은 국물을 털어주었다. 이에 구준이 충고를 한다. 

     

“적어도 참정이라면 한 나라의 중신인데 상관의 수염까지 털어 줄 것까지 없지 않겠소(拂鬚塵).”   

  

높은 지위에 있으면 아랫사람의 아부가 참으로 달콤할 법한데도 구준이 오히려 아부하는 정위를 냉정하게 꾸짖어 가르쳐 준 것이다. 상관의 수염에 묻은 티끌을 불어주는 불수진(拂鬚塵)이나, 상사의 변을 맛보고 고름을 빨아주는 상분연옹(嘗糞吮癰), 말똥 위에서 무릎으로 기는 슬행마시(膝行馬矢) 그리고   - 종의 비굴한 얼굴과 여종의 무릎걸음처럼 환심을 사려 알랑거리는 노안비슬(奴顔婢膝)도 인간 사회의 ‘아첨’, ‘아부’의 속살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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