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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24. 2023

기분이 좋은 갑네

가족 중에 환자가 있을 때 보호자도 늘 컨디션에 유의해야 한다. 환자에만 몰입하면 결국 보호자도 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랜 기간 경험해 보니 극단적인 긍정론자인 나도 순간적으로 우울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아내는 오죽 하겠나 싶어서 억지로 우울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내가 20여 년 간 허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허리 보강 근력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토요일이나 일요일엔 아내를 차에 태워 가까운 공원 등에 가서 같이 걸었다. 그렇게 걸으면서 아내가 평소 하고픈 말들을 들어주면 아내도 나도 즐거웠다. 


허리 수술은 극도로 자제하게 하는 병원 담당 의사 말씀도 있었지만, 도저히 참기 어려울 때 시술을 두 번 하였다. 그것도 고통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허리 환자는 자주 웃겨야 한다는 의사 권유도 있었기에 누군가 전해 준 어설픈 유머도 아내에게 한 적이 있다. 유머 수준이 내가 생각해도 너무 낮아서 할까 말까 하다가 결국 아내에게 전해 주었더니 너무 어설퍼 기가 차서 웃었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환자인 아내가 웃으니 좋았다. 


그리고 주말이면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방향도 없이 차에 간단한 옷이랑 먹거리를 싣고 아내와 함께 무작정 집을 떠났다. 그래서 토요일이면 다른 약속을 가급적 잡지 않았다. 허리에 좋다는 약이나 건강식품은 돈 아깝다 여기지 않고 많이도 샀다. 토요일 예약도 없이 떠나 호텔에 가면 주말이라 값도 정말 비쌌다. 우리가 언제 스위트 룸에 숙박할 수 있을까 하면서 꽤 비싼 방도 묵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카드가 날아오면 아내와 마주 서서 카드값이 진짜 많이 나왔네 하면서 웃기도 했다. 그래서 그럴 때는 내가 한 마디 했다. 


"지금 이렇게 카드값이 많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 또한 병원 치료비에 비하면 정말 값싼 것이다. 그리고 우리 둘의 월급을 갖고 아이들이 쓰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둘만 쓰면 되니까 돈 걱정 하지 말고 오히려 몸의 건강 챙기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 아이들도 모두 직장 생활하니 그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루라도 건강해야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돈 이렇게 쓴다고 해도 모두 우리 둘이 먹고 자고 입은 비용이니 아깝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하네."


그래도 가계를 생각하는 아내 입장에선 돈을 조금 아꼈으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가끔 외부 강의료나 원고료를 받으면 몰래 모아 두었다가 봉투에 넣어 주면 아내의 표정이 급 환해진다. 나도 특별히 쓸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가급적 그런 돈은 아내에게 모두 주었다. 지인들은 그래도 퇴직 후 가족들 몰래 쓸 돈이 필요하니 비자금을 조금이라도 따로 두어야 한다고 많이 권했다. 


나도 가끔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비자금이 필요하다는 점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도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따로 돈을 두고 쓴다 한들 아내가 아프면 다 무슨 소용이랴. 아내가 어제 밤늦게 잠이 들 때, 손과 발을 열심히 마사지 했다. 그렇게 해주면 매우 편하게 잠에 드는 것을 본 적이 많기 때문이다. 어제는 발바닥과 장딴지 부분을 강하게 마사지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마사지하고 아내가 깊이 잠드는 것을 보고 잠깐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잤는데, 오늘 아침 아내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갑네. 어제 밤에 내가 열심히 마사지해주었는데, 그래서 깊이 자는 것 같은데 오늘따라 환하게 웃으며 일어나는 것을 보니 내 기분이 다 좋네. 괜찮나?"


그랬더니 아내가 내가 마사지해준 사실을 전혀 모르는 표정을 짓는다. 하기야 깊이 잠들 때 누군가 업어가도 모를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나. 환자가 깊이 잠들고 아침에 편하게 일어나서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아이들에게도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해 두었다. 내가 열심히 엄마 간호할 테니 너희들은 너무 신경쓰지 말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아내를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한다. 환자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아이들이 곁에 와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자주 해준다. 허리 때문에 오랜 기간 고생하고, 최근엔 코로나 접종 후유증으로 또 힘든 나날을 보내는 아내가 조금이라도 나았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2년 전에 119 구급대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갈 때보다는 확연히 나아졌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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