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숱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 폰이 등장하면서 고독과 소외에 익숙한 '나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들은 다른 사람과 이런 저런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갑니다. 그 관계에서 상대방에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내용도 다르게 전해질 수 있지요.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할 때 내가 어떻게 변할 마음은 없고 무작정 상대방만 변하기를 바라는 일방적 사고가 흔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군신(君臣)관계를 비롯하여 숱한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요구만 하려 하지 본인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는 깊이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내 마음과 달리 잘 따라 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고 부부, 친구 등등 관계에도 유사한 일이 생깁니다. 남이 바뀌길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변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가장 빠른 방법인 듯합니다. 여기에서 언급하는 제경공과 신하 현장의 대화에서 교훈을 얻어 우리네 삶에서도 내가 먼저 변화하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제경공(齊景公)이 송(宋)나라를 정토벌하고 기제(岐隄) 위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보고 크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여 말했다.
“옛날 우리 선군(先君) 환공(桓公)께서는 장곡(長轂)이 단 8백 대밖에 없었는데로 제후의 패자(覇者)가 되셨는데, 지금 나는 장곡(長轂)이 3천 대나 되는데도 감히 이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니. 이 모든 것이 관중(管仲) 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자 곁에 있던 현장(弦章)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물이 많아야 큰 물고기가 놀고, 군주가 현명해야 신하가 충성한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환공 같은 현명한 군주가 있었기 때문에 관중 같은 어진 신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환공께서 여기에 계신다면 수레 아래에 있는 신하들이 모두 관중일 것입니다.”
제경공은 자신이 천하의 패자가 될 야망을 갖고 있는데, 제환공 시절 특급 참모였던 관중 같은 신하가 없어서 패자가 될 수 없다는 식으로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곁에 있는 현장이란 현신(賢臣)이 참으로 훌륭한 간언을 올립니다. "물이 넓어야 큰 고기가 놀 수 있는 법이고, 군주가 현명해야 신하가 충성할 수 있다."는 말은 결국 군주가 현명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군주에게 이렇게 직설적으로 간언한다는 것이 단순한 일이 아니지요. 사마천은 한무제에게 이릉 장군을 옹호하는 말 한번 했다고 궁형(宮刑), 즉 남성의 성기를 자르는 극형을 겪기도 했으니, 고대전제군주 체제하에서 신하가 군주에게 간언한다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그 후폭풍이 엄청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현장이 어떤 인물인지는 아래 안영이 제경공에게 올린 간언에서 추론할 수 있을 겁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습니다. 자식이 일방적으로 효도하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부모가 현명하게 처신해야 자식도 효도하는 법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학대하는 가정에서 효자가 나오기는 정말 어렵지요. 자식이 효도할 수 있도록 부모가 넉넉한 마음으로 자식을 바라보고 대해야 합니다. 자식 세대의 삶은 부모 세대보다 훨씬 짧으니 그들이 하는 행동이 부모 마음에 들지 않기 마련입니다. 우리 부모들도 어린 시절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자식에게 어떤 사고나 행동을 무작정 바랄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의 그릇을 키울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아내와 대화하는 것이 썩 매끄럽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제 쪽에서 먼저 바꾸려고 노력을 합니다. 물론 노력한다고 아내 마음에 다 들진 않겠지만 그래로 노력은 해보려 합니다. 진작 젊은 시절부터 그런 노력을 해야 했었는데 말입니다.
"예전에 선군(先君) 환공(桓公)은 몸이 나태해지고 명령을 민첩하게 하지 못하면 습붕(隰朋)이 모시고 보좌하였고, 측근에 잘못이 많고 집행하는 형벌이 정확하지 못하면 현장(弦章)이 모시고 보좌하였고, 평상시 거처하는 태도가 방종하고 측근이 두려워하면 동곽아(東郭牙)가 모시고 보좌하였고, 농경지가 개간되지 못하고 백성들이 불안해 할 때에는 영척(甯戚)이 모시고 보좌하였고, 군리(軍吏)가 태만해지고 병사들이 느슨해지면 왕자성보(王子成父)가 모시고 보좌하였고, 행위가 덕의(德義)에 맞지 않고 성실한 품행이 쇠잔해지면 관자(管子)가 모시고 보좌하였습니다. 선군은 남의 장점으로써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였고, 남의 넉넉함으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명령이 아주 먼 곳까지 전해져서 거스르는 사람이 없었고, 군대를 동원하여 죄 있는 자에게 쓸 때에는 둔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제후들이 그 덕행에 감복하여 조현(朝見)하였고 천자는 제사 지낸 고기를 보냈습니다. 지금 군주께서는 잘못이 많은데도 한 사람도 와서 잘못을 말씀드리는 자가 없기 때문에 저는 마땅한 관리가 갖추어지지 못했다고 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