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참으로 오랫만에 어느 지인께서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 주었습니다. 이 지인은 저보다 선배인데 몇 년 전 명예퇴직하고 곧장 캠핑카를 구입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며 숙박하십니다. 예전부터 꼭 하고 싶었고, 몇 년째 그렇게 지내고 있답니다. 세상 사람들과의 인연은 끊고 지내고 싶었다며 자신을 "자유인"으로 불러 달라고 하더군요. 제 책 출판기념회를 언급하며 재삼 축하햐 주었습니다.
이번에 받은 글이 참 좋았습니다. 서울 중동고에서 근무하시는 철학박사 안광복 선생님의 글인데 참으로 공감이 갔습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며 자신을 가꾸는 ‘좋은 고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시네요. 그리고
깊고 풍성한 지성과 예술적 감성을 갖춘 사람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공부할 것들, 탐구해야 할 아름다움이 끝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
는 말에 팍 꽂혔습니다.
현직에서 물러나 본격적인 노년 세대의 삶을 살아가는 저에게 '나이가 들어도 왜 소일거리가 필요한가. 왜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가. 책 읽고 글쓰는 작업이 우리 노년세대에게 얼마나 유익한가.' 등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안광복 선생님의 글이었지요. 저도 지금보다 세월이 흘러가면 반드시 노쇠하게 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시간과 맞닥뜨리게 되겠지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가고 어떻게 할 도리도 없이 적막강산 같은 외로운 시공간에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건 제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단지 미래 일을 미리 당겨서 걱정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고 지금 당장의 현실에 충실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지금까지도 시간나는 대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을 제 입장에서 재해석도 하고, 또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여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기에 더욱 고맙고 즐거운 일입니다. 아침 저녁 아내 출근길을 도와주면서 평소에 둘이 나누지 못한 대화 시간도 우리의 지금 삶에 큰 도움이 됩니다. 어쩌다 둘의 대화에서 조금 어긋나 마음이 불쾌할 수 있을지라도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기에 그런 정도의 불쾌한 마음은 단번에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아내도 평소에 말이 그리 많지 않지만 둘이 이동하는 차안에선 말이 조금 많아집니다. 그 시간에는 제가 잘 들어주려 노력합니다. 젊은 시절과 달리 지금 이 나이에선 그래도 부부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니까요. 이렇게 함께 지내는 생활이 오래 오래 가면 좋겠지만 그건 신(神)의 영역이니 하늘에 맡겨야 하겠지요.
솔직히 밝히자면 저의 지금 삶에서는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는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현직 때보다 더 바쁜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 말씀도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대안학교 월, 목요일 출근하여 강의 하고, 읽고 싶은 책을 가득 쌓아놓고 무작정 읽기도 하고, 지역 센터에서 요청받은 학교 밖 청소년 대입 지도 봉사활동, 고독한 시니어 세대와 대화 나누기 봉사활동, 매일 걷기, 독서모임 참가, 색소폰 배우기 등등으로 좀 바쁘게 삽니다. 그런데도 유튜브 동영상으로 강대진 박사의 <오딧세이아> 강의를 매일 듣습니다. 외로움을 느낄 새가 별로 없긴 합니다. 가급적 낮에 이런 일정을 모두 소화하려 합니다. 저녁엔 집에서 귀가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저녁, 밤 시간은 외부 약속이 없는 한 가족들과 함께 있으려 노력합니다.
중년이 아니라 노년 세대의 삶에서도 안광복 선생님 말씀이 상당히 유효합니다. 욕망에 사로잡히면 그 삶은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씀 말입니다. 이제 이 나이에 무슨 인생 목표가 거창할 것이며 남들 눈총을 받을 정도의 욕망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지요. 그냥 젊은 세대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합니다. 노노케어라는 말도 있듯이, 노년세대끼리 서로 북돋워주고 성원하면서 나이가 들어가도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심어주면 우리네 삶도 무조건 삭막하지는 않을 겁니다. 외로움보다 고독이라고 했지요. 저도 두 단어의 차이를 깊이 인식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두 단어의 의미가 유사하다고 생각했고 깊이 고민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진짜 고독은 피할 일이 아님을 실감하고 살아가렵니다.
들지 않으면 무겁지 않듯, 맞서 이기려 하지 않을 때 세상은 한 편의 예술 작품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만 삶은 고통이다.”
그렇다면 중년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쇼펜하우어는 “규칙적이지 않은 위대한 삶은 없다”는 말도 했다. 나아가 그는 우리에게 ‘정신의 귀족’이 되라고 다그친다. 주변이 욕망을 들쑤시고 호기심을 잡아끄는 거리로 넘쳐나는 요즘이다. 이런 상태에서 저절로 내 삶이 놓여날 리 없다. 단 음식을 줄이고 식단 관리를 하며 운동으로 건강을 가꾸듯, 마음도 꾸준히 다스리고 챙겨야 한다.
중년은 외롭다. 그렇지만 넓은 인간관계는 더 많은 스트레스를 안기기도 한다. 이럴수록 “모든 불행은 혼자 있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깊고 풍성한 지성과 예술적 감성을 갖춘 사람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공부할 것들, 탐구해야 할 아름다움이 끝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은 다르다. 고독할 줄 아는 중년이 돼야 한다는 소리다.
중년에 다다른 대한민국의 쇼펜하우어 열풍은 곰곰이 따져보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주의를 잡아끄는 스마트폰과 동영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가꾸는 ‘좋은 고독’을 바라는 이가 많은 듯싶어서다. 겨울의 끝 무렵이다. 중년의 내면을 풍요롭게 가꿀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에 빠져보시길 권한다. 봄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