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우리집에서는 밥을 항상 제가 합니다. 어떨 때는 오곡밥으로, 또 어떨 때는 팥과 콩을 주로 섞은 잡곡밥으로, 수수밥도 하곤 했습니다. 요즘엔 시골에서 경북 상주 처가에서 온 밥맛이 뛰어나 조선 시대 진상미였다는 그 상주쌀에 찹쌀을 섞어 지으면 아내와 아이들이 정말 맛있게 먹습니다. 전기 밥솥에 쌀을 안치고 물을 적당하게 부으면 그냥 밥이 되는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랍니다. 적절한 물의 분량에 시간 조절도 신경써야 합니다. 5년 전인가 6년 전인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부터 제가 밥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어제 밤엔 큰아들이 밥솥에서 밥을 퍼서 그릇에 담다가 뒤돌아보면서 저에게 말하더군요.
"아버지 밥 맛이 좋습니다. 아까 먹어 보니 맛이 좋아 좀 더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녁밥을 두 번째 먹는가 봅니다. 밥맛이 좋아서 두 번째 먹는 것고 고마운 일이지만 감사합니다란 말을 직접해주는 큰아들이 더욱 고맙더군요. 사실 밥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데 말이지요. 불현듯 고마운 일들이 줄줄이 떠오릅니다.
한창욱의 < 혼자여도 괜찮아> 책에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스 어에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분류된다. 크로노스는 정해진 시간으로써 1시간에 60분, 하루에 24시간, 1년이면 365일이 꼬박꼬박 흘러간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이다. 외국어를 배우거나 강의를 듣기 위함이 아닌, 내가 어딘가와 연결된 채 흘려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지만, 순간의 외로움은 잊을 수 있지만 지나고 나면 허망하다.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깨닫고 그 힘을 이용한다면, 살아가면서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 당신이 꿈꾸고 소망했던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나 친구를 등지고 워커홀릭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함게 하는 시간이 소중하듯 혼자 있는 시간 역시 소중하다.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깨닫고,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활용하면 나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고, 상상했던 것들을 현실로 바꿀 수 있고, 꿈을 이룰 수 있다."
큰아들이 밥맛이 좋다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건네오는데, 갑자가 뜬금없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떠올렸을까요. 지난 제 삶이 과연 어디에 해당할까 생각하다가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무작정 뛰놀면서 보냈던 시간들, 학창 시절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인간 관계를 맺으며 보냈던 날들, 젊은 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왔던 세월들 그 먼길을 지나와 이제 남은 날보다 살 날이 분명 적을 노년 세대까지 그 시간들 중에 과연 어느 것이, 어느 부분이 크로노스이고 어느 쪽이 카이로스였던가를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무의미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지대한 의미를 내포한 것 같고, 또 어떤 시간은 정말 의미를 부여할 만큼 중요하다고 여겼는제 지금 돌아 생각하니 참 부질없이 살았던 순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 나이가 되어 보니 큰아들이 '밥맛이 좋다'라는 아주 단순한 말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감동을 받게 됩니다. '감사(感謝)한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해마다 경북 상주 처가에서 가을 추수가 끝나고 보내오는 쌀 네 가마는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장인 살아 계실 때부터 이젠 손아래 처남이 매년 잊지 않고 우리 가족을 위해 정성껏 보내주어 1988년 결혼 이래 36년이 되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고향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친구가 매년 감자 7박스를, 그것도 우리 고향에서 낙동강 건너 고령 개진 찰진 흙에서 자란 유명한 '개진감자'를 해마다 보내주니 진짜 감사한 일이지요. 쌀, 참기름 등 어딜 가다가도 도시에 있는 저를 생각하며 문득 보내주고 싶어서 보낸다, 양이 적어 미안타 라는 고향 친구의 그 우직한 말이 제 마음을 흔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내를 걸어가다가 양말 가게에서 눈에 들어온 꽃양말 세트를 통째로 사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파트 노인정에 들러 한 켤레씩 선물하면 70대 80대 90대까지 나이 많은 여자 선배님이 별것도 아닌 그 양말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금방이라도 눈물이라도 흘릴 듯 고마워하는 얼굴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힐링이 되고 감사한 마음이 밀려 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해 하는 그분들을 보면서 앞으로도 더 나이 많은 분들을 보살피고 배려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현직에 있을 때, 한번도 변치않고 제 편이 되어 준 동료가 건네 준 위로와 격려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뜁니다. 제가 뭔가 실수하여 낭패를 겪고 있을 때, 행여 그 후폭풍이 튈까 대부분 외면하던 때 거의 유일하게 제 곁에 서서 '걱정마세요. 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라고 위로하며 성원하던 그 후배 선생님은 지금도 늘 가슴속에 감사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만 30년이 되어 가는 모임에서 그 긴 세월 함께 했던 회원들이 지금껏 언쟁 한번 없이 살아온 날들도 감사한 일입니다. 오래 전 장모님 돌아가셨을 때, 부산에서 밤 10시에 출발하여 비오는 밤 경북 상주 이안면 시골까지 달려와 아내를 위로해 주던 우리 회원들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문상을 마치고 다시 부산에 도착하니 새벽 5시더라는 말씀이 지금도 쟁쟁합니다. 아내도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갖고 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상가에서 누런 삼베의 상복을 입은 저를 보고 신기해 하면서도 아버지를 잃은 아내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셨지요. 긴 세월 맺은 고귀한 인연 덕분에 그런 감사한 일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지요.
세상에 고마운 일 정말 많습니다. 뭔가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진심어린 위로, 격려, 배려에도 커다란 감사함을 갖게 됩니다. 우연히 길가다 만나 반가움에 잡는 손길,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오랜만에 만나 짧은 시간에 나누는 미소 띤 인사,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들이 봄날 따스한 기운을 받아 두꺼운 흙 꺼풀을 뚫고 올라오는 기색, 아무리 노력해도 안 빠지던 체중이 어느 날 단 1kg 빠지던 날, 봄날 따스한 기운을 받아 부드러운 바람이 스쳐가는 나뭇가지, 처마끝을 타고 곱게 내리는 빗물의 풍경 등등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