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씨춘추(呂氏春秋』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높은 산에는 걸려 넘어지진 않고 나지막한 개미 언덕에 걸려 넘어진다."
인지정부궐어산 이궐어질(人之情不蹶於山 而蹶於垤)
위 문장을 사소한 것이라도 충실하게 노력을 기울여야 큰일도 해낼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제 삶에서 얻은 교훈이라면 '사람은 큰 것보다 아주 사소한 것에 오히려 마음이 많이 상한다.'입니다.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어도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 사람은 있다라는 것이지요.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인간 관계를 맺어 대화를 하다 보면 말하는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정답게 얘기하는데도 은근히 내 자신을 멕이는 듯한 맥락을 접하면 그것이 나를 직접 겨냥한 건지 아닌지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불편함, 기분 나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정말 사소한 말이나 행동이 나를 하루 종일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 남과 허물없이 대화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남과 대화하거나, 남들 앞에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도 상대방을 불쾌하게, 불편하게 하는 언행은 극도로 자제해야 합니다. 더욱 나쁜 것은 누가 들어도 상대방을 자극하는 언사를 함부로 자행하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상대방을 자극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은 누구나 쉽게 알아채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을 기분나쁘게 하는 말은 스스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요.
사람들이 사소한 것에 목숨을 왜 거는지 궁금하다곤 하지만 우리가 살다 보면 그 이유를 알 겨를도 없이 휙 지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낮에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뭔가 나를 불쾌하게 한 듯 아닌 듯 애매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돌아올 때는 정신없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막상 집에 도착하여 현관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기분이 나빠집니다. 상대방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말의 어떤 내용이 나를 불쾌하게 했는지 명확하게 지적할 수는 없지만 그냥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도착해서부터 불쾌한 감정이 서서히 커집니다. 내 마음 속에서 불쾌함의 정도가 갑자기 커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아니야 그 사람이 그런 의도도 안 했을지 몰라. 내가 지나치게 예민해서 그런 걸 거야.'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진정시켜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 보니 그렇게 세상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일일이, 세세하게 신경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그렇게 신경쓰면서 대화를 나눌 바에 아예 서로 말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속 편하지요. 젊은 시절엔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무슨 틀린 점이라도 보이면 참지 않고 논쟁을 하기도 하지요. 그럴 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에도 목숨 걸 듯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젊은 시절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노년 세대의 삶에서는 대강 대강 살아가는 것이 편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말을 확 줄여야 합니다. 젊은 세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들의 삶의 방식이나 사고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나이가 든 사람 입장에선 좋은 뜻으로 충고를 한다고 하지만 그런 충고를 깊이 들어줄 젊은 세대가 거의 없습니다. 쓸데없는 간섭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와 어울릴 일이 있어도,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려니 하면서 대충 대충 받아들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