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편과 가래떡도 구분 못하고
미역과 다시마도 구분 못하는 당신이
그렇게 싱겁하게 농담도 주고받고 하다가
어제 밤 12시 넘어 그야말로 심야에 책을 읽다가 갑자기 잠깐 걷고 싶었습니다. 초저녁부터 보슬비가 내렸기 때문에 아파트 주차장엔 물기가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주차장 이곳저곳에 있는 가로등이 빛을 내리고 있더군요. 편의점 가는 길에 보니까 야간경비원 두 분이 근무하시는 모습이 경비실 창문 너머로 보입니다. 편의점에서 두 분 드실 과자를 몇 개 샀습니다. 고구마 스낵을 유난히 좋아하시는 분 생각에 2+1으로 두 세트를 샀습니다. 금액이야 얼마 안 되니 부담도 되지 않지요. 편의점 알바 생이 유통기한 직전 과자를 그냥 주겠다고 해서 한 봉지를 더 받았습니다. 하루 이틀 뒤면 유통기한이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과자를 가득 사서 들고 경비실에 들어섰습니다. 평소에 늘 대화를 많이 나누는 70대 중빈 정00 반장께서 크게 웃으시면서 환영해 주십니다.
"추운 밤에 근무하시느라 수고하십니다. 제가 밤늦게 책보다가 갑자기 입이 좀 심심해여 편의점에 가서 뭘 좀 샀습니다. 전번에 보니까 고구마 스낵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2+1세트를 샀습니다. 별 것은 아니지만 드시고 수고 하세요. 어디 아프신 데는 없습니까."
"아이고, 뭐 일부러 이리 마이 사가지고 오셨습니꺼? 고맙심더. 늘 우리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리 오신 김에 떡이라도 좀 가셔가시가~ 사모님과 드시이소. 둘 중에 어느 거 할랍니꺼?"
받니 마니 하면서 시루다가 결국 받기로 했고, 시루떡과 하연 떡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저야 당연히 시루떡을 좋아해서 그것을 선택하면 되는데 아내는 가래떡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내 생각을 하여 하얀 떡을 골랐습니다. 그렇게 싱겁하게 농담도 주고받고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경비원 분들이 제 눈치를 볼 듯해서 말이지요.
아침에 일어나 아내에게 어제 받은 떡을 건네면서 오늘 출근하여 간식으로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가래떡이라고 하면서. 그런데 아내 왈,
"아이구, 당신 가래떡하고 절편도 구분 못하나. 이건 가래떡이 아니라, 절편일세, 하기야 다시마와 미역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니 내가 더 이상 뭐라 카겠노. 그래도 내 생각해가~ 당신 좋아하는 시루떡 말고 날 생각해가~ 하얀 떡 절편이라도 이리 갖다 주이 고맙습니다. ㅋㅋ."
가끔 이렇게 아내가 놀릴 때는 제가 진짜 사물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약간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그냥 웃고 맙니다. 하기야 지금 이 나이에 그런 것을 놓고 둘이서 가벼운 농담이나 잡담이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아내도 저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그렇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사달라고 해서 겨울에 집을 나섰다가 최근에 떡집이 몇 군데나 폐업한 것을 알았고, 집에서 꽤 먼 곳까지 겨우 겨우 어떻게 해서 흰 가래떡을 사서 돌아와 집에 도착해서 열어보니 그 새 식어서 아내가 실망했던 일도 떠오르네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가래떡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