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Mar 26. 2024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어머니의 사랑이 회복탄력성을 키웠다.



오늘은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리며 한시(漢詩) 한 수를 소개합니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편의 ‘육아(蓼莪)’라는 시입니다. 요즘 한문 공부하느라고  접하는 것이 시경인데 너무나도 유명한 고전이지만 저의 학문 깊이가 별로인 탓인지 참으로 역부족을 느낍니다. 오늘 다시 접한 이 시 제목 육아(蓼莪)는 풀이하자면 '길게 자란 다북쑥' 정도가 됩니다. 비아이호(匪莪伊蒿)에서 다북쑥이 자라 약쑥이 된 것은 어린 자식을 부모님이 길러주어 지금은 어른이 된 자기에 비유한 것입니다. 또 유뢰지치(維罍之恥)에서 병에 물을 길어다 뢰에 부어두는데, 병이 텅 비어 있으면 뢰에 따라서 물이 찰 날이 없으므로 병이 비면 뢰의 수치가 된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부모님이 편히 지내시지 못함은 아들의 책임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육륙자아(蓼蓼者莪)          더부룩하게 자란 저 다북쑥

비아이호(匪莪伊蒿)          다북쑥이 아니라 약쑥이지.

애애부모(哀哀父母)          슬프다 부모님께세

생아구로(生我劬勞)          날 낳아 기르시며 수고하셨네

육륙자아(蓼蓼者莪)          커다랗게 자란 저 다북쑥

비아이위(匪莪伊藯)          다북쑥이 아니라 왕쑥이네

애애부모(哀哀父母)          슬프다 부모님이시어!

생아노췌(生我勞瘁)          날 낳아 기르느라 초췌하셨네

병지경의(缾之罄矣)          텅빈 작은 병은

유뢰지치(維罍지恥)          큰 항아리 대하기 부끄럽고

선민지생(鮮民之生)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불여사지구의(不如死之久矣)  일찍 죽어 버림만 못하네.

무부하호(無父何怙)          아버님 안 계시면 누굴 의지할 것이며

무모하시(無母何恃)          어머님 안 계시면 누구에게 기대겠나?

출칙함휼(出則銜恤)          밖에 나가면 걱정만 하고

입칙미지(入則靡至)          안에 들면 기댈 곳 전혀 없네.

부혜생아(父兮生我)          아버님 날 낳으시고

모혜국아(母兮鞠我)          어머님 날 기르셨네

부아휵아(拊我畜我)          쓰다듬고 돌보아주시며

장아육아(長我育我)          키워주고 길러 주셨네.

고아복아(顧我復我)          나를 돌보시고 걱정하시며

출입복아(出入腹我)          드나들 적마다 나를 돌보아 주셨다.

욕보지덕(欲報之德)          그 은혜 갚으려 해도

호천망극(昊天罔極)          하늘이 무정하시네.

남산열렬(南山烈烈)          남산은 높다랗고

표풍발발(飄風發發)          회오리바람 거세게 분다.

민막불곡(民莫不穀)          사람들은 다들 잘 살아가는데

아독하해(我獨何害)          나만 홀로 어이 해를 입는가

남산율율(南山律律)          남산은 우뚝 솟아 있고

표풍불불(飄風弗弗)          회오리바람 몰아친다.

민막불곡(民莫不穀)          사람들 잘들 지내는데

아독불졸(我獨不卒)          나만 홀로 부모님 끝내 모시지 못하네


고향 달성군 논공면 위천 우나리 시골마을에서 성장하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 자신이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참으로 편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헌신과 희생 덕분입니다. 부모님 중에서도 어머니의 고생이 정말 컸습니다. 물론 형님과 여동생도 제 삶에서 정말 고마운 존재입니다.  제 삶에서 어려운 시기가 왜 없었겠습니까만 시련을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않고 넘어 간 것은 아무래도 회복탄력성의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심리학에서 아주 강조하는 ‘회복탄력성’은 ‘어려운 상황에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회복탄력성은 비단 인간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체에서도 해당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물 같은 생태계에서도 가뭄 같은 어려운 상황들을 견디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유기체의 역량을 뜻하기도 하지요. 결국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일컫는 말로, 심리학에서는 주로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의미하는 말로 쓰입니다. 제 삶에서 회복탄력성을 가장 많이 키워주신 분이 바로 돌아가신 어머니셨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에 단 한번도 저를 향해 질책, 질타를 하신 적이 없으셨고, '공부하라'는 말씀은 절대 하시지 않았습니다. 국민학교 입학 때 한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담임 선생님께서 가정방문 오셔가지고 어머니 앞에서 한숨 쉬며 걱정하시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당시 아이들 상당수가 한글을 제대로 모르고 학교에 갔던 것 같은데 우리 선생님은 3km여 비포장도로를 걸어서 저희 집에 오셔서 어머니와 함께 저를 걱정하셨습니다. 그때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샘예, 저도 부모가 되가~ 글자도 모르고 학교 문턱에도 몬 가봤심더. 우리 아~는 그래도 학교에서 글자라도 배우게 할라꼬 학교 보낸 거 아입니꺼. 아~가 글자 모르는 거 아~ 잘못이 아이지예. 그래도 우리 아~ 부모한테 잘 하고 그라이까네 글자도 빨리 안 알겠습니꺼. 샘에 우리 아~ 마이 부족하이끼네 잘 부탁드립니더. 우리 아~ 글자도 잘 모르지만 정말 착하고, 마을 어른들한테 칭찬도 마이 받고 들일도 잘 해 부모도 마이 도웁니다."


요즘 같으면 아들이 한글도 제대로 모른다 했을 때 부모가 얼마나 당혹해 했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께선 담임 선생님께 잘 부탁한다는 말씀은 몇 번이나 하셨지만 저를 놓고 자존심 상할 수 있는 말씀은 절대 하지 않으셨지요. 그리고 저의 장점을 억지로 정말  억지로 찾아 선생님께 그 와중에 깨알자랑을 하셨습니다. 어머니 당신께서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고, 글자도 모른다는 사실, 어째 보면 남에게 드러내기 곤란한 일인데도 당당하게 밝히되 글자도 제대로 모르는 아들은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시고 그렇게 담임 선생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어린 저는 옆에 서서 열심히 하겠노라고 약속하였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학교에 가니 담임 선생님께서 저와 몇 명을 따로 불러 정말 열심히 지도하셨습니다.


자음, 모음 등 한글 기본을 대체로 알게 되자  그날부터 세상 모든  글들이 신기했던 기억 아직도 생생합니다. 집에 배달되어 있던 <새농민>이란 신문을 구석 구석 다 읽었습니다. 그 내용 중에 괜찮은 것이 있으면 어머니께 들려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깜짝 놀라시며 진짜 크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 어떻게 글자를 알고 읽었냐면서. 그리고 방구석에 있던 일명 똥종이 인쇄본 <조웅전>은 보고 또 보았습니다. 들일 하면서 어머니 바로 곁에 나란히 쪼그리고 호미로 풀을 제거하는 김매기 중에 그런 책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어머니께선 항상 이렇게 칭찬하셨지요.


"야~야, 니는 우째 이리 똑똑노. 우리 마을 아이다 너머 마을 전부 다해도 니가 제일 똑똑할 끼다. 조웅전 책 진짜 재미있다. 내일 또 이야기 해도."


어머니 당신께는 이 아들이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 지금 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똑똑한 것은 아닙니다. 냥 평범한 아들이자, 소년이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선 유난히 저를 많이 안아주셨습니다. 국민학교 1,2학년 때는 그저 그런 학생이었는데, 3학년 때 첫 시험에서 두 과목을 만 점 받아 우등상을 받고 하교할 때 3km여 비포장도로 고갯길을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X자로 단단히 동여맨 책보자기가 김치국물이 조금씩 배인 그 책보자기가 조금씩 풀려도 그에 신경쓰지 않고 집까지 달렸습니다. 집엔 아무도 없었고, 책보자기를 마루에 던져 놓고 상장만 들고 다시 들판 그 넓은 들길을 뛰었습니다. 밭 저 안에서 어머니가 종종걸음으로 나오십니다. 그리고 글자도 모르시는데도 단번에 상장임을 알아채셨습니다. 얼마나 저를 세게 안아주셨는지 모릅니다. 땀과 흙이 범벅된 어머니 광목 앞치마가 엉기면서 저를 안았는데, 세상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이 제 인생에 커다란 회복탄력성을 심어준 것 같습니다. 글도 제대로 모르던 아들인데도 항상 칭찬을 해주셨던, 어린 제가 보아도 칭찬이 될 만한 것이 아닌데 그렇게 진심으로 칭찬하고, 제가 조금만 잘 해도 진짜 크게 리엑션을 해주셨습니다. 하루종일 들에서 일하시는 어머니 모습만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학교에 있어도 빨리 집에 가서 어머니 일을 도와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청소 당번이 걸리는 날엔 친구들이 게으름을 피워도 전 열심히 청소하였고, 담임 선생님께선 이쁘게 봐주셨습니다. 특히 3학년 담임이셨던 故 박호달 선생님께선 저를 안아 올리면서 친구들 앞에 칭찬을 많이 해주셨지요. 인자한 얼굴에 미소가 늘 가득했던 선생님께선 지금 생각해 보면 진정으로 저를 아껴주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학예회, 운동회 날에 주황색 한복을 입고 오셨는데, 하도 오래 입은 단벌 한복이라 색깔이 바래고 곳곳에 솔기가 터져 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래도 전 어머니가 학교에 오시면 진짜 좋았습니다. 교실에서 '고향의 봄'을 합창할 때 다른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뒤에 서 있었는데, 어머니는 교실 가운데 난로 바로 옆에 선생님과 나란히 앉으셨지요. 다른 학부모님들이 어머니께 가운데 자리를 강제로 권하셨고, 어머니는 못 이기는 척하며 앉으셨지요. 그리고 합창을 함께 하셨습니다. 운동회하던 날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을 때 어머니께선 가까이 서서 가슴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저를 응원하셨고, 1등으로 들어와 선생님들이 제 손을 잡아 지정된 곳으로 데려오면 어머니께선 언제 오셨는지 바로 뒤에서 "야~야, 니는 우째 그리 잘 달리노. 우리 우나리에서 니보다 잘 달리는 아~는 없을 끼다. 진짜 잘 뛰데."라고 큰소리로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학교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엔 서녘 하늘로 넘어가는 석양이 어머니 얼굴에도 발간 노을을 길게 내리고 있었고, 별로 잘 나지 않은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셨습니다. 운동회나 학예회 이야기를 주로 하다가 우리반 아이들에 대해 궁금해하셨지요. 당시 우리 반에는 면장 아들 권00가 피부도 뽀얗고 공부를 잘 했고, 선생님 아들 하00이의 성적이 탁월했지요. 둘을 언급하면서 그들에 비해 제가 부족하다고 말하니, 어머니께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 와중에 꼭 물으셨던 것은


"야~야, 우리 우나리에서 니 말고 상 받은 아~ 있나?"



가끔 시골길을 달리다가 들판 한가운데 차를 세워놓고 가만히 바라보면 저쯤에서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환하게 미소지으며 사뿐사뿐 걸어오실 듯합니다. 금포 돌끼 5일장에 가도, 현풍 5일장에도 꼭 저와 함께 가시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대학 입학 본고사 치던 날은 외삼촌, 이모, 외사촌 등 대부대를 동원하여 저를 격려하셨지요. 무당이었던 이모는 두툼한 목도리를 감아주면서 "느그 엄마 촌에서 농사짓는다고 우리 형제 중에 유일하게 촌에 시집가가 죽도록 뼈빠지게 일한다고 등골 빠진 거 알제, 외삼촌과 이모들 한테는 한이 됐다 아이가 . 니가 있제  오직 니 하나만 보고 사는 느그 엄마 원 한번 풀어준다 생각하고 시험 잘 치고 온나. 알았제"라며 압박성 격려와 성원도 주셨습니다. 이모, 외숙모, 외사촌 등 대거 인솔한 어머니는 흡사 장수 같았습니다. 시험 치고 다시 식당에서 모였을 때 어머니는 평소에 잘 안 마시던 막걸리를 들었고, 사촌들과 가진 어머니 생전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건배하던 날도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셨지요. <엽전 열닷 냥> 그리고 딱 한 곳 가사를 바꿔 부르셨습니다. 내낭군을 우리아들



대장군 잘있거라 다시 오마 고향산천

과거보러 한양찾아 떠나가는 나그네에

내낭군 (우리 아들) 알성급제 천번만번 빌고빌며

청노새 안장위에 실어주던 아 엽전 열닷냥


어제밤 잠자리에 청룡꿈을 꾸었더라

청노새야 흥겨워라 풍악따라 소리쳐라

금방에 이름걸고 금의환향 그날에는

무엇을 낭자에게 싸서가리 아 엽전 열닷냥


Hotels.com | KR 16x9 | Find Your Perfect Somewhere | Find Yours 15s (youtube.com)


고2 가을날 제가 경운기로 무를 가득 싣고 가서 현풍장에 다 팔고 돌아오던 길에 어머니가 마을 아지매들과 함께 경운기에 올라타서 아지매들의 권유에 따라 흥겹게 부르셨던 "방랑시인 김삿갓"과 함께 제 생전 어머니 육성으로 들었던 노래 두 곡이었지요. <엽전 열닷냥> <방랑시인 김삿갓>


작가의 이전글 절편과 가래떡도 구분 못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