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최선을 다했는데도 놀림이 되고
분명히 열심히 살았는데도 모자란 사람이 되면
그렇게 쏟은 내 정성이 허무해질 즈음에
누군가 어딘가에 속상함 털어놓고도 싶고
말 못하는 나무 둥치에 기대앉아
하염없이 흘러가는 파란 하늘 곁 하얀 구름 보고
속마음을 내놓으려다 지난 내 인생이 실없이 가벼워지는 듯
난 분명히 상대를 배려했는데도 그는 덜 받은 권리로 여기고
언젠가 더 많이 내놓아야 할 지경에 다다르고
진짜 그를 존중했는데도 돌아온 비웃음은 견디기 어렵다.
살얼음 밟듯 조심 조심 살아온 지난 삶에
그 틈들 사이에서도 행여 보람도 있으련만
방바닥에 누워 그 속에서 울려오는 소리 들으면
지난 내 삶이 한결 어이없게 된다.
살다 보면
그래도 좋은 날이 많았다.
새벽길 따라 찾아간 들길 풀잎에 맺힌 이슬은
갈대밭 사이를 헤쳐 걸어간 길에 앉았다.
먼저 와 있던 강바람이 내 귓가를 스쳐가고
강물 위 빛나는 물비늘 조각 조각에
긴 인생 내 삶이 굽이 굽이 굴곡진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도 휘어지지 않고 끌려가지 않으며
원망도 미움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그 모든 원천은
들논에서 일하다가 달려나와 나를 꼭 안아주신
아득한 세월 저 너머 어머니의 빛바랜 광목 앞치마
그 속에 잔뜩 배인 땀과 내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