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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26. 2024

살다 보면

난 최선을 다했는데도 놀림이 되고

분명히 열심히 살았는데도 모자란 사람이 되면

그렇게 쏟은 내 정성이 허무해질 즈음에

누군가 어딘가에 속상함 털어놓고도 싶고

말 못하는 나무 둥치에 기대앉아

하염없이 흘러가는 파란 하늘 곁 하얀 구름 보고

속마음을 내놓으려다 지난 내 인생이 실없이 가벼워지는 듯


난 분명히 상대를 배려했는데도 그는 덜 받은 권리로 여기고

언젠가 더 많이 내놓아야 할 지경에 다다르고

진짜 그를 존중했는데도 돌아온 비웃음은 견디기 어렵다.

살얼음 밟듯 조심 조심 살아온 지난 삶에

그 틈들 사이에서도 행여 보람도 있으련만

방바닥에 누워 그 속에서 울려오는 소리 들으면

지난 내 삶이 한결 어이없게 된다. 


살다 보면

그래도 좋은 날이 많았다.


새벽길 따라 찾아간 들길 풀잎에 맺힌 이슬은

갈대밭 사이를 헤쳐 걸어간 길에 앉았다.

먼저 와 있던 강바람이 내 귓가를 스쳐가고

강물 위 빛나는 물비늘 조각 조각에

긴 인생 내 삶이 굽이 굽이 굴곡진 것 같은데

어느 순간에도 휘어지지 않고 끌려가지 않으며

원망도 미움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그 모든 원천은

들논에서 일하다가 달려나와 나를 꼭 안아주신

아득한 세월 저 너머 어머니의 빛바랜 광목 앞치마

그 속에 잔뜩 배인 땀과 내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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