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가족, 친구, 동료, 연인 등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 속에서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위로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그 많은 관계 속에서 정말로 나를 존중하고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김종원 작가는 "언제나 선을 넘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를 평생 소중히 간직하라"고 말한다. 단순해 보이는 이 문장 속에는 인간관계의 가장 본질적인 진리가 담겨 있다.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말하는 '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상대방의 감정적 경계선이자, 개인적 영역에 대한 존중의 표시다. 누군가의 사생활을 함부로 캐묻지 않는 것, 상대방이 싫어하는 농담을 반복하지 않는 것, 개인적인 선택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것,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는 것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불편해할 만한 지점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선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을 지키려면 끊임없이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전에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수고를 피하고 그냥 편한 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친한 사이니까 괜찮겠지", "이 정도는 별거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의 경계를 무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는 친밀함의 표현이라고 착각하면서 상대방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친밀함은 상대방의 경계를 존중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언제나 나의 경계를 존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런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안전함을 느낀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내 개인적인 영역이 함부로 침해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내가 거절해도 관계가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감을 갖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나에게 조언을 할 때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되 최종 결정은 나에게 맡긴다. 내가 힘들어할 때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내가 혼자 있고 싶어할 때는 적절한 거리를 둔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그것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모든 행동들이 얼마나 많은 의식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보라. 상대방의 표정과 말투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고, 상황을 파악해야 하며, 때로는 내 감정이나 욕구를 억제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래서 김종원 작가의 말이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온다. 선을 넘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를 위해 지속적으로 그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나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자기중심적이 되어가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SNS 문화는 이런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온라인상에서는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고,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해지면서 깊이 있게 생각하는 습관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선을 지키는 사람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 그런 사람들은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줄여준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가면을 벗고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다. 판단받을 두려움 없이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무리한 기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힘이 된다. 존중받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지고, 존중하는 사람은 인격적 성숙을 이룬다. 양쪽 모두가 성장하는 건강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자. 언제나 내 경계를 존중해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며,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 역시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의 선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들의 경계가 어디인지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더라도 상대방의 편안함을 우선시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선을 지키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연결감을 경험할 수 있고, 삶의 깊이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언제나 선을 넘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는 정말로 평생을 함께해야 할 소중한 사람이다. 그런 관계의 가치를 알아보고, 소중히 여기며,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어른이 가져야 할 품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