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의 전성시대를 살고 있다. SNS 한 줄이 여론을 뒤흔들고, 유튜브 영상 하나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다. 말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 화술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 정작 우리는 진정한 소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각자의 내면에는 타인이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깊은 세계가 있다. 말이라는 도구만이 이런 고립된 개인들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다리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말의 힘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인간관계의 근본을 좌우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현대 사회는 마치 거대한 광장과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한다. 인플루언서들은 더 자극적인 콘텐츠로 관심을 끌려 하고, 정치인들은 더 강한 메시지로 지지를 호소한다. 이런 환경에서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는 묻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경쟁 구조가 말의 본질을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진실보다는 임팩트가, 내용보다는 포장이 중요해진다. 사람들은 점점 더 극단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게 되고, 결국 말은 소통의 수단이 아닌 경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는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무책임한 말들이 난무한다.
말의 힘이 강해질수록 그 부작용도 커진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이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가짜뉴스와 선동적인 메시지들이 사회를 분열시킨다. 댓글창은 전쟁터가 되고, 토론은 감정싸움으로 변질된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하기보다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모여 메아리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소통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인내심은 사라지고, 자신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독백이 대화를 대신한다. 말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갈라놓는 벽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소통은 말하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듣기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의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도 반박할 논리만 찾고 있는 경우가 많다.
좋은 듣기는 단순히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듣고, 공감으로 듣는 것이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배경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런 듣기가 있어야 진정한 대화가 시작되고,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소통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하는 말은 곧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험한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거친 사람이 되고, 따뜻한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따뜻한 사람이 된다. 말은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동시에 자신을 형성하는 강력한 도구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진정성이 담긴 말을 해야 한다. 아무리 유창하고 논리적인 말이라도 진심이 없으면 공허하다. 반대로 투박하고 어눌한 말이라도 진심이 담겨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또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을 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되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하는 균형 잡힌 말하기가 필요하다.
건설적인 말하기도 중요하다. 단순히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말을 해야 한다. 파괴적인 말은 관계를 무너뜨리지만, 건설적인 말은 관계를 발전시키고 공동체를 성장시킨다.
말의 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침묵의 가치도 안다. 모든 순간에 말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조용히 듣고, 때로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적절한 침묵은 상대방에게 여유를 주고, 자신의 말에 더 큰 무게를 실어준다. 말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일수록 침묵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침묵은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생각이 익어가는 시간이다. 성급하게 내뱉은 말로 후회하기보다는, 충분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선택한 말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말의 힘을 아는 사람은 언제 말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 그 타이밍을 안다.
결국 말의 진정한 힘은 상대방을 제압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데 있다.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화해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말이 칼이 되어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약이 되어 상처를 치유하는 데 있다.
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니다. 더 따뜻하고 진실한 목소리다.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좋은 말이다. 그런 말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이 될 것이다. 말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는 소통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