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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05. 2023

바다를 보면

가만히 바다를 바라봅니다. 따뜻한 봄날 꽃들이 온세상을 환하게 피어나고 부드러운 바람이 귓가를 스쳐가며 우리들의 마음을 너무나 편하게 만들어 줍니다. 잔잔한 파도 위엔 수많은 배들이 떠 있고 산을 배경삼아 파란 바다와 하늘까지 온세상이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네 삶이 지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숱한 고비가 있었지요. 희로애락애오욕 7정이 몇 가지씩 섞여 그렇게 삶을 장식하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넓은 바다 앞에서 생각에 잠깁니다. 살아가면서 참으로 복잡다기한 사건을 겪으며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렇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미워하고 싫어하고 원망하던 날들이 지금은 세월 저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지금 현재는 저 푸른 바다처럼 세상을 모두 받아들이며 살아갑니다. 


매일 매일을 지내면서 바다와 같이 저렇게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하고 수용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내 능력이 닿는 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도와주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것 그리 많지 않으나 저와 가족이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니 이젠 어려운 남에게 어떻게든 손을 내밀어 삶에 대한 의지를 갖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저 푸른 바다 위에 태양이 떠올라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한낮을 지나 저녁 노을이 아름답게 물드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돌아봅니다. 저녁 무렵에 하늘에 미리 떠 있는 달빛이 점점 더욱 밝아질 때까지 따뜻하고 조용한 이 바닷가에 앉아 가만히 상념에 잠기고 싶습니다. 학창 시절 들었던 '바닷가에서' 노래도 떠올립니다. 지독히도 가난한 농촌에서 자라 삶의 여러 질곡을 거쳐 여유로움을 누리는 자신에게 바다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입니다. 


"매사에 감사하고, 항상 다른 이의 노고를 잊지 마라."


바닷 속 깊은 곳에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다니겠지요. 그들도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매 시간을 그렇게 보내겠지요. 무리를 지어 다니며 맛있게 먹고 즐거운 기분에 젖어 물속을 편안하게 다니면서 행복을 느끼겠지요. 가끔은 해초들을 굽이 굽이 스쳐 지나가며 바다가 주는 거대한 은혜를 가득 가득 품고 가겠지요.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가에 맞춰 물속 바위에 머무르며 춤도 출 것입니다. 


우리들의 온갖 감정들을 한곳에 모아 깊은 상념의 세계를 이끌어주는 바다가 오늘따라 정말 크게 다가옵니다. 젊은 날 그렇게 바쁘게 살았던 날들 중 여유를 갖고 바다를 바라볼 틈도 없었던 때를 떠올립니다. 이제 세월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바닷가에서 혼잣말로 대화를 나눕니다. 봄바람이 몸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조금은 졸립기도 합니다. 바다가 보내는 봄바람이 저를 거쳐 저 뒤에 서 있는 산으로 스쳐 올라갑니다. 


저 바다를 보면 누군가가 가끔 걸어오는 안부 전화도 매우 고맙게 느껴집니다. 점심 먹고 어딜 잠깐 가다가 


"잘 지내나. 우리 이러다가 언제 보겠노. 나이 들어 그리 바쁘게 살지 마라. 우리 얼굴도 한번씩 보면서 살아야 안 되겠나. 그리 생각 안 하나. 그나저나 밥은 뭈나?"


예전 같으면 그런 사소한 거리를 전하려고 전화를 했을까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어쩌면 저 푸른 바다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교 시절 공부를 지독히도 안 하거나 못했던 제자가 경찰 고위직에 승진하고, 거의 매일 아침 9시 10분 쯤에 친구들 셋이서 택시타고 헐레벌떡 등교하여 지각이라고 벌받던 제자가 변호사가 되었다는 연락이 왔을 때도 정말 고맙기 그지없었지요. 그런데 지금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아주 아주 사소한 전화도 정말 크게 다가옵니다. 


누군가 전화를 해주면, 특히 오랜 세월 저와 인연을 맺은 제자들 중 누군가가 안부 전화를 해주면 반드시 이 말을 덧붙이면서 전화를 끊습니다. 


"이렇게 연락을 주어 참으로 고맙다. 늘 건강해라이."


다시 바닷가로 상념을 이끌어 옵니다. 평소 수행을 잘 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욕심을 덜어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인생의 특별한 목표가 있을 리도 없고, 그런 목표를 세월 생각이나 의지도 없습니다. 그저 저녁 해질 무렵 석양이 빗겨 넘어가는 무렵에 가까운 지인들과 막걸리 잔이라도 나누며 세상 이야기를 편안하게 주고 받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 삶의 행복을 누리도록 저 바다가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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