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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04. 2023

전화하면 늘 "밥은 잘 먹고 있나?"

노후에 악기 하나는 배워두면 좋겠다 싶어서 올 1월부터 색소폰 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음악 센스가 워낙 떨어지기에 다른 사람보다 진도가 훨씬 늦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세련된 색소폰 음악 연주를 들으면 난 언제 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면서 부럽기만 합니다. 학원 원장님께선 제가 연습하고 있는 노래 곡을 한번 테스트해보자고 자꾸 권하지만, 제가 자신이 없이 요리조리 피합니다. ㅎㅎ. 아직은 왕초보니까요. 


연습실 각 방에서 열심히 연주하는 분들이 쉬는 시간에 홀 가운데 테이블에 둘러앉았습니다. 모두들 하고 픈 이야기가 줄줄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뵌 분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키도 크고 인물도 좋으면서 피부도 매끈하게 보이더군요. 군살도 별로 없이 건강관리를 잘 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비결을 물었더니 특별한 운동은 하지 않고 수석에 취미가 있어서 이곳저곳 많이 다닌 덕분이라고 털어놓습니다. 그런데 이분께서 나이가 81세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기할 정도록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분의 지난 삶의 행적을 길게 들었습니다. 


젊은 날 육군본부 의장대로 차출되어 군복무한 이야기부터 화려한 젊은 시절이야기가 줄줄이 나옵니다. 우리 모두 그분의 입만 바라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저로 리엑션을 크게 하고 맞장구도 열심히 쳐줍니다. 이분이 말씀하시면서 신이 났던지 다양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  줍니다. 다른 사람보다 저를 많이 바라보면서 말하더군요. 제가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도 겪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런 이야기까지 일일이 밝힐 수 없지만 그분 인생 진짜 대단했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숨을 한번 고르기 위해 멈추기에 또 다른 화제가 나오려나 기대하고 있는데. 예상치 않은 말씀을 하십니다. 아드님이 둘이었는데, 큰 아드님이 몇 년 전에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가신 모양입니다. 우리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밝히니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집니다. 부러움이 갑자기 미안함으로 변합니다. 우린 일순간 모두 말을 잃었습니다. 괜히 그분께 당신의 삶에 대해 물었다가 급기야 이 상황까지 이르렀기에 죄송하였지요. 


그러다가 그분께서 이젠 아들을 잃은 충격도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해소되어 가더라고 합니다.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와 자신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선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네요. 어쩌면 우리 인생의 행운과 불행이 교차하는 것이 아닐까요.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늘 불행한 일만 있으란 법이 없으니까요.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이 그렇게 굴곡진 시간들이 모여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 끝에 마가 끼인다는 말처럼 지금 당장 좋은 일이 많이 있다고 해도 앞으로 계속 그렇게 가란 법이 없이 불행한 일도 언제나 우리 곁으로 올 수 있으니 대비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지요. 물론 우리 인생의 불행이 대비한다고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것도 있겠지요. 


그렇게 그분 말씀이 대충 마무리되려 합니다. 그런데 한 마디 더 합니다. 큰아들은 그렇게 잃었고 둘째 아들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하기에 우리 모두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렇다고 다행이란 말씀은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지요. 그냥 그분 눈치만 보는데, 그분께서 


"요새 제가 둘째 아들에게 전화 통화할 때마다 뭐라고 하시는 줄 아십니까? 참 둘째 아들 부부는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집에는 집사람하고 둘이 살고 있으니 마음이 좀 그렇지요. 그런데 둘째 아들 부부가 지금껏 아이가 없어서 그기 너무 너무 아쉽더군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야 기성세대처럼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한다, 아들이 꼭 필요하다 등에 그리 깊이 생각이 없지요. 하지만 저와 집사람은 손주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아들 부부 눈치를 걸면서 며느리가 부담 느낄까 봐 둘러서 말합니다."


우리가 거의 동시에 


"아들과 통화할 때마다 뭐라고 하십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요새 밥은 잘 먹고 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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