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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19. 2023

당신이 더 잘 먹어야 한다 아이가

아내는 환자, 저는 병간호인이란 생각이 지난 수년 간 제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었지요. 그렇게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아직도 '밥짓기'를 비롯한 집안일 하기가 어설프지만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봅니다. 가끔은 아내가 구박도 하지만 딸 아이 말처럼 그것도 아내가 건강한 증거라고 여기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입니다. 제가 조금 망가져도 아내가 웃고 즐거워한다면 그것이 결국 저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아침에 아내가 늘 먹은 해독주스와 전복죽을 데우려고 냉장고에 꺼내놓습니다. 가끔 밥을 먹긴 하지만 긴 시간 소화기능이 떨어질 정도로 죽을 많이 먹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포트에 물을 가득 부어 팔팔 끓입니다. 그리고 주스와 전복죽을 전자렌지에 넣어 1분 30초 데웁니다. 아내가 약을 먹을 수 있도록 물의 온도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컵에 담아 줍니다. 약을 너무 장기간 복용하면 내성이 생겨 효과가 뚝 떨어질까 가급적 약을 줄이려고 애를 쓰는 아내가 안쓰럽기만 합니다. 그냥 의사가 처방해주는 대로 약을 먹어라, 너무 약 내성이나 부작용을 의식하지 말고 그냥 편한게 먹으면 좋을 텐데. 제가 옆에서 그렇게 말하면 아내도 동의하면서도 약의 분량을 조금씩 줄여 먹습니다. 


언젠가 봄날이 되면 꽃들이 만발한 낙동강가 원동 꽃놀이 드라이브를 꼭 가자고 약속했는데 지난 3년 간은 갈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그나마 다행으로 집 뒤 산에 둘이서 올랐습니다. 잠시 걷다가 아내가 집으로 가자고 하여 돌아왔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이 어딘가 하고 대견스럽게 여깁니다. 짧은 산행 시간에 아내가 "아이고, 힘들어"를 연발합니다. 정말 안쓰러웠지요. 신혼 초에 둘이서 지리산 1박 2일 중산리 코스로 산행갔을 때 중간에 제가 힘들어 쉬자고 했을 정도로 아내가 건강하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네요. ㅎㅎ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시내 한의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는데 토요일 당일은 아내가 마취제를 맞은 듯 기분이 좋아집니다. 한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아 일시적으로 몸이 편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랴 여깁니다. 그것만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가 최근 경험한 다양한 사례를 들려 줍니다. 저는 그저 맞장구치면서 '잘 했네'만 반복합니다. 아내는 제 말을 듣고 맨날 '잘 했네. 그랬구나'만 반복하느냐고 가볍게 타박하면서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남의 말을 5분 이상 들어주기 어려운 세상인데 30분 가까이 말을 해도 지겹지 않은 경우도 있네요. 이렇게라도 해서 아내의 건강 상태가 좀더 나아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3년에 걸쳐 코로나 예방접종 후유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온전히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란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토요일 점심 때는 큰아들표 국수가 집에서 기다리고, 집에 도착한 아내는 그 동안 하지 않았던 부엌일을 하기 시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하는 것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겠지요. 제가 옆에서 아내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당신이 해주는 음식은 늘 맛있어서 좋긴 하지만 너무 무리하면 괜히 몸 상하고 하니 안 하면 안 되나?"

라고 했더니, 아내가


"있잖아 당신이 내 돌봐준다고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는기라. 당신이 더 잘 먹어야 한다 아이가."

라고 답합니다. 


지금 당장은 제가 훨씬 건강하여 아내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아내가 그렇게 표현하니 좀더 제대로 하지 못한 일들이 생각납니다. 어떨 때는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서 빈 방에 들어가 소리를 질렀던 것도 후회가 되더군요. 아내가 못 들었을 터이지만 혹시 듣지 않았을까 미안해집니다. 그때는 아내를 케어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짜증이 정말 많이 났었지요. 그런데 오늘 아내를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했던 것도 죄스럽습니다.


대학생 때 제 몸무게가 61kg 정도로 아주 허약했습니다. 그러다가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학했을 때 74kg이었습니다. 군복무 기간에 육체적으로 큰 덕을 본 셈이지요. 하지만 체질이 약했던 탓인지 식은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그런데 결혼 이후 아내가 정말 좋은 음식을, 그야말로 건강식을 정말 많이 해주었습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나 본인은 대충 대충 한다고 하는데 실제 먹는 저에게는 세상 최고의 요리였지요. 어디 몸에 좋은 것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든 구해 와서 저와 아이들을 먹였습니다. 장모님 살아 생전에 처가 시골에서 좋은 음식을 수시로 만들어 경북 상주에서 부산까지 무궁화 열차를 타고 오셨지요. 


처가 형제 1남 6녀 중 다섯 번째 사위인 저를 특히 이뻐하셨습니다. 


"부산에 올 때가 제일 편하네. 뭐 좀 가져 왔으니 먹어보게"


그렇게 며칠 간 지내다가 가셨지요. 우리집에 오셔서 아이들을 보면서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낮에 병원에 링거 맞고 오시면 방안에서 가만히 누워 아이들 재롱도 만면에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며 좋아하셨습니다. 쌀 가마니는 장인 어른께서 택배로 미리 보내두었지요. 우리집에 주민등록을 하셔서 제 월급에 가족수당이 매월 나왔을 때, 장모님 통장으로 자동 송금이 되도록 했습니다. 적은 금액이지만 장모님, 장인 어른께서 너무 고마워하셨습니다. 처가는 시골에서 꽤 부유했는데도 그런 소액의 송금에도 진짜 감사해하던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연말 정산에서 장모님께 보내드린 가족 수당보다 훨씬 큰 금액을 혜택받았습니다. 연말 정산에서 환급금을 많이 받으면 다음 해 구정 설날에 처가에 가서 돈을 좀 더 보태 장모님께 몰래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장모님은 그 다음날 다시 돈을 보태 우리집 아이들 3남매에게 거액을 도로 주셨지요. 무슨 용돈 배틀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가 참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장인 장모님 살아 계실 때 워낙 많이 베풀어 주셔서 지금 우리 집이 이만큼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모님께서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서


"처가에 한번 안 올 텐가. 시간 나면 왔으면 좋겠는데, 내가 죽고 나면 얼굴도 못 볼 낀데 한번 와 주게."


라고 하시기에 그날 당장 아내를 태워 처가까지 달려 간 적도 있습니다. 처남이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하면서도 반겨주었습니다. 아내도 영문도 모르고 제가 가자고 하니까 그렇게 간 것이지요. 그렇게 처가에 가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잘 못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당시 처가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마련합니다. 저는 방안에 가만히 있는데, 장모님께서 살짝 저에게 다가와 화려한 보자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각종 나물을 문경 점촌시장에 가서 아침부터 팔았답니다. 장인께서 장모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기 때문에 비밀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그러면서 제가 입을 한복 두루마기를 샀다고 하면서 전해 주십니다. 몇 번이나 장인 어른 모르게 점촌 시장에 나가 하루 종일 야채를 판 것 가지고 두루마기를 산 모양입니다. 신혼 때 못 사주었다고 미안해 하시더군요. 두루마기를 입을 일도 별로 없어서 평소엔 생각지도 않았는데, 장모님께서 밭에서 각종 나물을 캐고 손질하여 시장에 아침 일찍부터 나가 팔아 산 두루마기입니다. 신혼 때부터 입었던 한복은 색깔이 바래져 모두 버렸지만 그 두루마기만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밤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올 때면 차 트렁크에 쌀, 콩을 비롯한 각종 곡식과 건강식 9곡 미숫가루까지 가득 가득 실어주셨지요. 그냥 보고 싶다고 오라 하셨고, 저와 아내는 무슨 일인가 걱정해서 갔을 뿐인데 두 어른이 이렇게 와주어 정말 고맙다고 하여 의아했을 정도였습니다. 처가에 갈 때마다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참으로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가을 농사철에선 토요일에 올라가 일요일 저녁까지 일을 도와 드리긴 했지만 무엇을 많이 받을 만큼 도와드리지 않았는데 참으로 많이 받았지요. 



장모님께서 귀한 음식을 마련해서 보내주고 집에선 아내가 정성껏 해주어 제 체질이 바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결혼 후 30년 이상 저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해 준 아내가 정작 코로나 2차 접종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어설프게 아내를 병간호하는데 "당신이 더 잘 먹어야 한다 아이가"를 들으니 괜히 미안하기만 합니다. 요리 잘하는 남편들 이야기를 유튜브 동영상이나 언론에서 접하면 나는 왜 못 할까 하고 생각도 하지요. 지금 이 순간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저 아내의 마음을 달래주고 하고픈 말을 제대로 들어주면서 어설프나마 집안 일을 하는 것이 저의 능력이니까요. 

라고 당신이 더 잘 먹어야 한다 아이가당신이 더 잘 먹어야 한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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