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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22. 2023

왜 명문대학에 꼭 가야만 하는가

삶에서 행복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우리집 3남매는 참으로 평범합니다. 큰아들 35세, 둘째 딸 34세 막내아들 31세로 각자 직장 생활하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큰아들과 딸 아이는 집에서 생활하고 막내아들은 멀리 경기도에서 혼자 생활하며 지냅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막내아들이 집에 오면 아이들 3남매가 완전체가 됩니다. 막내는 집에 오면 누나 퇴근 시간에 맞춰 남포동까지 버스를 타고 마중을 나갑니다. 그리고 둘이서 시내를 구경하기도 하고 쇼핑도 하지요. 막내동생을 유난히 이뻐하는 누나가 동생을 위해선 돈도 아끼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둘이서 저녁 식사까지 하고 들어오기도 하지요. 현관문을 들어서면서도 둘이서 무슨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지 시끌벅적합니다. 


큰아들은 미리 퇴근해서 동생들 먹이려고 특별 요리를 준비하여 기다립니다. 대인관계가 지극히 원만하고 친화력이 뛰어난 큰아들은 자신의 업무엔 실력을 발휘하여 지인들의 호평을 받지만 말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신에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말에 참으로 공손하게 응대하여 사람들을 편하게 해줍니다. 퇴근하여 올 때도 크게 인사를 하고 난 뒤 다시 저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각각 가서 다시 한번 인사를 한 뒤 하루 어떻게 지내셨냐고 물어보는 것이 꼭 조선사대부의 선비같이 보입니다. 우리 부부에겐 최고의 장남입니다.



아이들 셋 어릴 적에 학원도 거의 보내지 않았습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단기로 학원에 보낸 적은 있지만 제가 학원공부보다 스스로 하는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기에 다른 학생들처럼 긴 시간 학원에 다닌 적은 없습니다. 대신에 일요일이면 아이들 태워서 인근 도서관에 하루 종일 지냈지요. 아이들 데리고 나가서 도서관에서 책을 하루 종일 읽거나 인근 공원에 가서 같이 놀면서 집에 있는 아내가 조금이라도 부담을 벗어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볼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 매점 식당에서 3남매가 나란히 앉아 "아빠, 오뎅 떡볶이 핫바 사주세요."라고 외치면 제비 새끼들처럼 그렇게나 앙증맞고 귀엽게 보였습니다. 돈이 무슨 대수입니까. 그냥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사먹이고 싶었습니다. 


딸 아이는 라면을 유난히 좋아하였는데, 아내가 인스탄트 식품을 먹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바람에 딸 아이는 저의 묵인 아래 라면을 많이 먹었습니다. 아내보다 아이들 편을 들었다고나 할까요. 집에 돌아와 각자 방에 들어가 자신이 알아서 책을 보든 게임을 하든 그냥 두었습니다. 참 게임은 많이 하지 못하게 컴퓨터를 거실에 두었습니다. 당시 인기 있었던 FIFA 경기 게임에서 이기면 큰 소리로 환호하며 두손을 번쩍 치켜들며 좋아하던 큰아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이들 교육에 관한 한 거의 '방치, 방목' 수준이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 교육을 저에게 맡겨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가끔 원망도 했었지만 저는 지금도 우리집 아이들에게 학원을 강요하지 않고 자신들이 알아서 공부하게 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집에 와서 잠을 충분히 자고 책도 읽고 하면서 편하고 여유롭게 생활했지요. 그래서 학교에 가면 수업 시긴 내내 잠자지 않고 선생님 말씀을 듣는 아이는 우리집 아이와 나머지 한두 학생뿐이었답니다. 


큰아들 고3, 딸 고2, 막내아들 중3 때는 제가 밤에 아이들 태우려고 차를 순회합니다. 큰아들은 좀 일찍 집에 오고 딸 아이가 고2인데도 좀더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래서 딸아이를 태우러 자습실에 가면 그 넓은 자습실에 혼자 남아 있더군요. 혼자 무섭지나 않을까 싶어 제가 아이랑 함께 30분 정도 자습실에 앉았다가 태워옵니다. 차 안에서 딸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줍니다. 그런 시간이 정말 그립네요. 한번은 학교를 방문할 일이 있어서 딸 아이 교실을 찾아 갔더니 다른 학생들은 장난친다고 난리인데, 우리 딸 아이 혼자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동시에 들고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복도를 걸으며 다가가니까. 아이가 환한 미소로 "아빠!" 하고 달려와 인사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왜 너 혼자 청소하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장난치고 놀고 있는데."라고 하니, 


딸 아이는


"여긴 제 청소구역이에요. 다른 아이들은 청소 다 했겠지 뭐."라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내려놓고 제 손을 잡아 줍니다. 아니 제가 딸 아이 손을 먼저 잡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 학교 행정실에 볼일 있어 왔노라고 설명하고 아이에게 저녁에 보자 하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딸 아이를 태우고 집에 돌아오면, 큰아들이 먼저 집에서 라면을 끓여놓고 기다립니다. 막내아들은 중3이라 늦어도 저녁 무렵이면 집에 와 있지요. 큰아들이 끓인 라면을 3남매가 함께 먹는 장면은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밤늦게 라면 먹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지만 심야 '라면 타임'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면 때문에 사람들의 건강에 관한 말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제가 아이들에게 말했지요


"지금 라면을 먹고 바로 씻고 자야 한다. 내가 지나고 보니 가족끼리 함께 저녁 식사하는 시간이 갈수록 적어지는 것 같아. 너희들 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면 생각보다 형제들이 모여 라면이라도 같이 먹는 일이 드물거든. 지금 아니면 이런 시간도 없으니 라면 타임은 학교 다닐 동안엔 계속해야 한다. 대신 라면 먹고는 씻고 잔다 알았제."


라면 먹는 시간은 1~20분이지만 이야기는 거의 30분 정도 됩니다. 아내도 부엌으로 나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듭니다. 아버지란 사람이 아이들 건강을 헤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음에 대한 실망의 표정이지요. 그렇다고 아내가 뭐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아내도 아이들 라면 먹고 떠드는 것을 보고 좋아했거든요. 특히 막내아들을 좋아하긴 했지만요. 


밤 11시엔 아이들 방 불을 끕니다. 강제로 취침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아들 둘은 "아버지의 명령을 잘 듣겠습니다."하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이불을 덮고 꿈나라로 직행합니다. 딸 아이 방은 쉽게 드나들 수가 없어서 방문 앞에 잠시 서서 기척을 엿들었습니다. 딸 아이 방도 불이 꺼졌지만 좀 이상합니다. 그래서 방문을 살짝 열고 살펴 보았더니 딸 아이는 잠자지 않고 이불 속에서 랜턴 불을 켠 채 책을 보고 공부하고 있더군요. 제가 그냥 모른 척했습니다. 그런 에피소드를 요즘 꺼내면 아이들 3남매가 폭소를 터뜨리지요. 


그렇게 아이들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이젠 본격젹인 성인이 되었습니다. 모두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각자 직장에서 열심히 생활합니다. 제 퇴직금 일부와 아내가 저축한 돈 그리고 딸 아이가 모은 돈을 합쳐 집 인근에 아파트를 딸 명의로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딸 아이는 혼자 생활하는 것이 무서운지 그 아파트는 월세를 주고 그 월세는 우리집 생활비로 주더군요. 큰아들은 밖에 나가 살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합니다. 막내아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멀리 경기도에서 혼자 열심히 생활합니다. 


우리집 아이들 3남매가 흔히 말하는 수도권 SKY대학 출신도 아닌 지극히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집이 부자라서 큰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유난히 효성이 지극합니다. 매주 토요일 아내 병원 정기 치료를 받고 돌아오면 큰아들이 항상 특별 요리를 준비하여 기다립니다. 우리 부부가 토요일 큰아들표 특별 요리를 기다리는 날이 오래 되었지요. 3남매 모두 저와 아내에게 이렇게 잘해 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혼인이야 때가 되면 가는 것이니 아이들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것이 진짜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살면서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던가요. 어느 지인이 저와 만나 술을 한 잔 마시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네는 아이들이 그렇게나 효도 잘 하니 정말 잘 키웠네. 난 이게 뭔가 싶어. 서울에 보내보니 대학 합격 했을 때 딱 그때만 좋았지. 그리고 나서는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못 보는 것 같아. 집에 와도 딱 하루만 있다가 아니면 하룻밤만 자고 가면 진짜 허전하네. 오랜만에 와서 저녁도 같이 먹고 술도 함께 마시면서 이야기라도 좀 하고 싶더라만 다음 날 일찍 올라가야 한다면서 잠들어 버렸을 때 섭섭하기도 했지. 어쩌겠나 이것이 다 우리 운명인 걸. 자네는 큰아들과 자주 대화하고 딸 아이가 착해서 정말 부럽네. 자네 3남매가 정말 부럽다네. "


지인의 딸이 서울에 있는 유명대학에 합격했을 때 저도 솔직히 질투하고 시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부러웠지요. 우리집 아이들은 한 명이라도 의대 또는 SKY에 왜 진학하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니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더군요. 지금 이 순간 우리집 아이들 3남매가 우리 부부에게 주는 모든 것들이 진짜 고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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