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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24. 2023

나이가 들면 웬만하면 충고하지 마라

흔히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다. 良藥苦於口而利於病, 忠言逆於耳而利於行라고 해서 '충고'의 필요성을 강조하지요. 좀 더 격한 표현으로는 정문일침(頂門一鍼)도 있습니다. 정수리에 침 하나를 꽂는다는 뜻으로, 따끔하고 매서운 충고나 교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요. 학창 시절에 선생님께서 친구 간에도 충고가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가 나쁜 길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충고해 주어야 진짜 친구라란 겁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감동도 받기도 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긴 세월 살아보니 아무리 공자님 말씀이라 해도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는 측면이 있더군요. 제 경험이 일천해서 그런지 몰라도 주위에서 '충고'를 통해 행동을 고친 사례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비난에 가까운 충고는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지인들과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가급적 충고하지 마라. 충고하려면 아니 상대방의 행동을 시정하기 위해 뭔가 말하려면 그다음부터 이 사람과는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해라."라고 한 적이 꽤 많습니다. 


왜냐하면 동료들과 어울려 지낼 때 술이라도 한잔 하면 꼭 술의 힘을 빌어 평소에 못다 한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말 못 했는데, 오늘 이렇게 술을 한 잔 마시니 이 이야기를 꼭 했으면 좋겠다고. 지금 내가 말을 해도 이해할 수 있느냐고. 


그러면 상대방은 웃는 낯으로 흔쾌히 동의합니다. OK!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평소처럼 다소 조심스럽게 얘기해도 상대방을 자극하게 되는데 술자리이니 정신이 느슨해지고 어쩌다 말이 격해지기도 합니다. 충고란 아무리 좋게 표현하려 해도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처음엔 웃는 낯으로 들어주다가 점점 심각해집니다. 그러다가 충고하는 사람의 표현이 조금이라도 격해지면 갑자기 언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설령 언쟁을 하지 않고 차분히 들어주면서 동의하지만 충고를 듣는 사랑은 그 순간부터 자기 검열에 들어갑니다. 상대방의 말을 건성으로 들어주면서 자신의 내면에 깊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아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왜 그 순간 내가 조심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잘못이 아닌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심하게 보는 거지.'  등등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정해진 방향이 없이 돌아다닙니다. 술의 힘을 빌려 상대방에게 충고 한 마디 하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술에 취하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반면에 충고를 듣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움츠러들게 되는 것이지요. 다음 날 직장에서 만나면 충고한 사람은 전날 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상대방에게 격하게 아침인사를 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미리 경계를 하면서 대충 얼버무립니다. 


그런 경우를 꽤 보았지요. 어떨 때는 술자리에 가면 오늘은 또 어떤 사람이 술의 힘을 빌려 남에게 어쭙잖은 충고를 할까 유심히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충고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술자리에서 충고의 말을 심각하게 듣는 장면은 늘 보였지요. 그러면 저 두 사람 내일부터 사이가 좋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지요. 제 예감이 거의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좀 친했던 사람이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경직된 인간관계를 갖는 것이 많았습니다. 


최근에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후배가 전화를 걸어와 한참이나 하소연했습니다. 한 30분 정도 말한 것 같습니다. 요지는 자신이 퇴직 2년 앞두고 있는데 학교 안에서 젊은 선생님과 함께 무슨 대회를 진행하는데, 일하는 것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았다면서 불평불만을 저에게 온통 쏟아냅니다. 평소에서 가끔 전화를 걸어와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사람이라 들어주었지요. 그리고  그 상대방을 함께 비난하면서 길게 통화하였습니다. 저와 통화하면 스트레스가 다 풀린다면서 이렇게 들어주어 고맙다고 하네요.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됩니까. ㅎㅎ.


그런데 거짓말 같이 이틀 뒤 앞서 전화한 사람이 욕했던 상대방 그 사람과 만나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다 보니 그 사람도 지인이었습니다.  이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용이 전혀 달랐습니다. 나이 많다고 젊은 후배들을 무지하게 닦달하며 일방적으로 질타하더랍니다. 행사 진행에 도움이 안 되면서 아니 오히려 방해를 하면서 뭔가 하나 잘못된 것이 있으면 침소봉대하여 그렇게 뭐라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도 저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대신에 대화는 극히 짧았습니다. 


그래서 애초에 전화를 길게 하여 상대방을 비난한 그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잘하지 않던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두 번 다시 안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제 말을 듣고 두 번 다시 전화하지 않으면 길게 통화하여 하소연을 듣는 고통도 사라질 것이라는 자위도 살짝 했습니다. 


"있제.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네가 퇴직 2년 앞둔 상태에서 후배들과 이런저런 언쟁을 하는 것은 잘잘못을 떠나 좀 그렇네. 그 공간에서 자네가 최고참 아닌가. 퇴직 2년 앞둔 사람이 뭐 그리 현직에 미련이 많을까. 그냥 후배들 이쁘게 봐주고 행사가 끝나면 후배들 수고했노라 밥이라도 한 끼 살 마음을 가지게. 그러면 그 후배들 절대로 자네에게 함부로 하지 않을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나이가 많은 특히 사무실에서 나이가 가장 많아 곧 퇴직할 사람은 후배들에게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봐. 무엇을 하든 너그럽게 봐주고 베풀어야 한다네. 그 나이는 직장 내 후배들을 다독거리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자리이지, 언쟁의 중심에 서면 안 된다고 봐."


제 전화를 받고 그 사람이 말합니다. 


"그렇게 듣고 보니 선배님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그러니까 선배님은 옆에 사람이 많지요. 저도 선배님께 전화해서 그 사람 욕을 했던 것이 영 쭈글시럽더군요. 언제 기회가 되면 선배님 말씀처럼 후배들과 자리를 한번 만들어 식사를 대접해서 풀려고 합니다. 선배님 충고 감사합니다."


아하 이 사람이 제 충고를 받아들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상대방의 마음이 떠난 것은 알기나 할까요. 그런 식사 자리에 후배들이 오긴 올까요. 아마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오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저도 이 후배가 지금까지 저에게 하는 것처럼 살갑게 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각오하고 말해 준 것이니까. 모르지요. 또 술 한 잔 거나하게 마시고 심야에 "선배님!~~~~"하면서 넋두리할 지도요. 






자(孔子)가 말했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는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다. 탕왕(湯王)은 곧은 말을 하는 충신이 있었기 때문에 번창했고,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은 무조건 따르는 신하들이 있었기 때문에 멸망했다. 임금에게 간쟁하는 신하가 없고, 아버지에게 간쟁하는 아들이 없고, 형에게 간쟁하는 동생이 없고, 선비에게 간쟁하는 친구가 없고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임금이 잘못을 저지르면 신하가 간해야 하고, 아버지가 잘못을 저지르면 아들이 간해야 하고, 형이 잘못을 저지르면 동생이 간해야 하고,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면 친구가 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나라에 위태롭거나 망하는 징조가 없고, 집안에 패륜의 악행도 없고, 부자와 형제에 잘못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孔子曰, 良藥苦於口而利於病, 忠言逆於耳而利於行. 湯武以棍棍而昌, 桀紂以唯唯而亡. 君無爭臣, 父無爭子, 兄無爭弟, 士無爭友, 無己過者, 未之有也. 故曰君失之, 臣得之. 父失之, 子得之. 兄失之, 弟得之. 己失之, 友得之. 是以國無危亡之兆, 家無悖亂之惡. 父子兄弟無失, 而交遊無絶也.



《공자가어(孔子家語) 〈육본(六本)〉》과 《설원(說苑) 〈정간(正諫)〉》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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