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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Sep 16. 2016

Secret Window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손바느질로 만든 그림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조선시대의 왕들의 위폐를 모신 종묘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건너면 우리나라 최초 상설시장 중 하나인 광장시장이 있다.  이곳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관혼상제의 모든 것’을  조달하는 시장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중요한 매 순간마다  필요한 모든 물품들이 있는 곳이며, 100년이 넘는 나이를 먹는 동안 전통적인 색채가 적잖이 퇴색하고 그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상점이 수십 년 동안 시장을 지키고 있다.     


진눈깨비 오던 겨울날,  

그 시장의 어느 원단 가게의 한구석에서 오래된 은조사 원단 한필을 찾았다.    붉은색 앞면에 푸른색 뒷면,  ‘차르르’ 펼쳐서 빛에 비춰보니 검은색의 주름이 잡혔다.   반투명으로 비치는 홑겹 원단이 어떻게 색을 세 가지나 내는지,  수십 년 창고에서 묵어 좀약 냄새를 풍기는 이 원단 한필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런 원단으로 어떤 옷을 지었을까?  어떤 사람이 이런 빛깔의 옷을 입었을까?   그 옷을 입고 무엇을 했을까?  얋은 비단이 내보이는 붉고, 푸르고 검은빛은 모두 어우러져 비밀스러웠고,  어찌 보면 조금 야하게도 보여서 살며시 내비치는 그 비밀을 상상하게 했다.   그리고 이 비단이 생겨났던 시절, 그때 그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들이 알고 싶어 올올이 들여다보게 했다.       


쌈솔로 손바느질 해  만드는 동안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상했다.   

이 조각보를 만들어 창에 걸었을 때,  안에 앉아 있는 나에겐 서늘한 푸른빛으로, 밖에서 창을 들여다보는 이에겐 비밀스러운 붉은 창으로 보이길 바랬다.  창 안의 비밀을 엿보려 고개를 기울일수록 검은색 그림자가 시야를 가려버리지만,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는, 푸른빛으로 물든 바깥 풍경을 생각했다.       


요즘같이 매일 새로운 것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최첨단의 도시 한복판에 우리의 어머님들과 할머님들이 자식들의 손을 잡고 들르셨던 오래된 시장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축복과도 같다.   현재 유행하는 한복용 원단들이 가득한 진열장 한켠,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오래된 재고 원단들 사이에 끼워져 있는 비단 한필 눈에 띌까 싶어서,  그 아무도 모르는 사연이 갖고 싶어서, 100년 동안 끊이지 않았을 시장의 오래된 소음 속으로 매번 찾아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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