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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Oct 03. 2016

연귀 보를 만들며,

침선 수필

집 앞 골목 어귀에서 왼쪽으로 돌아 만나는 길을 따라가 보면, 마침 여름이라 황금색 풀로 덮인 언덕을 오른쪽에 두고 걷게 된다.   언덕 전체를 다 목장으로 쓰는지,  소나 말은 물론, 산 중턱에 커다란 집이 있고, 그 밑에 간간히 있는 나무 밑으로는 칠면조가 돌아다니고, 가끔은 사슴도 걷고 있는 나를 쳐다보기도 한다.  걷고 있는 나와 가장 가까운 길 옆 울타리 근처에는 항상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연귀보를 좋아해서 틈틈이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두는 편이다.  단순한 형태의 연귀보는 언뜻 만들기 쉬워 보이지만, 실제 만들어 보면 은근히 까다롭다는 걸 알게 된다.  네 귀퉁이의 연귀 장식들과 몸판의 색상 매치가 제일 관건이라, 일단 거기서부터 고민을 하게 된다.  그다음에는 몸판의 네 귀통이를 대각선으로 연결한 선을 접어서 만들어야 하는데, 사선 방향으로 마구 마구 늘어나는 원단의 특성상 반듯하게 선을 접어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가늘게 접을수록 보자기가 보기 좋게 완성되기 때문에 얇게 접어 모양을 잡으려 다림질을 하면서 손가락을 데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내 뜻과는 다르게 늘어나려는 원단의 속성을 살살 달래 내 뜻대로 모양을 내기 위해서 내가 가진 원단 다루는 기술을 총동원해야 한다.


산책길에 매일 만나는 말들은 내가 다가가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나는 동물들과 친하지 않다.  일단 내가 좀 무서워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동물들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남편은 좀 다르다.  어쩌다 산책길에 동행하는 남편이 뭐라고 부르면 곧장 다가와서 당근 하나 얹혀있지 않은 그의 손에 코를 갖다 대고, 남편은 그들의 갈기를 쓰다듬고, 조곤조곤 얘기도 한다.  신기한 일이다.  옆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니코'도 내가 지나가면 본 척도 안 하지만 남편이 지나가면 다가와서 온몸을 요염하게 비비며 남편의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꼬리로 남편의 손을 감고 훑어 내리며 아양을 떤다.   


사선으로 선을 접었으면 이제 그 선을 완벽하게 고정하기 위해서 비단실로 상침질을 해야 한다.  몸판에 무난하게 어울리는 색상, 또는 과감하게 튀는 색의 실을 쓰기도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한껏 도드라지는 색의 실로 바느질을 하는 것이다.  조심스럽고 어렵게 선을 접었던 과정에 대한 보상이 이 과감한 색상의 바느질에서 한껏 드러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동물과 친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 밖에도 그와 나는 다른 점이 아주 많다.

아플 때 나는 이불을 쓰고 누워 하루를 꼬박 앓아야 일어나지만, 그는 오히려 밖으로 나가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나면 낫는다고 한다.  나는 침대나 소파에서 뒹굴뒹굴거리면서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최고의 일상으로 여기는데, 그는 같이 운동경기를 보고 나가서 함께 운동을 하는 것을 최고의 일상으로 친다. 나는 아침마다 물안개가 피고 저녁에는 노을로 붉게 물드는 푸른 바닷가에서 사는 것을 꿈꾸지만 그는 바닷가에 사는 것을 질색하는 사람이다.  이런 것들 외에 다른 것들도 , 아주 많이 다른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제 연귀보의 핵심인 연귀를 만들어 달아야 한다.  연귀는 우리나라 목공기술 중 연귀 맞춤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나라 전통 목공은 못을 쓰지 않고 접합할 부분에 암, 수의 짝을 이룬 모양을 내어 딱 들어맞게 짜 맞추어 제작을 하는 게 기본이다.  그중에서도 직각으로 접합하는 부분의 짜 맞춤을 연귀 맞춤이라 부른다.  암, 수의 볼록하고 오목한 모양이 딱 들어맞아야 견고한 연귀 맞춤이 완성되는데,  잘 들어맞은 연귀 맞춤은 무척 견고해 못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튼튼해서 소목이나 대목 모든 목공에서 두루 쓰인다.  이 연귀를 보자기에 이름 붙여 만드는 것이라선지 이 연귀 장식을 만들 때는 나도 모양을 예쁘게 잡으려고 의식적으로 애쓰게 된다.  


별로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나서 오랫동안 연애를 하고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게,  더듬어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다.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둘이 맞춰왔던 그 시간들, 좋았거나 힘들었거나, 그 다사다난했던 그 오랜 세월들 그 자체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볼록하기만 해서도 둘 다 오목하기만 해서도 안 되는 그 맞춤의 과정은 오랫동안 맞추느라 애썼던 세월에 다 담겨 있고 우리의 기억에 다 남아 있다.


연귀를 예쁘고 바르게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또 한 번 다림질을 공들여해야 한다.  우선 두꺼운 종이에 연귀, 즉 네 귀퉁이를 장식할 모양을 그린 후 잘라 다림질할 때 모양을 잡아 줄 수 있는 본을 만든다.  다음은 연귀의 색을 정해야 하는데, 나는 이때도 몸판과는 확연히 다른 대비되는 색상의  원단을 고른다.  연귀 모양대로 마름질을 한 뒤에는 미리 만들어 둔 본을 대고 다림질을 해 시접을 접어 모양을 확실히 낼 차례이다.  곡선으로 된 연귀의 모양이 제대로 잡히게 하기 위해선 시접을 최대한 가늘게 정리하고 또 가위 집을 내기도 하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  이 작업을 네 번 반복해서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연귀를 네 장 만든다.  


여우가 밀밭을 보면서 어린 왕자의 금발을 떠올리는 것처럼.   어린 왕자가 울타리에 만개한 장미꽃들을 보면서 자신의 별에 홀로 남겨두고 온 그의 꽃을 생각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에 맞닥뜨렸을 때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떠 올릴 수 있다면.  어떤 사물을 보거나 말을 들었을 때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면.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데 특별한 의미가 된다.  그 사람하고 했던 그 일은 다른 사람과는 할 수 없고 또 같은 장소라도 그 와 함께라면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지는 바로 그것.  그걸 하느라 나는 나의 이십 대를 모두 썼다.  첫눈이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손톱 끝의 봉숭아 물을 애지중지했고, 교문을 들어섰을 때 지나가는 기차의 꼬리를 밟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믿었었다.  지금 같으면 어림 반푼어 치도 없는 소리지만, 그때는 그랬다. 딱 스무 살에 만난 그와의 연애는 이십 대를 넘겨 삼십 대까지 이어졌다.  친구들 사이에서 ‘천연기념물’이니 ‘그렇게 죽고 못살게 좋으냐’는 둥 별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십일 년 동안, 그 긴 시간 동안 서로 상대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서로 너무 다른 점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익숙해졌었고 또 사실 친구들 말대로 ‘그렇게 죽고 못살게’ 좋았으니까.  학교와 집 밖에 모르던 착실함(?)으로 여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또 여대를 다니고 아버지 말고는 남자라고는 없는 집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사귄, 내 주위의 아버지를 제외한 유일한 남자.  게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이 남자는 여자 친구보다도 더 수다스럽고 편안하게 내 생활에 끼어들어 내 친구들하고도 나보다 더 친하게 굴고 우리 식구들 하고도 잘 지냈다.  함께 만날 때면 나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똑같이 장미꽃을 나눠 주었고 집에 거의 매일 와서 밥을 먹고 아버지와 술을 마시고 엄마와는 시장도 함께 갔다.  언젠가는 우리 집에 화투를 들고 와서 고스톱 판을 벌이고 가는 바람에 우리 집 식구들은 다들 발동이 걸려 그 해 여름 내내 마당에서 고스톱을 치며 놀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남자가 나의 연인인지 형제인지 가끔 헷갈리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내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사귈 수 있어?  그렇게 좋았어?  그렇게 사랑해?’ 라는 말을 지겹게 많이 들었다.  희귀종이라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  그러면 나는 ‘사람이 그 정도 의리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라며 엉뚱하게 의리 운운하며 잘난 체를 했다.   남들이 말하는 그런 소위 ‘사랑’이라는 걸 했으면서도 ‘사랑’ 어쩌고 하는 것은 참 닭살스러웠으니까.  


연귀 네 장을 몸판의 네 귀퉁이에 고정하는 것 또한 상침으로 손바느질한다.  상침질은 좁쌀만큼 작은 바늘땀으로 반박음질을 해서 마치 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게 선을 그리는 바느질이다.  주로 세 땀 상침을 즐겨하는데 세 개의 바늘땀을 뜬 뒤 그 길이만큼의 공간을 바느질하지 않고 띄워 비우고 다시 세 땀을 바느질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렇게 네 귀퉁이를 완벽하게 연귀로 채운 뒤에는 연귀의 뒷부분 몸판 천을 잘라내 뒷면의 색이 비치지 않고 연귀자체의 색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이때도 시접은 되도록 가늘게 연귀의 모양을 잘 살게 잘라내느라 신중을 기해 가위질을 해야 한다.


그 십 년 동안 나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집과 학교밖에 모르던 얼치기는 무슨 맘을 먹었는지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직업을 택해 별 곳에 다 가보고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났다.  내가 그동안 살았던 우물 밖으로 나가면서 성격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행동도 아주 많이 변했다.  그러다 보니 십 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고, 그 변화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그 사람이 그 십 년 동안 같이 있었다.  함께 공감하고 갈등하면서 형제처럼 같이 컸다.  


분홍 빛 나는 붉은 원단에 빛을 발하는 연두색의 연귀를 달고 오렌지 색깔 실로 바늘땀을 더하여 연귀보의 앞면을 다 만들고 나면 이제 뒷면을 대야 한다.  연귀의 색을 더 선명하게 강조하고 분홍빛의 몸판을 더 붉게 보이게 하고 싶은 나는 뒷면으로 황금빛이 감도는 꽃무늬가 같이 짜인 비단을 고른다.   반투명의 원단 사이로 뒷면의 꽃무늬가 살짝 비치고 노란빛이 앞면의 붉은색을 더 돋보이게 하는 걸 보니 보이지 않는 뒷면의 받쳐줌에 흐뭇하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았던 전혀 다른 색깔들이 어느 한 부분에서는 도드라지지만 반면에 전체적으로는 또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루고, 뒤집어 보아야만 확인할 수 있는 감춰진 뒷면의 은근한 힘이 이 단순한 보자기 한 장에 다 있다.  그래서 입체적인 접합의 의미인 연귀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든 요소가 이 평면의 사각형안에 다 담기고, 마지막으로 보자기 한가운데 조그만 장식을 달고나면 연귀보가 완성된다.  


성년의 시작, 법적으로 어른이 되었으면서도 또 완전히 어른이 되고 싶었으면서도 우리는 기성세대와는 선을 딱 긋고 항상 비판의 화살을 들고 다녔다.  무난하게 어울려야 한다는 마음 한가운데 튀고 싶은 마음이, 특별하게 나를 나타내고 싶었던 마음이 쉴 새 없이 충돌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던 그 시절, 그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설펐던 인생의 한 토막은 어디로 흘러 갈지 모르는 넓은 바다로 혼자 나선 조각배였다.  그 바다는 풍랑이 거셌지만 나에겐 서로 너무 많이 다르지만 나의 큰 부분을 양보하고서라도 맞춰주고 같이 흘러가고 싶었던 그 바다가 있었다.  그것이 이십 대의 나이, 그 십 년, 청춘이라는 단어로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십 년에 잘 어울리는 사건이었다.  내 고집을 나도 모르게 꺾고 맞춰주게 되는 천적을 만났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누구라도 그 야들야들한 시간을 망설임 없이 뚝 잘라서  그 천적과 함께하는데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남들이 뭐라고 말하던 말던, 연귀처럼 아구가 딱 들어 맞아 절대 어긋나지 않는 그런, 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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