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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Aug 19. 2016

지구는 둥글다

침선수필

“참 이상하군요.   왜 가까운 길을 놔두고 먼데로 돌아가는 겁니까?"  

그는 한눈에도 호기심이 아주 많아 보이는 소년과 일행이었고 이 질문의 발원지는 그 소년임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한 그의 얼굴에도 물음표가 두어 개쯤 붙어 있었다.    기내잡지 뒷면에 붙어있는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선을 그어 가며 거리를 재보고 있었던 듯,  한 개는 화면에 나타나 있는 대로 북쪽 해안선을 따라,  그리고 또 하나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직선으로 로스앤젤레스까지,  이렇게 두 개의 직선이 그어져 있었다.   분명히 그어진 선으로는 두 번째의 바다를 가로지른 선이 더 짧아 보였다.   그러니 명백하게 짧은 노선을 두고 왜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돌아가는 노선을 가고 있는지가 그들의 의문인 것이었다. 


출발지 시간 : 오전 1시          

도착지 시간 : 오전 8시 

비행시간 ; 10시간 20분         

비행 속도 :  시속 800km 

항공기 외부 온도 : 영하 45도    

도착지 온도 : 영상 17도 

남은 시간 : 1시간 25분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제 화면에는 갖가지 비행정보와 노선, 현재 항공기의 위치가 표시된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화면 속의 조그만 항공기는 한반도의 허리 부분에서 출발하여 일본과 러시아의 동쪽 해안을 따라 북상, 베링해와 날짜 변경선을 지나 알래스카의 남쪽 해안과 북아메리카의 서쪽 해안을 연결하는, 그야말로 북극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긴 꼬리를 지도 위에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설명을 하면 좋을까,  잠시 생각한 후  “더 멀어 보여도 이게 사실은 더 가깝답니다.” 하고 말해주었다.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지구는 사실 둥글지요. 이 지도는 편의상 둥근 지도를 평면으로 펼쳐 놓은 것이고요.”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한다…   이젠 아예 지도의 북극과 남극 부분은 쪼글쪼글하게 접어 오므리고 가운데는 볼록하게 이어서  집어 들고 보여준다.  “보세요, 지구는 실제로 이렇게 둥글게 생긴 거잖아요.  가운데 부분이 가장 볼록하고 위아래 부분은 좁지요.  입체로 생각해 보세요.  지도처럼 평면으로 보면 안 됩니다.  가운데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선이 보기에는 직선 같지만 사실 지구의 가장 볼록한 부분을 둥글게 싸고 돌아가는 길이지요.  실제로는 가장 긴 거리예요.  그리고 북극과 남극은 원의 꼭짓점 부분이니 가장 좁은 곳이고요.  극지방으로 가까이 갈수록 실제 거리는 짧아지는 거지요.”   입체적으로 지도를 둥글게 해서 보여주니 이해를 한다.   “이제 아시겠죠?  평면지도에 속지 마세요.”  사실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한 것일 텐데,  마치 세상에서 처음 발견된 일인 양 놀라워한다.   


화면을 다시 한번 더 쳐다보았다.  출발지와 도착지 시간이 아까 보다 15분쯤 지난 것으로 나타나 있었고 화면 속의 조그만 비행기는 그새 남쪽으로 좀 더 내려와 있었다.  다른 승객들을 둘러보니 그들도 대부분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화면 속의 무엇을  보고 있는 중 이었 을까?  이런 지도의 조화 속을 이들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예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안 드는 걸까?   


비록 크기는 작지만 지구와 똑같이 생긴 지구본이라는 것이 있다.  지구 상 어디라도 그 거리를 비교해 보거나 위치를 알려면 사실 지구본으로 측정해 봐야 정확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별로 없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본을 가지고 있지 않고 대신 그냥 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그 지도란 것이 휴대와 보관하기 좋게 하느라 둥근 지구를 평평하게 그것도 북극과 남극을 길게 늘여 펼쳐 놓은 것이다.  더구나 지구는 아주 크기 때문에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느끼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그 입체적인 감각은 없어지고 어느새 세상을 평면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처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왜곡된 인식이 이 세상에는 종 종 있다.  그리고 진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하고 왜곡된 눈으로 보고 평가하게 되는 일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그 뒤에 존재하는 진실 때문에,   완전한 믿음과 확신을 갖게 하지를 못하고 누구에겐 가는 의문과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또는 왜곡된 인식에 어색한 마음이 들어 본질을 알기 위한 의문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어떤 인식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어서,  그것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건 아니건, 의문을 갖게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그것이 교육이나 광고, 편의 같은 것으로 아주 포장이 잘 되어 있다면 그 부당함이나 의문점을 외치는 목소리는 묻히게 된다.  


그래서 주위에는 외모나 학벌, 제스처라는 평면 지도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심성 같은 둥근 지구가, 인맥과 배경이라는 지도에 가려진 실력과 노력이라는 둥근 지구가 많이 있다.  돈과 권력이라는 지도를 만들어 화려한 생활로 사람들의 정신을 빼앗고 정직하고 고결한 생활이라는 둥근 지구를 감추고 있다.  놀라운 성장이라는 지도에 눌린 착취와 탄압이라는 지구가 있고 어른들의 만족과 경쟁이라는 강박관념에 희생되고 있는 아이들의 정서와 자유라는 지구가 있다.   그리고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만들어진 지도가 대화와 타협이라는 지구를 덮어 싸 서서히 질식시키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그럴듯한 인식들이 우리의 입체적인 인생을 평평하게 만들어 내보이고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마치 모르는 것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은 왜 일까?  둥근 지구를 잊고 납작한 지도만 보면서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    그 위에 표시된 불합리해 보이는 노선이 너무 눈에 띄게 존재하기 때문일까?   아무리 평면지도가 그럴싸하게 보여도 지구는 둥글다.   그리고 지도상의 노선이 이상하다고 의문을 품는 사람은 어렵지 않게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     잠시 잊고 있을 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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