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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Feb 19. 2020

뼈 묻은 아카시아 꽃

응답하라 1968 - 식물 편


-- 입안에 꽃이 가득. 소처럼 우적우적 씹는다. --





양어장과 개울 사이로 해서 앞산 가는 길에는 아카시나무가 예서제서 자란다.


5월이면 하얀 꽃송이가 주렁주렁 열린다. 꽃송이는 포도송이를 닮았다. 나뭇가지마다 빼곡히 거꾸로 매달린다. 포도알처럼 꽃도 하나씩 떼어지고 꽃잎을 다문 꽃은 속이 빈 채 기다랗게 두툼하다. 꽃송이가 나무에 가득 차면 초록에 떡가루를 흩뿌린 듯 나무가 허예진다.


아카시아 꽃. 아카시 나뭇가지를 꺾는다. 꽃송이 하나를 떼어내 통째로 입에 넣는다. 입을 앙다물고 꽃송이 한쪽 끝을 손가락으로 잡고 죽 잡아당긴다. 꽃이 이빨에 걸려서 우수수 떨어진다. 꽃송이 줄기는 버린다. 입안에 꽃이 가득. 소처럼 적우적 씹는다. 단맛이 살짝 돈다. 아카시아 꿀. 그렇게 나뭇가지에 달린 꽃송이를 다 먹는다. 가지 몇 개를 더 꺾는다. 허기가 가실 때까지 먹는다. 많이 먹어도 배부르진 않다. 꽃잎이 열리면 더 이상 꽃을 먹지 않는다. 


뼈 묻은 아카시아 꽃. 가매기 삼거리와 소일 연못을 가르는 고개에 화장터가 있다. 근처 아카시나무는 잎도 꽃도 실하다. 하지만 꽃에 손도 대지 않는다. 죽은 사람을 화장하면 뼈만 남는다. 그 뼈를 절구에 빻아가루로 만든다. 뼛가루를 마당 구덩이에 부어서 쓰레기처럼 쌓아둔다. 바람이 불면 뼛가루가 날린다. 화장터 주변의 땅에 떨어지고 아카시아 잎과 꽃에 내려앉는다. 먼지가 쌓인 거처럼 뿌옇다. 먼지는 바람이 훅 불면 날리고 빗물에 씻기지만 잎과 꽃에 뼛가루는 털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뼛가루도 뼛가루지만 사람 타는 누릿한 인내가 공기에 가득하다. 그래서 화장터 주위 아카시아꽃은 아무리 배고파도 먹지 않는다. 다행히 화장터가 얼마간 거리가 있어서 삼거리까지 뼛가루도 냄새도 날아오지 않는다.


아카시아 꿀. 아카시아 꽃잎이 열리면 벌이 바빠진다. 벌은 앞산 가는 길이든 화장터든 가리지 않고 아카시아 꽃에서 부지런히 꿀을 딴다. 나는 아카시아 꽃을 먹었지 벌꿀로 아카시아 꿀을 먹은 적은 없다. 아카시아 꿀은 벌의 먹이다.


5월에 아카시아 꽃잎이 활짝 열리면 양어장 길로 앞산 가는 길에는 아카시아 꽃이 향기를 내뿜는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그때는



앞산은 민둥산이라 아카시나무가 없다. 

양봉이 없었다.

거의 무연고자만 화장했다. 사람이면 다 매장했다. 시신을 불태우는 걸 불경하게 여겼다.





지금은




앞산은 도토리나무가 울창하다.  

양봉으로 벌이 딴 꿀을 사람이 가로챈다.

아카시아꽃을 돈 받고 판다. 봉천내 둔치에서 열리는 새벽시장에서. 가까운 봉산미에 널렸는데도.

열에 여덟은 화장한다. 사회 지도층과 부자까지 화장을 선호하는 경향.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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