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가 새벽녘에 팔뚝만한 잉어를 잡아 왔다. 동네 개울에서 잡았단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잡았단다. 이런 적은 없었다. 개울에 잉어라니.
개울에 물고기 중 제일 큰 건 장어다. 이건 여름에아주 가물 때 다리 옆에 돌로 쌓은 축대 주변에 허연 카바이트를 풀어서 잡는다. 몇 마리 안 된다. 그다음 족대로 잡는 미꾸라지, 붕어다. 작다.붕어 큰 놈은 개울이 흘러들어가는, 그래서 큰 개울이라고 부르는 봉천내에 산다. 그다음 새끼손가락만 한 중투라지. 가장 작은 게 새우다. 속이 반쯤 비치고, 검은빛을 띤다. 비가 제법 와서 개울에 물이 늘면 그때 잡는다.
팔뚝만 한 잉어라니.
동네에 양어장이 하나 있다. 훈이네 아부지가 하는 거다. 밭 한 뙈기 크기다. 위로 고아원 옆에서 시작해서 아래로 봉구네 집 옆 뒤쪽까지 집 대여섯 채 길이니까 엄청 크다. 양어장은 구루마 한대 지나갈 정도의 흙길을 사이에 두고 개울가에 있다. 양어장 아래쪽에 개울로 물 빼는 구멍이 있다.
밤새 폭우가 왔다. 양어장 물구멍이 터졌단다. 거기로 탈출한 잉어들이 동네 개울을 채운거다. 처음 맞는 흐르는 물에 어물쩍대다 얼떨결에 잡힌 거다. 내가 개울에 나가 봤을 땐 잉어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잡겠다고 풍덩풍덩 대니까 화들짝 놀라서 큰 개울로 다 도망간 거다.
그 날동네는 잉어 매운탕 축제였다. 숨 죽인 축제. 입은 달지만 마음이 무거운 축제.
그 날부터 양어장이 망했다, 훈이네가 이사 갈 거라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훈이를 볼 때마다 불쌍해 보였다. 잉어를 먹은 게 미안했고 맛나게 먹었으니 죄를 지은 거 같았다. 그 후로 가끔 꿈에 물 반 잉어 반인 개울이 나타났다.
일 년 후 훈이네가 다른 데다 양어장을 더 크게 하나 더 차렸단다. 엄마, 아부지가 시내 중앙시장에 불나서 새로 지어 더 발전했다고 그랬는데 그런 건가 보다. 아니면 생각보다 잉어가 많이 탈출한 게 아니던가. 아니면 한 번 알 까면 순식간에 불어 나는 게 물고기니까 그런 거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ㅡ카바이트
carbide. 단단한 고체로 망치로 깨진다. 물에 닿으면 가스가 발생한다. 그 가스에 불을 붙여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불빛으로 쓴다. 산소 용접기의 불로도 사용. 다 타면 물과 섞여 하얀반죽이 된다. 이걸 고인 물에다 풀면 짙은 안개처럼 허옇게 번지면서 조금 시간이 지나면 물고기가 물에 둥둥 뜨거나 흐느적흐느적 맥없이 꿈틀대면서 수면가까이 떠오른다. 물에 카바이트를 담그면 급격히 가스가 발생해서 위험하다. 조명용 카바이트불이든 용접용 카바이트 불이든 조금씩 물과 접촉해야 하고, 발생한 가스를 모으는 장치가 있다.
ㅡ족대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한다. 쌀가마니만 한 촘촘한 그물을 허리 높이의 대나무 두 개 지지대 양쪽에 묶어 만든다. 지지대를 물에 잠긴 수풀의 앞과 아래에 가두듯이바닥까지 댄다. 그러면 물살에 그물이 둥글게 부푼다. 한쪽발로 수풀을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밟으며 훑고 잽싸게 번쩍 들어 올린다. 깜짝놀라서 그물 안쪽으로 도망간 고기가 잡힌다. 낚시점이나 철물점에서 판다. 모양은 옛날과 같다.
그때는
자신보육원을 고아원이라고 불렀다. 6.25 전쟁 후라 전쟁고아가 있었다.
지금은
세븐일레븐과 바로 옆 건물 뒤부터 개울 (흰색 사선)까지 일대가 양어장. 뒤에 건물을 양어장 없어지고 오랜 후에 지은 것.
자신보육원은 원주종합사회복지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육판길은 통째로 없었다. 자신보육원 마당이었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